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주류 사회 지식인층, 미국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맞춤형 설득전을 이어갔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진의를 대리 전달하며 종횡으로 북미 대화 촉진에 주력한 것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과 24일(현지시간)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전세계 언론 앞에서 비핵화 의지를 직접 밝히고, 또 내가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한 비핵화 합의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면서 "이제 북한의 핵 포기는 북한 내부에서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공식화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멀지 않은 미래에 가지게 될 것"이라고 화답해 조기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도 지난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이후 북한이 취한 핵‧미사일 동결 조치를 높게 평가하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지점까지 와 있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을 통해 김 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까지 전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비핵화 협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척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이처럼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미국 중간선거(11월 6일)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담판이 다시 열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文대통령이 대신 전한 김정은 위원장의 속내
문 대통령은 25일 CFR(미국외교협회), KS(코리아소사이어티), AS(아시아소사이어티)가 공동주최한 연설에선 미국 지식인 계층에 만연한 '북한 불신'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실제로 참석자들은 "(북한의) 비핵화 관련 진전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 한미 동맹 관계에 대한 우려도 있다"(케빈 러드 AS 정책연구소장), "북한의 핵 포기 의지에 대해 회의론이 많다"(리차드 하스 CFR 회장)며 김정은 위원장의 진의를 묻는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많은 세계인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 또는 속임수다, 또는 시간 끌기라는 말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 끌기를 해서 도대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미국이 강력하게 보복을 할 텐데 그 보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진정성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고 대신 밝히기까지 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국제통화기금(IMF)나 세계은행(WB)이라든지 여러 국제기구에 가입함으로써 개방적인 개혁으로 나설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국제사회에 편입을 통해 경제 개방을 모색하고 정상국가로 발돋움하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와 같은 개념"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가능한 빠른 시기에 비핵화를 끝내고 경제발전에 집중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고 비핵화의 목적이 결국 경제 발전에 있다는 설명도 전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선(先)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 주류사회의 인식을 고려한 듯 '협상의 방식'에 대한 설득에도 주력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계속해서 취해 나가기 위해서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 두 가지(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는 서로 교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싱가포르에서 한 합의를 등가성을 가지고 제대로 이행한다면 이번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북미 협상 교착에 원인으로 지목된 종전 선언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유엔사령부나 주한미군의 지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등가성의 원칙에 입각한 상응 조치의 일환으로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체결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먼저 필요한 것이 종전선언"이라고 역설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선 "주한미군은 남북관계에서 평화를 만들어내는 대북 억지력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지만 나아가서는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만들어내는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난 이후에도, 남북이 통일을 이루고 난 이후에도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이 원하는 대북 제재와 관련해선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 등이 한 목소리로 "대북 제재는 비핵화가 성사될 때까지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천명함에 따라, 문 대통령은 다른 방식의 상응 조치들이 가능하다는 우회로를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앞으로 영변 핵기지를 폐기하게 되면 미국 측에 장기간의 참관이 필요할 텐데, 그 참관을 위해서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반드시 제재를 완화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새롭게 수립한다는 것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은 장기적으로 북미 수교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체제 안전 보장 조치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조치다.
북미 빅딜 '황금 시나리오' 성사되나?
이에 따라 조만간 구체적인 시기와 형식이 발표될 북미 정상회담에선 북미가 각각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비핵화 추가조치와 상응 조치를 크게 맞교환하는 '빅딜'이 성사될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든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내(2021년 1월)를 마지노선으로 삼아 북한이 핵리스트 신고를 비롯해 미국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수용하고 미국이 종전선언과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맞교환하는 거래가 성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불과 일주일 사이에 문 대통령을 매개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각자가 원하는 협상의 조건과 요구사항들을 충분히 타진한 만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 북미 정상회담 →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계기 남북미 종전선언'으로 이어지는 황금 시나리오를 관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을 담당하는 미국 관료들이 선 비핵화를 요구하며 몰아붙이기 식 대북 접근법을 유지할 경우 난관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25일 미국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의 '뉴욕 회동'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CNN 방송 등 미 언론들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정부 관료들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너무 큰 양보를 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여전히 반신반의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머지않아 내가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협상의 세부 사항에 입을 다물고 있는 기류를 이같이 해석한 것이다.
결국 조만간 이뤄질 리용호 외무상과의 뉴욕 회동을 통해 북미 간 외교적 협상의 윤곽이 드러나고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주축이 된 오스트리아 빈 채널을 통해 세부 사항에서 진척이 이뤄져야 문 대통령의 전방위 설득전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대미 설득전에 총력을 기울이며 뉴욕 무대를 누빈 문 대통령은 26일 새벽(현지시간)으로 예정된 유엔총회 연설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상세히 설명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모아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