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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황이 당신의 혈관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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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황이 당신의 혈관에 미치는 영향

[서리풀 연구通] 혈압 및 혈당 조절에 깊은 영향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2018년 8월의 취업자 수가 작년 8월과 비교해 불과 3000명 밖에 늘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관련 기사 : 8월 취업자수 3000명 증가, 고용지표 악화 지속)

때맞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결과가 발표되면서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에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졌다. (☞관련 기사 : [사설] 중산층으로 확산된 소득분배 악화, 잇따르는 적신호)

일반적으로 경제 불황이 닥치면 가처분 소득이 적은 저소득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기 마련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며 신체 건강이 악화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199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단기간에 노숙인이 늘어나고 가족이 해체되며 자살률이 급증하는 극단적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이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한 경험은 아니다. 영국과 그리스에서의 긴축 경험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보고 되었고(☞참고 자료 :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베네수엘라에서는 수년 간 지속된 극심한 경제 불황으로 수십만 명이 나라를 탈출하고 기아와 관련된 지표가 악화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바로 가기)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된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 팀의 논문(바로 가기 : 경기 불황은 미국 성인의 혈당과 혈압을 악화시켰다)은 경제 불황이 자살이나 기아같은 극단적 건강 결과만이 아니라 혈압이나 혈당같은 생리적 지표들을 변화킨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연구팀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지속된 미국 경제 불황 전후에 시행된 '다민족관상동맥질환조사(Muti-Ethnic Study of Atherosclerosis, MESA)' 자료를 이용했다. 조사에 참여한 성인 4599명을 대상으로 2008년 경제 불황 이전과 불황 이후에 측정한 혈압, 혈당, 고혈압이나 당뇨병 치료제 투약 여부 등의 정보와 더불어, 연령, 학력, 자가주택소유 여부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타 요인들을 함께 측정했다.


경제 불황의 건강 영향에 대한 이전 연구들이 주로 '자살률'이나 '사망률' 같은 최종 결과에 주목했던 반면, 이 연구는 그 경로에 해당할 수 있는 혈관, 심장, 췌장 등 신체의 필수조절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본 것이다.


분석 결과, 불황 이전에 비해 불황 이후 혈압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원래 고혈압약을 복용하던 65세 미만 집단에서는 불황 이후 혈압이 평균 12.65mmHg 높아졌고, 65세 이상 집단에서는 7.93mmHg 높아졌다. 고혈압약을 복용하지 않는 이들에서도 각각 4.45mmHg, 2.85mmHg의 혈압 상승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혈당 측정값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당뇨병약을 복용하는 이들의 경우, (로그 전환한) 혈당 수준이 65세 미만에서는 10.19 높아졌으며, 65세 이상에서는 5.76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65세 이상 인구에서는 17%가 불황 이후로 고혈압약 사용을 줄였으며, 당뇨병약의 경우에는 65세 미만에서 29%, 65세이상에서는 13%가 복용이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개인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불황의 건강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력과 자가주택 보유 여부에 따라 동일한 분석을 반복했다.

그 결과 의약품을 복용하는 65세 이상 노인 중 대학 졸업 미만의 학력이면서 메디케어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의료 이용이 가능한 사람들에게서 불황 이후 혈압 상승 폭이 가장 작았고, 65세 미만의 인구에서는 혈압 상승 폭이 컸다. 한편 자가주택을 보유한 집단에서 혈압 상승이 높게 나타났고, 혈당에서는 반대 방향의 결과가 나타났다(표 참조).


이 논문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학술 논문의 상투적 제언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건강 보장과 사회 보장의 필요성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선 경제 불황이 혈압과 혈당 조절이라는 인체의 기본적인 생리 기능에까지 깊숙한 영향을 미친다는 쓰라린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일반적 예측과 달리 메디케어를 통해 필수의료이용을 보장받는 65세이상 저소득, 저학력계층이 상대적으로 보호를 받고 오히려 노동시장에 참여 중인 65세 미만의 성인들에게 악영향이 더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 흔히 경제 불황이 오면 정부 재정 적자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사회 보장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일수록 '사회안전망'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이 연구는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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