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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엔 500만원, 피해자엔 180만원 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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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폭력 가해자엔 500만원, 피해자엔 180만원 들여?"

[시민정치시평]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형량 강화가 해결책인가

제주도 올레길과 경남 통영에서 여성과 초등학생 아동이 성폭력 피해 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동성폭력에 대한 시민의 공포와 불안이 얼마나 큰지는 통영사건의 피의자가 성폭력범죄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성폭력범죄자 알림e 사이트가 접속 폭주로 거의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통영사건의 피의자는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규가 마련되기 이전에 범죄를 저질러 신상공개대상에서 제외된 자여서 이로 인해 신상공개대상 소급적용 여론이 들끓었다. 강력한 처벌을 하게 되면 높은 형량이 두려워 범죄가 억제될 것이라는 주장이 되풀이된 것은 물론이다. 결국 정부는 위헌논란에도 불구하고 성 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전자발찌와 동일하게 3년 소급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으며, 이참에 전자발찌 부착 대상에 강도 범죄까지 끼워 넣었다. 강도의 재범률이 다른 범죄보다 높고 성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성폭력범의 재범을 방지하고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공분에는 공감하지만, 이에 휩쓸려 급조되는 정책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지난 수년 동안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도가니 사건 등 아동·청소년과 장애인을 상대로 한 잔인한 성폭력범죄가 여론화 될 때마다 13세 미만 아동 및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무기징역까지 형량 강화, 친고죄 폐지 등의 정책이 추진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상공개,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등의 법제가 도입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매해 1000여 건에 달하는 13세 미만의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들끓는 여론에 밀려 이전의 제도가 왜 범죄 예방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는지, 성폭력이 발생한 개별 사건의 주요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볼 겨를 없이 형량을 강화하거나 각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각종 처벌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이번 사건만 해도 그렇다. 통영사건은 피의자가 성범죄 신상정보 공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들려오는 바에 의하면 가해자의 성범죄 전력을 지역주민이 대부분 알았다고 한다. 온 동네사람들이 누가 성범죄자인지 안다고 하더라도 부모나 지역사회로부터 방임된 아동들은 여전히 성폭력범죄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등하굣길이나 방과 후에 아동을 보호하는 방안이 성범죄자 신상공개 확대보다 더 시급한 이유이다. 신자유주의의 복지국가 쇠퇴로 인한 계급, 계층구조의 불안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형벌정책강화가 활용되고 있다는 미국 버클리 대학의 로익 바캉(Loic Wacquant) 교수의 주장에 근거해 볼 때, 정부가 성폭력 예방을 위해 방임아동 보호와 같은 복지확대에 예산을 투입하기보다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확대하여 성폭력범죄로부터의 자기보호 책임을 시민들에게 떠넘기고, 성폭력에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착시현상을 일으킴으로써 시민의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화학적 거세의 1인당 1년 소요비용이 500만 원에 달하는데,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 생활인의 2012년 1인당 1년 생계비는 180여만 원에 불과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학생의 경우 급식비조차 지원되지 않는 현실이다. 현행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에 대한 예산과 정부정책의 불균형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 성폭력 가해자에게 부착하는 전자발찌. ⓒ연합뉴스
언론 역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 있는 분석보다는 정부의 형벌강화 흐름을 뒷받침할 시민들의 분노와 두려움을 확산시키고 있다. 통영사건, 제주 올레길 피의자의 범죄 전력이나 소시오패스(Sociopath) 등 개인적 특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성폭력에 대한 공포를 강화할 뿐이지 안전한 사회로 가는 방안에 대한 이성적 논의를 낳기 어렵다.

소수의 극악한 성범죄자 사건에 대한 편향적 강조는 8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성폭력을 가려버리기 십상이다. 집안에서 친족이나 친인척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 직장이나 학교, 지역 내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 다반사로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해서는 대개 침묵한다. 마음껏 비난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지만 주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앞길이 구만리 같다거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거나, 술 때문에 판단이 미약해졌다는 등 수많은 이유를 들어 가해자 편에 서서 선처를 호소하는 우리 안의 이중 잣대를 돌이켜보지 않는 한 성폭력범죄자를 모조리 사형시키거나 영구히 사회에서 격리한다고 해도 성폭력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은 12% 남짓이고 그중에서 기소에 이르는 사건은 50% 정도이며 유죄판결률은 많게 잡아 3, 40% 정도여서 성폭력범죄의 형량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그 법률을 적용받을 이는 100명의 가해자 중 두어 명 정도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분노와 내 이웃에 사는 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별개로 작동하는 것 역시 우리의 현실이다. 조두순 사건으로 성폭력에 대한 여론이 들끓던 시기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피해자 쉼터로 사용할 무상 임대주택을 지원받았지만 지역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좌절된 적이 있다. 최근 친족에게 수년간 성폭력피해를 입었던 피해자에게 검사가 "사귀었던 것 아냐?", "너도 좋아서 했던 것 아냐?"라고 물으며 피해자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준 기막힌 2차 피해도 있었다. 성폭력에 대한 편향적 태도에서 벗어나 성폭력을 양산하는 사회문화나 의식을 돌아보고 성폭력이 구성원의 의식과 태도변화가 성폭력 근절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확산시켜야 한다.

권인숙은 아동 성폭력과 같은 범죄에 대한 언론의 집중포화가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한다고 보았다. 즉 아동과 부모들의 공포만이 아니라 청소년 여성이나 성인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스스로에게 검열이 심해야 방정한 여성이 된다는 자기 억압적인 여성성을 형성하여 여성에 대한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공포를 자기방어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여성다운 행동을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보호자로서의 남성에게 의존을 강화하게 되면 그러한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 용이해지거나 피해자가 성폭력을 드러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에 주력하기보다 형벌강화라는 가시적이고 손쉬운 정책에 의존하는 정부, 피해자에 대한 이해와 지지, 주변의 성폭력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형벌강화를 통해 특정 범죄자만 강력하게 통제함으로써 성폭력에 대한 공포와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시민사회, 그리고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여성성의 강조를 통해 성폭력에 더욱 취약한 대상을 양산하는 사회문화와 이 모든 상황을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 등은 유기적인 메커니즘으로 상호 작용한다. 따라서 아동과 여성의 자기방어능력을 키우고 성평등의식을 확산시키는 방안이 절실하다. 또한 취약 계층에 대한 특별한 보호 및 지원확대와 더불어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성폭력이 개인의 명예에 관한 죄가 아니라 사회적 범죄임을 인정하는 친고죄를 폐지하는 등의 정책이 실현되어야 한다.

성폭력의 두려움을 지나치게 강화하거나 지나치게 사소화하는 분위기를 경계해 갈 때야 비로소 성폭력 유지 메커니즘에 균열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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