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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몰카, 가해자가 직접 삭제하도록 처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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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불법 몰카, 가해자가 직접 삭제하도록 처벌하자"

[인터뷰]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①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상반기 '미투(#METOO)' 국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언행을 보인 의원이다.

금 의원은 '미투' 폭로가 민주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것에 대해 김어준 방송인이 음모론을 제기하자,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지난 8월 말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자, 그는 '가끔은 침을 뱉고 싶다'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판결을 비판하기도 했다.

금 의원은 또 청소년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소년법 폐지' 국민청원에 청와대는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낮추는 것을 논의하겠다'고 여론을 일부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 의원이 여성, 청소년 인권 문제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밝히는 이유는 12년 동안 검사 및 변호사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 소년 범죄자들을 다수 만나면서 그가 직면했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땠을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법적으로는 분명히 보장되어 있지만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 잘릴 것을 각오해야만 하고,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의 가정 형편 등 객관적 조건을 살펴보면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우리 사회는 소년사범들을 소년원에 수감한 뒤 이들이 교화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니터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엄벌주의'는 재범률만 높인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통계를 통해서도 입증이 가능하다.

금 의원은 이런 소신에 맞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입법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금 의원과 지난 12일 가진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안희정 2심, 1심과 달라질 수 있다"

프레시안 : 안희정 전 지사 항소심이 빠르면 9월 또는 10월 초에 열릴 텐데, 1심과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을까?

금태섭 : 진행 중인 재판이라 예측한다는 게 조심스럽지만, 1심과 2심은 다를 것이라고 본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기소된 김문환 전 에티오피아 대사 역시 오늘(9월 12일) 1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안희정 사건'과 '김문환 사건'이 비슷한 사안이기 때문에 안희정 전 지사 2심 판결은 달라질 수 있다.

'안희정 사건'에 있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무조건 혼내라는 게 절대 아니다. 지금 자료만 가지고도 충분히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볼 수 있다. 법원의 판결문은 마치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처벌하는 것 자체가 성평등에 반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과거 '혼인빙자 간음죄'는 여성을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2009년 법원이 위헌 결정을 한 것은 '혼인빙자간음죄'가 성평등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평등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성이 피해 사실을 밝히기란 쉽지 않다.

('혼인빙자 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에 대해 처벌하는 죄로 형법 304조에 규정되어 있던 법이다. 2009년 11월 26일 위헌 판결을 받아 효력을 상실했다. 편집자)

만약 남녀 양측이 다 평등하고 자기 의사를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성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유형적인 폭력을 쓰지 않고도 어떤 위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를 막기 위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에 대한 처벌 규정(형법 303조)'을 만든 것이다. 사실, 없어야 하는 법이다. 선진국에도 없는 법이다.

안희정 1심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는 성적 주체성을 갖추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지하면서 자기 책임 아래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하고 성숙한 능력이 있다"라고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없다. 법원이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한다면, 항소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3월 검찰 조사를 끝낸 뒤 기사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희정의 담배 심부름, 남자 비서들도 거부 못 했다"


프레시안 : '안희정 사건'과 '김문환 사건'을 비교해 볼 때 법원이 전형적인 피해자 상(像)을 상정(想定)해 놓고 있는 것 아닐까 의심스럽다.

금태섭 : 그렇다. '안희정 무죄' 판결을 한 법원이나 이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형법 303조는 장애인·미성년자와 같이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며, 김지은 씨의 경우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교육 수준도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논거에서 출발한 사고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에 대해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혐의가 인정되려면, 저항할 수 없는 훨씬 힘든 위력이 가해져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그러면, 강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 현실은, 불행하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성폭력을 당한다. 남성이 위력을 행사해 여성을 억누를 수 있는 상황이 이미 사회적으로 다 갖춰져 있다.

안희정 전 지사가 새벽이건 밤이건 수행비서들에게 담배와 맥주 심부름을 시켰는데, 남성 비서조차 거부하지 못했다. 남성 비서가 거부했을 때 받는 불이익과 여성 비서가 거부했을 때 받는 불이익은 다르다. 여성이 거부하면, '남자는 다 하는데 네가 여자라서 그렇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성 입장에서는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직장 생활에서 회식 후 2차, 3차 이동할 때 남성이 거절하면 상사가 화를 내더라도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이해하기도 하지만, 여성이 거절하면 '남자면 갈 텐데, 여자라서 안 가는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불평등한 상황이 현실에서는 엄연히 존재한다.

'김문환 사건'의 경우 에티오피아 대사와 대사관에 고용된 직원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안희정 사건'도 마찬가지로, 안 전 지사는 김지은 씨의 임명권을 가진 직장 상사이자 당시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잠재적인 대권 주자였다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항소심 판결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판결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직장 내에서도 연애를 할 수 있고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도 얼마든지 애정에 의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죄 판결을 비판하는 부분 중 하나는 두 사람 간 위력 관계를 현실적 상황이라는 배경에서 못 봤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수직적 권력 관계에서 애정에 의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려면 그에 맞는 사실 관계가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교수와 학생 간 연애를 아예 금지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금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피해자에게 당신이 피해를 당했는데 왜 이런 일을 했느냐고 추궁하는 것처럼, 만약 애정 관계라고 하면 선물을 주고받거나 데이트를 한다거나 등 가해자에 대한 추궁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게 거의 없다.

"현실 모르는 법원, 성폭력 피해자 만나봐야"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안희정 무죄' 판결이 '미투 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여성계와 정치권에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 움직임도 일고 있다. 형법상 강간죄가 협소하게 정의되어 있다는 비판은 늘 있었지만,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 법적으로 가장 먼저 보완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금태섭 : '안희정 무죄' 판결 이후, 여성계에서는 현행법에 '비동의 간음죄'가 없기 때문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법원의 무죄 판결과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사건은 크게 처음 보는 사람에 의한 경우가 있고, 아는 사람에 의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그동안 법원은 강간죄 범위를 최대한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에 입각해 판결했지만, 최근에는 비면식범(처음 보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전향적인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안희정 사건'처럼 면식범(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더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여성이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성추행/성폭행 상황에 부닥쳤을 때 여성이 '노(NO)'라고 하면 관계를 거절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정치권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논하기 전에, 법원이 기존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구성 요건을 적용하는 데 있어 여성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특히 직장 내 성추행/성폭력의 경우, 신고할 때 받는 불이익이 상당하다. 신고를 안 해도 계속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신고 골든타임을 놓친 뒤, 뒤늦게 문제 제기를 하면 오히려 문제가 돼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 등 역공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여성들은 이런 사례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성추행/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고조차 못 하는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경우다. 때로는 성폭력 자체를, 자신이 선택한 일인 양 애정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의 이 같은 행동은 법원 판결 시 가해자를 면책시키는 근거가 된다. 법원이 이런 부분에 대해 좀 명확하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프레시안 : 사실 대한민국에서 판사는 평생 위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지, 위력에 의한 피해 경험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금태섭 : 그렇다. 검사와 변호사를 하면서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초기에는 나도 모르게, '왜 그렇게 행동을 했느냐?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라고 비난했다. 그러면 피해자들이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판사들이 법정에서 이 상황까지만 보고, 결론을 내리면 아주 잘못된 판결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꼭 성폭력 피해가 아니더라도 직장에서 남성이건 여성이건 상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받은 뒤 한 행동을 보면, 비합리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상사에게 부당한 지시와 지적을 받고도 회식에 가서는 '부장님,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

성폭력이라는 것은, 특히 개인 존엄성을 침해당한 일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평소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던 사람이라도 성폭력을 당한 뒤에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법원은 바로 이런 점을 살펴야 한다.

판사들이 성폭력 상담 기관을 찾아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피해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간접 경험이지만 배울 수 있는 게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사실을 말했는데 처벌받는 나라

프레시안 : 성폭력 피해 여성 상당수가 무고(誣告)죄로 고통받고 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 의원이 2016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금태섭 : 사실 이런 문제는 이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실이 중요하다.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는 변호사들에 따르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 상담이 제일 많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한쪽에서 성폭력 혐의로 고소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그런 부담을 지우는 게 올바른 일일까? 특히 성폭력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법과 제도가 피해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리고 비교법적으로 봐도, 사실을 말했는데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민사법상 손해배상 청구는 있지만, 형사법상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이 부분은 당연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폐지되어야 한다. 진실을 말했는데 처벌받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특히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에 대해 몇 마디 했다가 '명예훼손죄'로 수사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명예훼손이 민사적인 책임이 되면, 명예의 주체가 직접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명예훼손을 당했으면 대통령이 직접 소송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명예훼손죄'는 친고죄(親告罪)가 아니라,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이기 때문에 대통령 비서실에서도 고소할 수 있다.

김연아 선수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포옹을 거절했던, 일명 '회피연아' 사건이 있다. 2010년 3월 2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환영식 당시 유 전 장관이 김 선수 목에 꽃다발을 걸어준 뒤 포옹하려고 했는데, 이를 한 누리꾼이 의도적으로 편집하면서 포옹 회피 논란이 불거졌고, 해당 누리꾼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소송 진행을 문체부 직원들이 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런 식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폭력 관련은 특히 더 그렇다.

"'디지털 성범죄', 정부 정책 앞순위에 있어야"

프레시안 : 유투버 양예원 씨 관련 재판이 지난 5일 시작됐다. 가해자 중 한 명이 죽으면서 양 씨가 엄청난 백래시를 당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예상하나.

금태섭 : 양예원 씨 재판은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예상이 어렵다.

프레시안 :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여성들은 '디지털 성범죄'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지만, 가해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일명 '혜화역 시위'로 표출되고 있는데, 오는 10월 6일 다섯 번째 '혜화역 시위'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다.

금태섭 : 수만 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는데,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 한다. '남초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나온 한 두 개의 언사를 가지고 트집을 잡지만, 정부가 그렇게 지엽적인 것만 보고 있다가는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 즉 본질적인 문제를 놓친다.

대학교 남자화장실에 몰카(몰래카메라)가 설치됐다는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라오자 서울대의 경우 열흘 만에, 연세대의 경우 닷새 만에 경찰 수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여자화장실 몰카 범죄에 대해서 정부가, 또는 수사당국이 남자화장실 몰카 범죄와 같이 대처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안전이라는 것은 실제로도 안전해야 하지만, 심리적인 안정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몰카 범죄는 BBC나 CNN에 여러 번 보도됐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 정부가 남초 커뮤니티에 관련 게시물이 뜨면,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적이 있나?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여성들이 안심을 한다. 지난해 7월 가정폭력 및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정춘숙 의원과 함께 미국의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주에 따라서는 가해자가 잡혔을 경우 가해자에게 직접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집행유예로 감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해서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가해자가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

또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면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재판받는 과정에서 집행유예나 보호감찰을 조건으로, 가해자가 직접 관련 자료를 없애게 한 뒤 법원에 보고하고,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을 때는 다시 형을 살게 하는 등 정부가 끈질기게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여야 '디지털 성범죄'가 없어질 것이다.

지금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추진하는 정부의 아젠다 순위가 있을 텐데,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앞순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여성들도 안심할 수 있고, 남성들도 '심각한 문제구나' 하는 인식할 수 있다.

▲ 지난 7월 열린 '혜화역 시위'. ⓒ연합뉴스

"불법 촬영물, 가해자들이 직접 삭제하도록 처벌하자"

프레시안 : 성인 사이트 '소라넷'의 폐쇄 과정을 엮은 다큐소설 <하용가>(정미경 지음, 이프북스 펴냄)를 보면, 100만 명 유저에게 국한된 이야기지만 그들은 몰카(불법촬영) 행위를 범죄라기보다는 놀이문화의 일종으로 여기는 것 같다.

금태섭 : 여성들의 분노가 터지는 다른 한편으로는, 10대 후반에서 20대 남성들의 여성혐오가 아주 심각하다. 말이 안 통할 정도다. '성폭력이 아닌데 가해자로 몰려서 자살한 사람도 있다', '혜화역 시위에 무슨 몇만 명이 모였다고 그러느냐, 몇천 명밖에 안 왔다고 하던데…'라며 억울해한다.

젊은 남성들도 여러 면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한 단계 낮은 사람을 괴롭히거나 혐오하는 정서가 있다. 미국 백인 저소득층이 이주노동자와 갈등을 빚듯이. 혐오 정서는 정말 불행한 일이다.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과 해결 의지, 강력한 처벌 등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면 젊은 남성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소라넷' 유저들 생각에는 큰일이 아니기 때문에, '왜 직접 지워야 하느냐? 언제까지 감독을 받아야 하느냐?'라며 반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처벌 과정을 통해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관련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서 삭제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자신이 간접적으로나마 고통을 경험하면, 인식이 바뀔 수 있다.

일본 AV산업 종사자들이 자신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또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직접 나서서 토로한 적이 있다.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종사자들의 피해가 알려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포르노 시청자나 '소라넷' 유저들은 보는 것에 불과하다며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못할 수 있지만, 사회적 교육을 통해 이들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되면 달라질 것이고 본다.

프레시안 : 정부 관계자 및 판사들도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웃음)

금태섭 : 1980년대에 소위 '가정 파괴범' 문제가 심각했다. 단순 강도 범행으로 그치지 않고 심고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성폭행하는 등 종국에는 가정을 파괴하는 흉악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온 국민이 분노했고, 정부도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가정 파괴범을 중형에 처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평생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정부가 지금 어느 정도의 자원을 투입해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수많은 국정 아젠다 중 하나로 여긴다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소년범을 엄벌하자? 이해 안 된다"

프레시안 :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등 미성년자 범죄 수위가 높아지면서 '소년법(少年法)' 적용 연령 기준을 현행 14세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고 있다. 먹고살기 어려워서 그런지,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엄벌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금태섭 : 최근 KBS 신규 프로그램 <토론쇼 시민의회>에서 '소년법'을 주제로 토론회를 했다. 토론 시작 전에 시민의원들을 상대로 '소년법' 개정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했더니, 찬성이 8이었고 반대가 2였다. 토론회 이후 시민의원들의 결과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금태섭 의원이 출연KBS <토론쇼 시민의회> '소년범죄 처벌 강화 찬반 토론회'는 9월 16일 일요일 저녁에 방송된다. 편집자)

이런 공개 토론을 하면, 나는 엄벌주의가 피해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1990년대 영국이 엄벌주의를 도입하면서 미성년자가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성인과 같은 형벌에 처했다. 그 결과 소년범 수용률이 45%로 늘고, 재범률은 88%로 급증했다.

흔히 엄벌주의에 반대하면, 가해자 인권만 생각하고 피해자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실제 엄벌주의를 적용했더니, 재범률이 더 늘었다. 엄벌주의에 따른 잠재적 범죄자가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다.

한국은 소년범의 60%가 초범이다. 사이코패스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초범의 경우 대부분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재범, 삼범이 되면서 흉악하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의 범죄자 대부분이 과거 한두 번씩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초범인 60%가 재범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되어야 한다.

검사 및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수천 건 이상의 소년 범죄 사건을 다뤘고 직접 만난 소년범도 수백 명인데, 대부분 좋은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경우다. 성인 범죄에 대해서도 개인의 책임 못지않게 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하는데, 19살 미만 청소년에 대해서는 개인보다 사회의 책임이 훨씬 크다. '내가 저런 처지였다면, 저럴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면이 있다.

현행 '소년법'에 의하면, 소년 강력범죄의 경우 20년형에 처할 수 있다. 18살짜리를 법에 따라 수용시켜 38살에 석방할 수 있다. 그러면, 20대 전체와 30대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게 부족하다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소년범이 수용되기까지 과정을 보면, 경찰에 체포돼 경찰을 만나고, 검찰에 송치되면 검사나 검사실 직원을 만나고, 재판을 받으면 판사를 만난다. 그러다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간다. 범죄자라고 하지만,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니터링해주는 사람이 없다. 정말 반(反)사회적인지, 교화 가능성이 있는지, 아니면 교정시설에 가둬놔야 하는지 등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이가 없다. 그리고 형을 마친 뒤 관리하는 제도도 잘 갖춰져 있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자원을 제대로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형량을 늘리는 식으로 소년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게 맞을까? 현행법상 19세 미만 범죄자에게는 사형과 무기징역을 판결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20년형 이상을 선고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미성년자들에게 이 정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본다.

프레시안 : 법무부에서 '소년원 민영화' 방안을 내놓았다. 교정시설 민영화는 미국이 레이건 정부 때 '엄벌주의' 정책으로 재소자가 늘어나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미국 정부는 교도소 민영화 정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거꾸로 '소년원 민영화'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금태섭 : 법무부에서 이런 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현재도 교정시설이 과밀화된 상황인데,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어느 지역에도 교정시설을 더 지을 수 없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소년 범죄자든 성인 범죄자든 재소자의 교정·교화하는 국가의 가장 공적인 의무이자 책임인데, 이걸 민영기관에 맡긴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앞서 시행한 나라에서도 효과가 없어 철회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다. 다만, 우리 동네에 교도소가 있다고 범죄가 더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치안이 좋아진다. 시민들이 보다 넓은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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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기자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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