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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힐링캠프> 출연을 보는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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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힐링캠프> 출연을 보는 다른 시각

[시민정치시평] 진정한 치유의 정치와 텔레크라시를 위해

<힐링캠프>가 장안의 화제다. 올 여름 첫 열대야를 기록했다는 지난 월요일 밤,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며 잠자리에 들 시간인 밤 11시가 넘어 방송된 이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18.7%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의 종전 최고 시청률(13.2%)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의 이름에 난데없이 '라인'이라는 태그가 붙어버린 '고소영 편'이었는데 '안철수 편'이 그 시청률을 가볍게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 제목에 담긴 '힐링'(healing)은 '몸과 마음의 치유'를 뜻하는 말이다. 굳이 이 단어의 요즘 사용빈도를 따진다면 아무래도 '몸'보다는 '마음'의 치유에 무게가 가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힐링'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시청자들의 '힐링'을 위한 것일까.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신개념 토크쇼", 그러니까 후자다. <힐링캠프>는 시청자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인 셈이다.

우리들 모두에게 진정한 '힐링'이 필요한 이유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7월 23일 아침 신문은 "MB정부 들어 사회 더 불안해졌다"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만 10~24세 아동 청소년 자살률이 2010년 10만 명 당 10.92명, 만 6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2010년 10만 명 당 69.27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1998년 이래 가장 낮았던 자살률과 비교하면 무려 2배 이상 높은 수치라는 내용이다.(<한국일보> 2012. 7. 23.자) 그리고 같은 날 새벽, 제주 올레길 여성 탐방객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 그 전날인 22일에는 통영에서 실종된 초등학생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마을 주민 김모씨가 범인으로 검거됐다. TV를 통해 제주와 통영의 뉴스를 접한 시청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미국의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1900년부터 2007년까지의 미국의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를 조사하던 중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살인율과 자살률이 최고점에 이르는 세 번의 산봉우리와 최저점에 이르는 세 번의 골짜기 형태가 나타났다. 길리건은 이 산봉우리와 골짜기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결과는 놀라왔다. 살인율과 자살률의 최저점은 모두 민주당 대통령 집권시기였고, 최고점은 모두 공화당 대통령 집권시기였다. 공화당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특히 해고는 사람들에게 강한 수치심과 모욕감, 열등감을 느끼게 하였고, 이러한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와 불평등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자기 자신을 가리지 않는 '치명적 폭력'(lethal violence)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이희재 역. 9쪽)

ⓒSBS
미국 이야기를 길게 소개한 이유는 바로 요즘 우리들의 정서와 심리적 불안정의 가중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아동과 청소년, 노인 자살률 모두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는 통계는 "자살은 정치적 문제"이며, 우리들 주변에 상처받은 사람들,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사람들 또한 최고 한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살이 '정치적' 문제라면, 그 문제를 푸는 것도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다섯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치유의 정치'가 과제로 주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SBS의 <힐링캠프>가 시청자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이라면, 오는 12월 대선을 향해 달리는 후보자들의 모든 '캠프'는 유권자들을 위한 '치유'의 캠프가 되어야 하리라.

텔레비전과 민주주의, 텔레크라시의 등장

안철수의 <힐링캠프> 출연을 두고 대선 후보들이 서로 갑론을박이다. 올해 신년 벽두에 첫 출연 테이프를 끊은 박근혜 '캠프'에서는 '비겁', '위선', '거짓말'이라는 용어를 동원하며 원색적 비난을 하는가 하면, 기왓장 격파 시범까지 보여주었던 문재인 '캠프'에서는 최신판 <힐링캠프>가 막 시작된 당내 경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복잡 미묘한 속내를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이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을 거부당한 어느 대선후보는 SBS의 '불공정 행위'를 지적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힐링캠프>를 둘러싼 대선 후보들의 이런 반응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이번 대선에 미칠 막강한 영향력을 감지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대통령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일찍이 1960년 제35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닉슨과 케네디 두 후보의 명암을 가른 TV토론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애송이'에 불과했던 케네디는 1960년 9월 26일 시카고에서 진행된 CBS 방송의 <케네디-닉슨 대토론(Great Debate)>에서 극적인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미국 대선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이날 TV 토론을 시청한 사람은 당시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인 70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저녁시간에 흑백 TV 앞에 모인 미국 시청자들에게 케네디 후보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유창한 언변으로 건장함과 자신감을 부각시켰다. 반면 닉슨 후보는 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는 등 허약한 이미지로 토론 내내 고전했다. 케네디는 결국 6주 뒤 열린 대선에서 닉슨에 승리해 미국의 최연소 대통령이 된다. 당시 패널로 참석했던 샌더 배노커 전 NBC 기자는 2010년 대토론 50주년을 맞는 인터뷰에서 "(토론 후) 텔레비전은 완전 정치영역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은 그 자체가 지배력(dominating force)이었다"라는 말로 이 '대토론'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연합뉴스>, 2010. 9. 27. '케네디 TV토론서 어떻게 닉슨을 이겼나') 케네디의 당선 이후 미국 유권자들은 1976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와 제럴드 포드의 TV토론이 성사될 때까지 16년 동안 대선 후보 TV토론을 보지 못했다. 1968년과 1972년 공화당 후보로 나선 닉슨이 TV 토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대선후보들과는 달리 닉슨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텔레비전(television)과 데모크라시(democracy)의 합성어인 '텔레크라시(telecracy)'가 시사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TV는 현대 선거에서 가장 강력한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진정한 치유의 정치로 가는 텔레크라시를 위하여

우리나라는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대선 후보 TV토론이 법제화됨으로써 텔레크라시의 개막을 알렸고, 이후 대선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TV 토론은 후보자의 공약과 자질을 검증하고,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는 12월 대선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이로 인하여 점점 가중되는 스트레스, '치명적 폭력'의 유발을 해소할 수 있는 '힐링(healing)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텔레비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실 97년 이후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이루어진 TV토론은 방송사별 특성을 살리지 못한 개최방식, 토론방식 때문에 유권자들의 관심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오는 대선에서도 이와 같은 시행착오가 반복된다면 TV토론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TV토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TV토론을 통해 유권자들이 후보자 선택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기존의 개최방식과 토론방식을 과감히 뛰어넘는 새로운 유형의 TV토론이 기획되어야 한다.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의 TV토론은 기자회견형 토론과 후보자간 직접토론이 주를 이루었다.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다양한 유권자들의 개별적 의견이 토론에 반영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방송사 간에 질문의 의제가 중복되는 경우 시간이 갈수록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시민(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이 패널로 참여하여 후보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민포럼형 토론'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시민단체 등의 주도 하에 후보자별 토론주제 선정-TV토론 사후평가 모임-유권자 교육을 연계하는 '대선 TV토론 대응포럼'의 활동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텔레비전은 마셜 맥루언이 그의 명저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에서 지적한 것처럼 "하나의 감각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감각이 동원되는 공감각적 매체"이다. TV 화면에 등장해서 자신의 공약을 말하는 후보자들은 자신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모든 시각과 청각 이미지들을 총 동원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사이버 감각(3D로 후보자 광고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이 동원될지도 모르겠다. 한편 후보자의 연설과 토론을 듣는 시청자들 또한 자신이 가진 시각, 청각, 촉각까지 모두 동원하여 그 후보자의 이미지를 나름대로의 틀과 기준에 따라 '완성'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쿨한 미디어(cool media)인 것이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진정한 치유의 정치가 가능한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쿨한(cool) 감각을 총동원하여 TV 토론을 통해 후보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을 검증해 낼 것을 제안한다. 치유의 정치를 위한 열정과 능력을 가진 대통령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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