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 기본방향 : 건강 격차 해소 방안 모색
현실적으로는 광역 및 기초 지자체의 보건 당국이 집행하는 모든 정책과 사업이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지역 보건의료 계획은 지방 정부에서 수립하는 보건의료 계획 중 가장 중심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역 보건의료 계획을 분석해 지방 정부의 보건 정책을 평가하고, 이를 활동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기에 건강 운동 내지 건강 정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제4차 '국민 건강 증진 종합 계획'에서는 총괄 목표를 건강 수명 연장과 건강 형평성 제고로 설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보건의료 계획에서는 그간 건강 형평성 제고와 관련한 내용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지역보건법 제3조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주민들의 건강 상태에 격차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역 보건의료 계획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라는 지침이 없었다.
그러나 2016년 지역보건법 시행령이 개정됨으로써 지역 보건의료 계획은 지역의 건강 형평성 제고를 주요한 내용으로 설정할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개정된 시행령 제4조의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세부 내용 중에 '취약 계층의 건강 관리 및 지역 주민의 건강 상태 격차 해소를 위한 추진 계획'이 포함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한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 수립 안내'에서는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 기본 방향으로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 강화 및 건강격차 해소 도모'를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와 건강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모색, 소득계층 간 건강격차 감소 방안 모색이다.
2010년에 세계보건기구가 발간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행동을 위한 개념적 프레임워크(A conceptual framework for action on the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에서는 건강 형평성 강화 정책의 방향성을 크게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첫 번째는 건강 형평성을 약화시키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 형평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입이 필요하다. 건강과 건강 형평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는 거시 경제 정책, 사회 정책, 교육 및 보건 정책, 문화와 사회적 가치 등의 사회 경제적, 정치적 맥락과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있다. 동시에 이런 구조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물질적 환경, 행태 및 생물학적 요인, 심리사회적 요인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부문 간 활동(intersectoral action)이다. 건강과 건강 형평성은 보건의료 부문 외부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부문 간 활동은 건강형평성을 보건의료 부문에 국한된 정책이 아닌 다양한 공공 정책을 통해서 제고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세 번째는 참여와 권력 강화(social participation and empowerment)이다. 건강 형평성을 증진하기 위한 정책 과정에서 광범위한 시민 사회의 참여는 윤리적, 인권적 측면에서도 정당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조치이다. 시민들은 그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을 통하여 권력이 강화된다.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한 권력 강화는 건강 형평성 제고 의제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가 건강 형평성 문제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헌신하게 만든다.
지방 정부의 지역 보건의료 계획이 건강 형평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제시한 이 세 가지 방향을 계획의 주요 내용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방향 중 사회 경제적 불평등 완화는 광범위한 사회 개혁과 중앙 정부 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지방정부 차원에서 완전히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부문 간 활동과 시민사회의 참여 및 권력 강화는 지방 정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다. 그리고 지역 차원의 부문 간 활동과 시민사회의 권력 강화에 기반한 참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의한 건강 형평성 악화 가능성을 지역 차원에서 완화할 중요한 전략이기도 하다.
건강 형평성 제고와 관련해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에서 부족한 점들
실제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 작성 안내에는 부문 간 활동, 시민사회 참여와 관련된 내용들이 곳곳에 있다. 지역 보건의료 기관과 보건의료 관련기관·단체 간의 협력·연계, 지역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사업 사이의 연계성 확보 계획 등은 부문 간 활동, 지역사회 자원 간, 공공과 민간 부문 간 협력을 구체화한 것이다. 또한 이해 관계자들의 참여와 소통을 통해 보건 정책 수요를 도출하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지역 보건 정책의 실현성을 확보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계획 수립, 실행, 성과 평가의 모든 단계에서 지역주민 및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기전을 마련하고 있다. 평가 기준으로 지역주민의 참여도를 설정하고 있어서 시민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이 향후 4년 동안 지역의 건강 형평성 제고 중장기 대책이라는 위상을 얻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첫째, 지역보건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서 '취약계층의 건강 관리 및 지역 주민의 건강 상태 격차 해소를 위한 추진 계획'이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세부내용에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 작성 안내 책자에서는 기본방향에서만 이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은 없는 상태이다.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과 제6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 간의 가장 큰 차이가 건강격차 해소를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세부 내용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매우 실망스럽다.
둘째,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 수립과 관련하여 부문 간 활동과 시민사회의 참여가 언급되고 있지만, 이런 전략들이 건강 형평성 강화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는가가 분명하지 않다. 이 두 가지는 건강 형평성 강화 정책의 주요 내용이지만, 건강 형평성 강화와 논리적·전략적 연계에 관한 고려 없이 산발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셋째, 부문 간 활동의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다. 사회복지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 협력과 파트너쉽 구축에 대한 내용도 보건의료 부문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런 수준의 부문 간 활동으로는 건강 형평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영역의 근본적 요인들에 개입하기 힘들다.
넷째, 권력 강화에 기반한 참여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지역 보건의료 계획은 계획 수립 단계부터 실행, 성과평가 단계까지 지역 주민들의 참여 기전 마련을 권장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보건의료 계획 심의위원회에도 주민대표가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심의 과정에서 주민참여를 제도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 참여의 개념이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침 상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역 보건의료 계획 상에서 참여는 언급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권력 강화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도 없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이러면 '형식적 참여'가 될 뿐이다.
건강형평성 제고 위한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이어야
이처럼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이 지역의 건강 형평성을 강화하는 중장기 계획이 되려면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올해는 건강 형평성 관련 내용을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세부 내용에 포함된 이후 첫 계획이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제대로 체계를 잡아 나가야 한다.
일단 건강 형평성 제고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 전략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건강 형평성 제고는 하나의 세부 계획이 아니라, 모든 계획의 기본 원칙과 내용이 되어야 한다.
또한 부문 간 활동의 범위를 사회복지영역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의 교육, 고용, 경제 등의 부문으로 넓혀야 한다. 이는 건강형평성 제고 정책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 시민사회의 해석과 태도, 활동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시작 단계에서 부문 간 활동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사회복지 영역과 건강형평성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연계 시스템은 마련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실질적 참여를 통한 주체화 과정도 필요하다. 이러한 주체화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권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방 정부는 건강 형평성 강화와 관련된 정책 결정에서 시민사회가 주체가 될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제도적 인프라는 읍·면·동 풀뿌리 단위부터 광역지방정부 차원까지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다양한 영역들이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여 지역의 건강 형평성 강화를 위해 추진하기 위한 전략이 제7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주요한 내용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지역 보건의료 계획은 지방 정부의 계획이지만, 그 계획이 실행되는 공간은 지역 사회이며, 실행의 결과는 지역 주민의 건강 및 건강 형평성 수준으로 나타난다. 지역 시민사회가 지역 보건의료 계획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묘하게도 지역 보건의료 계획의 수립 주기는 지방 선거 주기와 동일하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역 주민의 건강 및 건강 형평성과 연관성이 있는 공약들을 제시했다. 과연 이런 공약들이 지역 보건의료 계획에 제대로 담겼는지 유심히 살펴보자. 그리고 제대로 반영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자. 그리고 지방 정부가 면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참여를 거부하고 시민사회의 실질적 참여 기전 구축과 제도화를 요구하자.
시민 사회의 실질적 참여와 권력 강화는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하였듯이 건강 형평성 제고를 위한 정책의 원칙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자. 그 결과 지방 정부의 건강 형평성 제고 정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높이고, 부문 간 활동을 활성화하고, 시민 사회의 권력 강화에 기반한 실질적 참여를 제도화할 수 있도록 하자. 이런 과정들을 통해 4년 후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건강 형평성 제고를 지방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로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2022년에 수립될 제8기 지역 보건의료 계획은 지역 건강 형평성 제고를 위한 중장기 보건 의료 계획이라는 위상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백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경상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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