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다시 국내 상륙했다. 이 불청객을 물리치기 위해 방역당국, 의료기관이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중동의 쿠웨이트를 방문한 뒤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서 출발한 항공기 EK322편(아랍에미레이트항공)으로 지난 7일 오후 4시51분 입국한 61세 남성이 8일 오후 4시 서울대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이날 오후 6시30분께 발표했다. 입국 후 확진까지 24시간, 언론을 통해 공개된 시점까지 27시간이 걸렸다.
이는 2015년 메르스 대유행 때 느려 터졌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르다. 3년 전 메르스 사태는 첫 환자가 입국 후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보름이 걸렸다. 당시 최초의 환자는 카타르에서 출발해 2015년 5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첫 진료는 12일, 확진 판정은 20일 이루어졌다. 확진판정까지 보름 넘게 걸린 것이다. 그 사이 그는 병원 곳곳에서 재앙의 씨인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당시 정부는 메르스 유행 병원 비공개 등 잘못된 판단과 부실 대응, 그리고 늑장 조처로 감염병 위기관리에 완전 실패했다. 이러한 초기 대응 실패로 7개월간 활개를 친 메르스는 그해 12월23일 유행 종료를 선언한 날까지 환자 186명, 사망자 38명, 격리조치 1만6693명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지닌 감염병 재난으로 자리매김했다.
입국 때 기침, 발열 등 폐렴 증상 보였는데도 정상 입국
방역당국에 따르면 이 60대 남성은 지난달 28일 설사증상으로 쿠웨이트 현지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등 사전에 메르스로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미 잠복기 상태를 지나 비행기 탑승 및 입국 당시 타인에게 메르스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상태의 환자였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입국 당시부터 열이 나고 가래, 기침과 함께 폐렴 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데 그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검역이 이루어져 곧 바로 서울대병원 등 음압격리병상이 있는 의료기관으로 이송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입국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그가 입국하면서 검역 체크 때 중동 현지 의료기관에서 메르스 의심증세로 현지의료기관을 내원한 사실이 있는 것과 자신의 증상을 검역신고서에 적어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체크했는데도 공항검역소에서 이를 그냥 지나친 것인지를 조사해야 한다. 이와 함께 그가 어떤 경로로 메르스에 감염됐는지, 쿠웨이트 외 다른 중동국가를 방문한 적은 없는지 등도 추적조사 해야 한다.
방역당국은 그가 입국하면서 밀접접촉한 사람은 그와 인접한 좌석에서 여행한 승객 10명과 승무원 3명, 검역관 1명, 서울삼성병원 의료진 4명, 가족 1명 등 모두 20명으로 파악하고 이들을 자책 등에 격리해 관찰하고 있다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는 또 메르스 환자가 기침을 할 때 침방울(비말, 飛沫)을 통해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밀접접촉자가 이들 외에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놓친 접촉자가 없는지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감염병 전문가, 2015년처럼 유행 가능성은 낮아
이는 2015년 대유행 때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나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취한 자세로 보인다. 바람직한 태도다. 메르스와 같은 위험한 신종감염병을 다룰 때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역학조사와 이동차단과 격리(콰란틴)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 환자가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을 찾은 까닭도 밝혀내야 한다. 삼성과 관련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삼성서울병원이 최고의 치료기관 가운데 하나여서인지, 혹 자신의 증상이 메르스와 유사하다고 보고 2015년 많은 메르스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풍부한 병원을 찾은 것인지를 물어 확인해야 한다.
만약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환자 치료 경험이 많은 병원이어서 찾아갔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행위로 그는 도덕적 해이를 비난받아 마땅하다. 2015년 우리 사회에서 메르스 대유행 이후 메르스와 같은 매우 위험한 신종감염병 증상이 의심되면 보건소에 신고하거나 국립의료원이나 서울대병원 등 음압격리병상이 있는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입국 후 메르스 확진까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만약에 하나 밀접접촉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 하더라도 격리만 잘 하면 더 이상의 확산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해 2015년과 같은 대유행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다.
감염병 전문가인 한림대 의대 이재갑 교수와 전병률 전 질병관리본부장(차의과대학 교수) 등도 이번에는 신속하게 확진 판정이 이뤄졌고 확진환자 접촉한 사람에 대해서도 신속한 격리 조치를 했으며 접촉 인원도 많지 않아 관리가 어렵지 않기 때문에 2015년도처럼 시민들이 동요하거나 불안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위험인식 전문가들은 치사율이 높고 과거 치명적 결과를 보인 역사적 경험이 있는 위험, 즉 한국에서의 메르스 유행과 같은 위험은 실제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이런 점을 감안해 메르스 위험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우리 사회에서 유행한 메르스는 국제적 관심을 끌어 외국 유명 언론사들이 특파원을 한국에 보내기도 했다. 또 당시에는 중동(Middle East)에서 시작해 유행했던 질환이어서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빗대 의료체계와 의료 수준이 높다고 자부한 대한민국(Korea)에서 중동 국가와는 다른 형태로 대유행을 했기 때문에 한국호흡기증후군, 즉 코르스(KORS)란 신조어까지 필자의 작명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메르스 창궐은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박근혜 정부 때 일어난 대표적 참사로서 국민의 민심 이반을 가져온 대표적 재난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아직 이와 유사하거나 맞먹는 참사나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3년 만에 돌아온 메르스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