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운동을 하다 몸에 무리가 와서 진료실을 찾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기록적인 폭염에 냉방기 아래서 바짝 엎드려 지내다가,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서 '이제 운동 좀 해볼까?' 생각하신 분들이 많아진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몸의 속내는 여름 전과 많이 다른데, 의욕적으로 운동했다가 믿었던 뼈와 근육들에 배신당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분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된 반응을 보입니다.
"별 것도 아닌데, 그것 좀 했다고 몸이 이러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이 전과 같지 않은 것이 늘 문제입니다.
몇 몇 나이든 환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산에 있는 공원에서 운동을 했다는 점. 호기심이 일어 좀 더 자세히 물으니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운동기구를 이용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근처에 대형 스포츠센터가 있지만, 등산도 하고 좋은 공기도 마시고 동네 분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마을 근처의 산을 애용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산만 오르내리기 뭣하니 중간에 설치된 기구들을 이용해서 운동한 것이 몸에 무리가 된 이유였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써서 문제가 생기거나, 한 두 번은 그래도 버텨냈는데 반복되면서 쌓인 피로를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지요.
사람도 동물인데, 동물은 그 정의에서처럼 움직이는 생명체이므로 운동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좋은 건강을 유지하는데도 꼭 필요합니다. 동물이 잘 안 움직이면 아프거나 다친 것이고, 건강한 동물도 못 움직이거나 활동을 제약하면 병에 걸립니다. 멀쩡한 사람도 병상에 한 달만 눕혀두면 환자가 되고, 동물원 동물들이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인간은 이 운동이란 장르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었습니다. 다른 종에 의한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난 인간은 놀이적 인간답게 운동에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가미했고, 사회적 동물답게 때론 다 같이 모여서 누가 잘 하나를 겨루며 즐기기도 합니다. 또한 도구적 인간답게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운동까지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운동들을 스포츠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운동은 즐겁고 건강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앞서 이야기한 어르신들처럼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과도한 운동량이나 지나친 욕심, 혹은 잘못되거나 본인에게 맞지 않는 방식에 의한 경우가 많은데, 기구를 잘못 사용해서 탈이 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 운동기구 또한 본래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을 보다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이 기구에 맞추는 것 같단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 - 그렇게 살기 위한 건강의 수준과 심신의 상태 - 그것에 도움이 되는 운동 - 운동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도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운동기구가 눈앞에 놓여 있으니까 하고, 유행하는 운동방식에 맞춰 운동을 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지요.
몸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세심하게 살필 수 있는 트레이너가 옆에서 하나씩 알려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산에 올라가 운동하시는 어르신들의 선택에 어쩌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 공상을 더하자면, 이런 도구에의 의존성이 커질수록 어쩌면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몸의 기능이 퇴화하거나, 도구에 맞춰진 인간이 되거나, 몸의 상상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난감이나 게임기가 없으면 놀지 못하는 아이들처럼 운동기구가 없으면 어떻게 운동해야 할지 모르는 어른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기우에 불과하겠지만, 왜 이 도구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없이 무작정 따라만 가다보면 그렇게 변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또한 진화라고 불리려나요?
공원의 운동기구에서 부상당한 어르신들에게는 일단 기구에서 내려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혹시 몸 상태가 좋아지고 난 후 다시 기구를 써서 운동하더라도 살살, 천천히, 그리고 좀 부족하다 싶을 정도만 하시라고 했습니다. 기구를 부려야지, 거기에 딸려 가면 다쳐서 그간 애써 쌓은 걸 한 방에 날린다고도 했지요. 웃으면서 알았다고들 하셨는데 몇 번은 더 당부해야 할 겁니다.
퇴근하고 아이랑 동네를 산책하는데 곳곳에 설치된 운동기구들이 보입니다. 저것들이 과연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걸까, 해가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설치할 때 행정편의 보다는 사용자(제 경험으로는 대부분 노년층과 아이들이었지요)에 대한 보다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내 도구에는 영혼이 없으니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결국 그것을 쓰는 사람 몫이겠지 싶습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진 제 얼굴이 별로였는지 아이가 "아빠! 뭐가 그렇게 심각해?"라고 묻습니다. 순간 정신이 퍼뜩 듭니다. 운동뿐만 아니라 생각도 방향을 잃으면 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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