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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뒤 새누리? 아니면 한국사의 또 하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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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선 뒤 새누리? 아니면 한국사의 또 하나 데자뷰?

[시민정치시평] 진정성과 능력의 평가가 좌우한다

사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국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꽤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서 국가를 떠나고 있다. 참지 못한 이들은 나라가 아니라 아예 이 세상, 우리 누리를 떠나고 있다. 내가 굶주리거나, 소외되거나, 아프거나, 아니면 파산 위기에 시시각각으로 떠밀리고 있는데, 대한민국으로부터 나는 그 어떤 구원을 기대할 수 있는가?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아주 응급한 상황에서 소방대에 거는 119 전화 뿐이다. 그나마 응급 상황에서 119만은 비교적 신속하게 수많은 '나'에게 달려온다. 112는? 다급하게 전화하는 여인들의 비명을 듣고도 생사의 갈림길에 방치하였다. 지금 21세기 ― 국가는 나에게 무엇인가?

어떤 L-세기 : Lucky 아니면 Lost?

올 12월 대선,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평가능력이 또 다시 평가대에 오른다.

지난 2007년의 17대 대선에서 보여준 유권자들의 선택능력은, 단적으로 말해, 별로였다. 당시 유권자들이 묻지마 몰표를 준 사람은 선택되었다기보다 돈독이 오른 유권자들의 '욕망의 아바타'로 제조되었다. 하지만 이 아바타의 성능은 아주 신통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조자를 수없이 기만하였다. 이제는 입에 올리면 얼굴이 붉어질 일이지만, 그의 '747 공약'은 유권자 모두를 부동산 부자, 주식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경제적 포퓰리즘의 막장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의 진정성을 전혀 평가하지 않았고 결과는 5년 내내 지속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그것도 누구에게나 뻔한 꼼수로 점철된 저질 정책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대통령직을 위협당하지 않았다. 이렇게 엉망의 정책을 펴고도 5년 임기를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는 선거민주주의의 제도적 혜택을 그만큼 톡톡히 누린 사람은 단군 이래 없었다.

이런 쓰거운 결과를 5년 내내 맛보고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 유권자 시민이 또 어떤 잘못된 선택을 할지 벌써부터 속이 탄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가 잘못될 경우, 이제 인구 5000만의 저성장 국가, 고령화 사회, 고실업 세대를 눈앞에 둔 21세기 중반기의 우리 삶을 아예 놓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다음 세 가지 사항에 대해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21세기는 우리에게, '행운의 세기(Lucky Century)'였던 20세기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상실된 세기(Lost Century)'가 될 전망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비관은 반만년 우리 역사 안에 잠복하고 있는 각종 역사적 고질병에 대한 치료를 미루어 왔다는 데서 기인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마치 한 여름 밤 어둠 속에 다시 나타난 유령을 보는 것 같은 오싹함을 준다.

첫째, 근대사의 데자뷰 : 친일 콤플렉스, 분단 트라우마

우선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가 부지런히 변화하여 발전해 왔다고 자부해 왔건만, 우리 근대사의 과거 유산이 여전히 강력하게 우리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확실해졌다. 북한과의 관계가 발원지가 된 '종북 논란'이나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류협정에서 느닷없이 그 마각이 드러난 '친일 프레임'은 식민지 해방 이후 분단된 우리나라가 식민지체제로부터의 해방도, 분단체제로부터의 해빙도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립된 국민국가의 안정된 운영은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우리가 아직도 이루지 못한 미완의 꿈이다. 결정적 순간에 등장하는 친일 콤플렉스와 분단 트라우마는 한국 근대사의 데자뷰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 한국 고대사로부터의 데자뷰 : '사유국가'의 재림

7월 1일자 재벌닷컴 발표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대한민국 100대 그룹의 자산 총액은 2011년 말 현재 1446조7620억 원으로 정부 자산총액 1523조2000억원의 95%에 달했다. 이는 민간 기업들이 양적ㆍ질적 측면에서 정부와 대등한 수준에 이른 상황을 드러내준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기업 쪽이 비교할 수 없이 작았다. 하지만 기업들이 연평균 8%가량 자산을 증가시키고 있어 올해 안에 정부 자산을 초과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 가운데,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재벌 자산총액만 754조로 정부 자산의 절반 수준이며, 100대 그룹 총 자산의 절반이 넘었다. 특히 1위 삼성그룹의 자산총액만 279조820억원으로, 25∼100위에 속한 그룹의 자산총액을 다 합한 규모(267조8천490억원)보다 컸다. 자산 순위가 높은 그룹일수록 실적도 좋은 편이어서 앞으로 그룹별 자산총액 격차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이상의 서술은 강종훈 한지훈 기자, 「5대재벌에 富 집중…100대그룹 자산총액의 절반」에 전적으로 의존함.)

그런데 이것은 단지 재벌 권력의 독재화나 양극화의 심화를 보여주는 현상으로서 유독 이 시대에만 나타난 경험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역사가 시작되어 고대 국가를 수립했던 이래 국가 흥망이 교착하던 때 반드시 작동하던 망국 요인이 현대 대한민국에서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좌이다.

반만년 우리 역사를 상기해 보자. 통일 신라는 삼국통일 뒤 확보되었던 막대한 토지와 인력 및 기타 부의 축적 가능성을 골품제의 신분서열에 따라 귀족들에게 철저히 사유당했다. 후삼국에 이르러 신라는 더 이상 왕조국가로서의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신분에 따라, 지방에 따라, 분열되었다. 신라는 왕조국가가 아니라 사실상 귀족과 호족들의 사유국가였다.

이른바 토지와 노비의 겸병은 고려 시대에도 일시 정지되었다가 다시 재연되었다. 이번에는 지방 호족과 문벌 귀족, 그리고 무신 족벌뿐만 아니라 사원이 가담하였다. 최영이 왜구의 토벌에 나섰을 때는 징발할 군량과 병역이 없을 정도로 국가 경제는 피폐해 있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 토지 겸병과 노비 제도의 혁파는 정도전의 개혁과 세종의 치세로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하지만 사원을 대신하여 서원이 남설되었고, 사액서원의 토지는 대대로 면세혜택을 누렸다. 조선 후기에는 세도정치가 심화되면서 국가가 안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토지와 노동력의 보장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열강의 무력 침략에 맞서 국방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구한말 대한제국의 각종 개혁은 이렇게 토지 지주들에게 사유당한 왕조국가의 무력한 재정능력으로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다. 결국 왕궁이 일본의 난적들에게 유린당하고 고종 황제 앞에서 명성 황후가 근위병도 없이 시해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100대 그룹 아니 5대 그룹으로의 자산 편중은 역대 한국사의 망국 국면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났던 '사유국가'의 재림을 예상하게 만든다.

셋째, 현대 한국 국가의 데자뷰 : 자기 욕망에 대한 자기기만

과거 경제개발 국면을 이끌었던 박정희 체제는 경제적 성취의 실질적 측면은 빈곤했지만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돈을 돌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이로 인해 반세기동안 대한민국 시민들은 돌아다니는 돈이면 언제든지 자기 주머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주로 1950년대 전쟁 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뼈저린 빈곤의 끝자락에서 3저 호황을 거쳐 엄청난 대박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가장 좋은 시절에 청년기와 장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제 노년기를 앞두고 있다. 엄청난 돈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안에서 돌아다니지만 그 돈 중에 노년기에 접어든 '나'의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 어떤 정치인도 기업이 성장하면 바로 나도 부자가 된다는 허황된 꿈을 불어제끼지는 않을 것이다. 747공약에 못지 않게 허황했던 '줄푸세' 공약을 내세웠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예비주자 쪽도 경제민주화, 민생, 복지 등으로 대선 화두를 완전히 확 바꾼다고 한다. 야권은 애초부터 이런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만큼 이제 이런 민생 공약은 사실상 국가정치권의 합의사항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잠재적 합의 사항을 추진할 진정성과 그 능력이다. 민주진보세력의 야권은 그 정치적 능력이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보수 세력의 여권은 자기들이 내세우는 공약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이 말끔하게 씻겨 있지 않다.

누가 그것을 알아볼 것인가? 국가가 알아서 해줄 것인가? 이번에는 분명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전과14범'이라도 내 주머니에 돈만 넣어주면 된다는 식의 묻지마 투표로는 대선 뒤의 세계가 새로운 세상, 새누리가 될 것 같지 않다. 당장은 분배가 안 되더라도 경제만 키우면 된다는 식의 얘기를 했던 전력이 있다면, 과거의 그런 망언을 지금은 뼈속까지 반성하고 고치고 있는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과거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자고 했을 때 그것이 기업의 일이라고 정부가 거부했던 일에 동조한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부동산 광풍을 잡을 마지막 기회를 놓쳤던 정책 감각에서 이제 엄청나게 덩치가 커진 재벌을 잡을 배짱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선 뒤의 세계가 새 세상, 새누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사의 데자뷰를 또 한 번 겪을 것인가? 결국 유권자 시민이 만들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새누리든 지옥이든, 시민이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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