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허둥대는 복지부와 입양기관
팀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그 기사가 나간 후, 중앙입양정보원과 대한사회복지회와 보건복지부가 보인 반응을 좀 이야기하고 싶다. 기사의 내용에 이 기관들의 과오와 책임에 대해서 준열하게 지적하는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입양정보원장은 그 기사의 필자였던 제인 정 트렌카에게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다. 기사 내용이 중앙입양정보원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고 그런 점에서 기사의 부당성에 대해서 몇 마디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에는 평소 서비스의 수혜자들인 입양인들의 경험과 의견을 들으며 기관의 사업의 과제와 내용을 가다듬어갈 생각은 추호도 안하고 있다 막상 일이 터지자 좀 무마해보겠다는 행태인양 싶어 면전에서는 참았지만 조금 우스운 만남이었다고 제인은 말했다.
대한사회복지회에서는 팀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전화를 몇 차례 했다. 불똥이 터지니까 무언가 허둥대며 무마해보려는 듯이 보이는 태도가 많이 불편했었다. 중요한 문제는 한 사람의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는 일을 통해서 과거의 불법 관행이 덮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팀의 경우 대한사회복지회는 사실상 입양특례법에 명기된 법조항인 "아동이 입양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사실을 확인해서 법무부에 보고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법위반의 책임이 있었다. 팀의 사건을 통해서 과거의 불법관행이 드러났기 때문에 관리감독관청으로부터 행정조치를 당해야 하는 상황을 피해보려는 냄새가 풍겼다. 나중에 대한사회복지회는 입양사후서비스 담당자를 <뿌리의집>으로 보냈다. 어느 정도 안정화된 팀이 <뿌리의집>에 와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참 괜찮으신 분인 담당자는 돈으로 <뿌리의집>이 팀을 돌보는 일에 협력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비록 시민단체 <뿌리의집>이 연초엔 언제나 재정궁핍이 극에 달하는 몇 달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사설입양기관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땅 새로운 아동양육담론, 혹은 60년 해외입양에 연루된 우리사회의 입양에 관한 관념을 두고 "입양 활성화"냐 아니면 "친생가족 보호 우선"이냐를 두고 사설입양기관들과 팽팽한 대립을 겪고 있는 <뿌리의집>에게는 비록 팀을 중간에 두고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설입양기관으로부터의 후원을 제안 받는 일 그 자체가 하나의 모멸에 다름이 아니었다.
얼마 후에 보건복지부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아동복지정책과에서는 지난 6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해외입양 보낸, 공식통계 상으로 거의 17만 명에 이르는 아동들이 입양국의 국적을 취득했는지를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제인의 기사, 혹은 이태원에서 노숙하던 팀에 관한 기사가 보건복지부의 담당 공무원들의 일거리를 산더미가 되게 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 일이 궁금하다. 보건복지부는 영아시기에 입양국으로 보내져서 아직도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여차하면 추방의 위기에 직면해야 하는 해외입양인들의 숫자와 이름을 파악하고 있는지? 왜냐하면 미국에서 이들을 추방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에 추방자의 명단을 통보할 때, 그들의 이름이 파악되어 있으면, 그 이름을 보고 입양인인 사실을 우리 정부가 미리 알고 그 사람에 대한 입국거부를 미국정부에 통보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그들을 우리나라로 추방할 수 없다. 또 자국으로 입양해서 30~40년을 미국에서 산 사람들을 단순히 우리나라가 그들의 출생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로 추방되는 비인도적인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프레시안(허환주) |
너무 이야기가 길었다. 이제 팀의 이야기를 하겠다. 제인과 마이클이 팀을 만나고 추방된 입양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안 것은 지난 해 8월 말 무렵이었다. 두어 주 후에 추석이 있었고, <뿌리의 집> 추석잔치에 팀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 날 팀이 나타나지 않았던 일이 조금 아쉬웠었다. 그런데 우리가 처음 팀을 만났을 때, 그는 자기 이름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정신분열증이 심했다. 서울역의 노숙자 쉼터 우연식 목사의 안내를 받아 서울역 노숙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나온 의사로부터 일주일 분의 약을 받을 수 있었고, 또 영등포의 노숙자들을 위한 요셉의원을 알게 되었다. 제인과 마이클과 나는 교대로 팀을 영등포의 요셉의원으로 매주 데리고 가서 약을 타왔다. 그리고 매일 저녁 팀이 노숙하고 있던 이태원으로 가서 저녁을 사주고 약을 건네주었다. 함께 며칠을 지내는 동안 우리는 팀이 사실은 심성이 굉장히 고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서히 약효가 나타났고 우리는 팀을 이태원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살도록 거처를 마련했다. 사실 많이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팀은 고시원의 어깨 돌려 눕히기도 어려운 좁은 공간을 그럭저럭 견뎌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은 주민등록도 없는 팀에게 진료와 약을 처방해준 영등포역 부근 요셉의원의 의사들이었다. 낮 시간 동안의 자신들이 근무하는 병원의 격무를 뒤로 하고 저녁시간을 자원봉사의료인으로 노숙인 특유의 냄새가 진동하는 진료실을 유쾌 발랄하신 모습으로 오가셨다. 나중에 팀이 <뿌리의집>을 주소로 하고 동사무소로부터 주민등록증을 부여받고 나서 의료급여를 신청했을 때, 요셉의원에서 팀의 진료기록에 근거해서 정신분열증환자임을 증명해줬고, 팀은 기초수급자와 1종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 밤마다 영등포역 부근까지 가서 요셉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대신, 동네 정신과의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요셉의원 덕분에 사실상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이었다. 얼마나 감사한가? 지금은 작고하신 요셉의원의 설립자 선우경식 박사는 돈을 벌기 위해 의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의학을 공부했던 것을 분명히 하고 처음부터 요셉의원을 무료병원으로 개원했다고 한다. 선우경식 박사는 영등포 쪽방촌에 요셉의원을 열고 21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하느님이 자신에 준 선물로 여기면서 사시다가 몇 해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여의도성모병원 내과과장을 역임하신 신완식 박사가 뒤를 이어 이 무료병원을 운영하고 계시다.
팀은 석달 동안 이태원의 한 고시원에 머물렀다. 그는 자주 청운동에 소재한 <뿌리의집>으로 와서 지냈다. 그에게는 <뿌리의집>이 언어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인종간 입양의 가파르고 가혹한 경계를 넘어 살아온 입양인들은 종종 가족보다 진한 유대감을 나눈다. 비록 정신분열증 환자였긴 하지만 몇 달간의 투약으로 그는 서서히 정상인과 삶의 여정을 같이하는 자리로 나가고 있었다. 마침 지난 해 9월부터 올해 5월 11일까지 매 일요일 오후에 <뿌리의집>에서는 제2회 싱글맘의 날을 위한 연대단체 회의가 있었고 회의를 마치면 입양인들과 양육미혼모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저녁식사를 준비했고, 팀도 같이 했다. 아니 사실상 팀을 위한 일요만찬을 한 것이었다. 7개월의 일요일 저녁 만찬, 우리는 때로 피자도 굽고 때로 육개장도 끓이면서 이 날들을 지냈다.
그해 12월 캐나다에 사는 딸의 출산 뒷바라지로 나갔던 아내가 돌아오자 나는 아내를 설득했다. 팀을 <뿌리의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지내게 하자고. 가장 아름답게 보였던 이 결단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팀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였고 <뿌리의집>에는 전 세계 14개국으로부터 매일 혹은 매주 새롭게 오고가는 입양인 게스트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게스트들이 올 때마다 팀의 형편에 대해 일정한 설명이 필요했고, 팀이 밤중에 혼자 내는 히히덕거림이나 소름으로 게스트들도 두려워하거나 잠을 설쳐야 했다. 몇몇 예민한 입양인들은 결국 호텔이나 일반게스트하우스를 구해 <뿌리의집>을 떠났다. 지난 5월 <뿌리의집>을 팀도 떠났다. <뿌리의집> 책임자인 필자나 제인이나 마이클은 물론 모든 직원들도 고생을 말할 수 없이 해야 했다. 팀은 처음에는 고운 마음으로 지내다가 점점 자신의 공간을 넓혀서 다른 게스트나 직원들이 일상생활의 모든 국면에서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마지막 두 달은 약 복용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았고, 약에 대해 말하면 자신의 사적인 삶에 개입한다고 화를 내었다.
팀의 일탈로 복지부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그러나 팀은 <뿌리의집>을 떠나고 나서도 이태원의 고시원에 머물면서 매일 <뿌리의집>에 와서 지냈다. 이른 아침에 불쑥 나타나서 거의 하루 종일을 지냈다. 사람들이 서서히 팀에게 '노(No)'라고 말하는 일이 잦아졌고 팀의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거듭되었다. 6월 중순 나는 보건복지부를 찾아가서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보건복지부가 입양사후서비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팀에 대한 긴급주거지원을 해줄 것, 정신건강문제에 전문성을 가진 영어가 통하는 사회복지사를 배정해줄 것, 팀의 문제 해결 과정 전체를 보건복지부의 책임 하에 수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일은 낯선 일일 터이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제도와 관행을 통해서는 긴급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담당직원이나 과장이 장관과의 협의를 통해 비상조치를 취해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장관과의 협의는 물론 담당부서 공무원들의 결정사항일 터고 내가 콩 놔라 팥 놔라 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했다.
일주일 후 종로구청에서 소위 솔루션회의라고 하는 것이 열렸다. 종로구청의 사회복지과 직원들 다섯, 종로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팀장, 중앙입양정보원 사무총장과 직원들, 대한사회복지회 입양부장, 그리고 제인과 나, 열두 명이 모여서 두 시간 가량 회의를 했다. 모임의 규모와 시간은 대단했지만, 결론은 대한사회복지회의 입양부장이 혹시 대한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팀을 머물 수 있도록 할 수 있겠는지를 그 다음 날까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 다였다. 대한사회복지회는 강남구 역삼동에 거대한 빌딩과 병원을 가지고 있는 사회복지기관이다. 빌딩의 상층에는 해외에서 입양할 아기들을 데리러 오는 서양입양부모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입양인들 중에도 간혹 그곳에 머물다가 <뿌리의집>으로 오는 이들도 있다. 방 안에 화장실이 달린 호텔과 같은 시설이다. 팀이 그곳에 간다면 우선 주거로 인한 스트레스가 낮아지고 그러면 잠재된 정신병력의 발현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내심 기대를 했다. 거기다가 대한사회복지회는 입양사후서비스부서가 있고 영어가 능통한 직원들이 있으니까 돌아가면서 팀을 돌본다면 어떤 회복의 기미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다가 종로구 사회복지과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강남구가 불우이웃돕기 기금도 훨씬 많으니까 그리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거들었다. 비록 입양부장은 회사로 돌아가서 의논해보겠다고 했지만, 대한사회복지회의 핵심적인 사업을 수행하는 부서의 부장이 하는 제안이니까 믿어보는 것이 더 지혜로운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
물론 나는 대한사회복지회의 게스트하우스가 팀을 위한 영구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대한사회복지회가 팀을 입양 보낸 기관으로서, 또 그의 국적취득여부의 확인이라고 하는 법적책무를 다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일말의 책임은 지려니 하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한사회복지회는 내 속에 있던 그런 기대감을 야무지게도 무너뜨렸다. 지난 60년 세월 입양기관이 입양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기관을 성장시켜 온 일을 총체적으로 기술하는 일은 접고, 지난 해 만 따져보더라도 보건복지부의 보고에 의하면 대한사회복지회는 국내입양 333명, 국외입양 292명을 알선했다. 국내입양에 대해서는 정부가 한 아동당 270만 원의 입양수수료를 지급하고 있고, 국외입양의 경우 정부가 한 아동당 1만 달러 이상을 못 받도록 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 기관이 지난 한 해 입양을 통해서 창출한 입금액은 대체로 38억 원 내외 혹은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다가 이 기관은 영아원과 미혼모의 집들과 장애인복지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는 바, 연간 예산은 수백억에 이른다. 물론 그 시설들의 직원 급여와 운영비는 국비지원이다.
중앙입양정보원장이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받은 제안은…
그런데 이 기관이 팀을 위해서 그 작은 방 하나를 내어놓고 정신심리적 안정을 위한 환경, 그것도 본격적인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길어야 두 달이 못될 기간 동안의 숙소 제공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 전해들은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중앙입양정보원 원장과 사무총장이 대한사회복지회로 가서 회장을 방문하고 협상을 한 결과 대한사회복지회의 게스트하우스에는 팀을 받아들일 수 없고, 팀의 주거 안정 다른 말로 하면 모텔에서 숙박할 수 있도록 200만 원을 지원받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중앙입양정보원은 보건복지부가 입양관련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정부예산을 출연하여 설립한 사실상 준정부기관이고, 대한사회복지회는 그런 점에서 피감독기관의 위치에 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사안에 대해서 대한사회복지회장을 불러서 야단을 쳐야할 위치에 계신 분이 기껏 가서 협상의 결과로 돈을 받아 팀을 위해서 무엇을 해보겠다고 하고 있으니 우습지 않은가? 더구나 정부를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중앙입양정보원이 피감독기관으로부터 금전을 수수하는 행위는 이해충돌의 행위이며, 이는 이제 막 우리나라가 가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아동입양에 관한 헤이그협약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돈 주는 사람이 큰 소리 치는 세상이라는 점은 동서양이 없고, 그런 점에서 대한사회복지회가 중앙입양정보원에 대해서 이 돈을 주는 것을 통해서 우세적 지위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필자 주: 며칠 후에 중앙입양정보원 사무총장으로부터 기사에 관한 항의 전화를 받았다. 필자가 지난 6월 29일 오후 사무총장으로부터 전화로 들은 바는 "오늘 아침 팀에 관하여 협조를 구하기 위해 중앙입양정보원 원장과 사무총장이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을 방문하여 팀의 주거 안정을 위하여 200만 원을 받기로 했고, 그래서 팀이 일시적으로나마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을 알아봤는데, 사직공원 근처의 산장모텔이 괜찮은 것 같아 섭외를 해두었고, 이제 곧 60만 원을 송금하겠다. 그러니 목사님께서 팀을 보는 대로 꼭 산장모텔로 데려다 주고 거기서 지내도록 해주시면 좋겠다"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일은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팀은 산장모텔로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튿날 아침 은평시립병원에 강제 입원조치가 됐다. 사실상 200만 원이 미쳐 송금되기 전에 그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실제적으로 200만 원을 안 받았을 수도 있겠다. 사무총장이 "실제로 돈을 받은 것은 아니다"고 밝혀와 기사를 수정한다.)
사실상 입양사후서비스의 책임은 보건복지부에 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입양서비스의 결과는 국가간 입양의 문제가 시민권 문제로 귀결되는 일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입양의 문제는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권의 문제이자 아동인권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이 땅 정부가 이 아동인권과 시민권에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입양의 문제를 사설복지기관에 맡긴 채로 팔짱을 끼고 살아온 지 어언 60년, 우리 정부와 사회의 맹성을 촉구한 일이 지난해 일어났는데, 이는 모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귀환 입양인들이 주축이 되어 입양특례법의 개정을 이루어 낸 일이다. 오는 8월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갈 이 법에는 입양을 국가기관이 규율하도록 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 가정법원에 의한 입양허가제의 도입됐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 입양을 규율하는 행정권력의 무능과 무의식과 무사려다. 입양이 아동복지를 넘어선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이들의 시민권에 관한 문제라고 하는 예민한 의식이 있을 때, 보건복지부나 중앙입양정보원이 입양기관에 대해서 감독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다. 사실상 역대 보건복지부 국장이나 차관을 하던 이들이 입양기관의 회장으로 취임하는 일이나, 입양기관의 장이 후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감독기능을 예민하게 발전시켜 오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다. 이런 물렁한 행정권력의 정체성을 지니고서야 어떻게 60년 입양의 역사에 드리운 그늘들을 수술하고 그 아래에서 고통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보듬어 줄 수 있겠는가?
정부는 팀의 강제추방을 막아야 했다
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그만 입양을 싸고도는 문제를 오래 논하고 말았다. 팀은 지난 보름 동안 거의 매일 <뿌리의집>을 찾아왔다. 필자가 조용히 달래서 함께 나가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하늘이 유리라면 온 하늘이 박살나 유리 조각 우박이라도 내릴 만큼 소리를 질러댔다. 팀에게 쌓인 거절의 아픔과 분노의 응축을 그 누가 가늠할 수 있으랴!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팀의 사적 삶을 시시콜콜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환자다. 필자가 환자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뿌리의집> 그 누구도 정신질환자를 다루는 전문훈련을 받은 이가 없고, 그에게 강제로 투약할 방편이 없고, 이런 팀을 <뿌리의집>에 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사실상 함께 머무는 사람들에 대한 무책임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새벽에도 팀은 <뿌리의집>에 들어왔고, 결국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며 돌아갔다. 나는 팀에게 말했다. 다시 오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입양인의 친구로서 한 말이 아니라, 정신질환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조차도 불가능한 사람으로서, 운영하고 있는 <뿌리의집>이 필자의 사사로운 인정에 끌려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중앙입양정보원과 보건복지부에 간청하고 그들이 주체적 결단과 행동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주기를 이미 부탁한 사람으로서, 또 그들의 조언에 따르고 있는 사람으로서, 팀과의 정을 끊음으로서 팀이 정부가 주도하는 해결책에 응하도록 해야 하는 차원에서 가혹하게 팀에게 말했다.
사람이 자기의 약함을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실상 한 목사로서 또 해외입양인센터 <뿌리의집>을 운영하는 책임자로서 필자는 팀에 관한 한 기운이 진했다. 정신질환자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 아내와 함께 다섯 달을 함께 살았으면, 그 가정이 실로 편할 것인가? 400미터 계주의 첫주자로 나선 나는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기 전에 쓰러졌다. 팀에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한 것이다. 경착륙! 영어로는 아마도 crash landing이라고 할 것이다. 상상이 가는가?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나는 내 아내에게 팀을 연착륙시킬터이니 거듭 기다려보자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보건복지부를 찾아가서 내게 맡겨진 경주의 코스를 넘게 달렸고 이제 숨이 차니 바통 넘겨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복지부는 그러마고 했지만 그는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바통과 들고 땅에 엎어졌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한 것이다. 환자인 팀에게, 추방자인 팀에게, 그가 태어났을 때 받아주지 않았던 이 땅 사람들을 대표해서, 팀과의 10개월에 걸친 우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한 것이다!
참으로 긴 이야기,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은 대단하신 분들이시다. 나는 그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그래도 무언가 결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의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한국 정부는 미국으로 입양 보내진 이들 중에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들을 파악하고 있다가, 이들을 한국으로 추방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통보에 대해서 거절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한국으로 추방되지 않을 수 있다. 팀과 같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입양인의 경우 미국국적이 없다하더라도 그 땅에서 30~40년을 산 이들이다. 미국의 사법체계 안에 있는 정신질환 서비스를 받으면서 그 땅에서 사는 것이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 인프라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은 나라에 살게 하는 것보다 덜 가혹한 일이 아니겠는가?
둘째, 한국 정부는 20만 해외입양인 중, 곤경을 겪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종종 정부차원에서 전개되곤 하는 성공한 입양인에 대한 광분 수준의 미숙함을 이젠 내던질 때가 되었다. 장관들은 성공한 입양인 스키 선수와 앉아 식사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새로 된 유럽 어느 나라의 입양인 장관을 향한 어떤 정당의 구애는 구차스럽고 가련하다. 왜 이 땅 아동양육체계를 바로잡을 생각을 안 하는가? 팀처럼 곤경을 겪고 있는 입양인들이 자의든 타의든 한국으로 귀환했을 때 중장기적으로 혹은 평생 머물면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조그만 소셜하우스(Social House) 하나를 긴급히 설립해야 한다. 지난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소재한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노숙하던 두 한국계 입양인 쌍둥이가 있었다. 이 둘은 정신질환자들이었다. 이들을 돌보던 워싱턴 지역 한국인 목사가 밤중에 전화를 했다. 혹시 두 자매를 데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이들을 위한 소셜하우스 같은 것이 있느냐고. 정신질환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배치되어 있고 최소한 영어로 의사소통의 가능한 그런 집이 없느냐고. 나는 내가 아는 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20만 명의 자국 아동을 해외입양 보낸 나라가 사회부적응에 내몰려 모국으로 돌아와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소셜하우스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이태원 쪽방과 신촌 고시원을 전전하는 입양인들
그렇다. 이태원의 지하쪽방들과 신촌의 고시원들에서 살고 있는 입양인들이 많다. 고시원에 살아봤는가? 쪽방에 살아봤는가? 이 땅에 태어나서 입양의 이름으로 추방된 이들이 돌아와서 살고 있는 곳이 그런 곳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또 진정 아무도 그렇지 않기를 눈물을 머금고 기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자그마한 소셜하우스 하나 세우는 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결심하고 국회의원 몇 분이 결심하면 된다. 이 땅의 아픔과 수치를 치유하는 일을 책임지지 않을 거면 도대체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성공한 입양인들과의 만찬을 나누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말한다. 팀을 길에 버려두지 말라. 그는 길 위에서도 언어장벽, 문화장벽으로 감옥에서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어제 용산경찰서에서 날아온 편지 한 장을 받았다. 한 주 전의 일이다. 팀이 지난 금요일 저녁 무렵 이태원에서 노숙하고 있는데, 나이 많으신 어른 한 분이 지나가다가 '이런 데 누워있지 말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팀과 노인은 말이 통하지 않았고 결국 멱살잡이까지 갔다. 그리고 힘이 센 팀이 노인에게 한 방을 먹였고 노인은 땅바닥에 쓰러졌다. 지나가던 이들이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해서 보니 노인은 길바닥에 쓰러져 있고 팀은 현장을 떠난 뒤였다. 결국 경찰에 의해 팀은 체포되었고 용산경찰서를 거쳐 서부지검에서 하룻밤 구류되었다가 훈방되었다. 팀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환자다. 한국어로 이 땅 사람과 소통할 수 없는 점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장애인에 다름이 아니다.
팀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시민이다. 이 땅의 시민이 해외입양이라는 제도 하에서 구성된 자신의 몸, 그것도 모국으로부터의 추방과 입양국으로부터의 추방이라고 하는 거듭되는 거절과 언어소통불능의 장애를 안고 비애와 분노와 분열의 원초적 신음으로 가득한 몸을 이태원 얼룩진 빌딩 그늘에 누이고 있는 것을 장관은 짐짓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만 계실 건가? 국민의 헌법적 복리에 대해서 책임 있는 정부의 담당장관이 가만 있으면 되겠는가? 필자가 이렇게 말하면, 보건복지부도 최선을 다하고 있노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긴급에 상응하는 결과가 안 나오니까 하는 말이다. 필자는 민간인으로서 또 비전문가로서 이 일을 지금까지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서는 필자가 이 문제의 해결자가 되는 것이 팀에게도, 필자에게도, <뿌리의집>에도, 정부의 어느 기관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으니, 적어도 정부차원에서 해결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입양정보원이 직접 나서 문제를 풀어가는 주인이 되어 달라, 직접 행동을 취해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직도 중앙입양정보원 사무총장은 직접행동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필자에게 팀을 여기로 데려가 달라, 저기로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거듭하고 있다. 내가 벌써 그에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한 사람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답답하다.
<후기> 지난 금요일 새벽 광분에 사로잡혀 <뿌리의집>을 떠났던 팀은 그 날 낯 신촌 어느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한 후, 토요일 아침 그가 진료 받았던 광화문 부근의 한 정신과의원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결국 은평시립병원에 강제 입원조치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그가 영원히 병원에 있을 것이 아니기에, 이틈에 그가 지낼 소셜하우스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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