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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후빈곤 예방, 현재 국민연금만으로 어렵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연금개혁, 세대 간 형평성과 다층연금체계를 향해 나아가자

얼마 전 발표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 당초 2060년이었던 기금소진 시점이 3년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70년 뒤에는 정말 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살펴보자.

국민연금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발표한 개편안은 두 가지이다.

(가)안은 앞으로 40%로 낮아질 예정인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1%로 2%p 인상하는 방안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지난 2007년 개혁의 결과로 2008년부터 소득대체율이 매년 하락하기 시작하여 2028년에 최종 소득대체율이 40%에 맞춰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2018년 현재 소득대체율이 45%인데 결국 더 이상의 하락 없이 현 수준을 유지하자는 것이고, 이를 위해 보험료율을 11%까지 인상한다. 2034년 이후에는 재정재계산 결과에 따라 조정하자는 제안이어서 후반부는 다소 불투명하다.

(나)안은 원래대로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 40%로 낮추고, '70년 적립배율 1배'로 설정된 재정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개시연령 등 다양한 조치들을 조합하는 방안이다. 우선 1단계로 2029년까지 보험료율을 9%에서 13.5%로 인상하고, 2단계에서는 2030년부터 수급개시연령 상향, 급여율 조정, 추가 보험료율 인상 등을 조합한다.

노후소득보장의 측면에서 볼 때 (가)안이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여 더 이상의 저연금화를 막아보자는 것이라면, (나)안은 국민연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함께 강화하여 다층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두 안 모두 보험료 인상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규모 사업장의 인건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은 이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노후소득보장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 대다수가 동의하나,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합의를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대 간 형평성이 왜 중요한가

우리나라 국민연금 논의에서 종종 부상하는 제안이 부과방식(Pay-As-You-Go)이다. 이번에도 역시 등장했다. 예상보다 일찍 기금고갈이 우려되는 가운데 아주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일 수 있다. 설령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후세대의 기여분을 가지고 연금을 지급하면 된다.

물론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부과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도 있다. 우리처럼 거대 적립기금은 없으나 점진적으로 수급개시연령의 연장과 보험료 인상 등의 조치가 병행되고, 현세대와 후세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2004년 개혁에서 미래 보험료율이 계속 상승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2030년 최대 목표 보험료율(22%)을 설정하였다. 개별수지상등에 기초하여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스웨덴의 경우에도 연금액을 매년 기대수명에 연동시켰다.

이 같은 조치들은 연금개혁 과정에서 후세대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지난 2001년 EU차원(Eurobarometer)에서 흥미로운 설문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연금정책을 둘러싼 주요 목표와 선택지(option)를 두고 전 연령층의 선호도를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노후의 빈곤예방(92%), 사회권적 최저보장 급여(90%), 은퇴 후 적정한 생활수준 유지(88%), 부과방식 연금제도(81%) 등이 전체 응답자의 5분의 4 이상이 지지했다.

이는 세대를 불문하고 연금제도의 핵심 목표가 노후빈곤의 예방에 있으며, 후세대가 기꺼이 부과방식을 수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국민들의 사회적 가치가 고스란히 연금제도에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부럽다. 대체로 후세대가 갖는 부과방식에 대한 거부감은 세대 간 형평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느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금제도에서 세대 간 갈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반적으로 '연령'이라는 것은 세대 또는 코호트(cohort) 측면에서 분배 정의와 연관된다. 즉 사회보장에서 연령집단별로 경제적 자원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공평성' 또는 '비효율성'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특히 고령화로 인해 발생하는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자원배분에 있어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될 수 있다.

연금제도에서 특히 그렇다. 현재 내가 내는 보험료가 현세대의 연금으로 지출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후세대로 갈수록 기여와 수급에서의 불공평성이 높아진다면, 다시 말해 세대 간 형평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제도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심각한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연령집단에 따른 불공평한 자원배분이 정당화되기도 하는데, 이는 세대 간 형평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았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다층체계를 구축할 때

세대 간 형평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국민연금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층(tier)을 통해 노후빈곤의 위험을 분산(risk-pooling)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 기초연금과 같이 노후빈곤층을 위한 기초보장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인구학적 요건을 충족하면 사회수당의 형식으로 최저수준을 보호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열악한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공적연금만으로 노후를 보장하기에는 상당 부분 한계가 있다. 특히 불안정 일자리의 규모가 커지면서 40년 동안 안정적으로 가입 이력을 확보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정부가 사각지대 문제를 방기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불안정계층의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고자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사업과 같이 재정을 국민연금에 투입하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40%가 평균소득자의 40년 가입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 불안정계층의 연금액은 여전히 최저생계비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민연금에 재분배장치(A값)가 있기에 저소득층에서 소득대체율이 더 높게 나타나지만 이를 절대액 측면에서 본다면 노후빈곤을 예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래서 기초연금이 중요하다. 연금제도에는 개인 내 근로시기에서 은퇴 이후로 경제적 자원을 이전하는 저축 차원의 시간적 소비균등화(consumption smoothing)와 빈곤 완화(poverty relief) 기능이 내재되어 있다. 연금제도는 어떤 식으로든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불안정한 지위를 재생산하게 된다. 사회적 배제나 불평등과 같은 노동시장에서의 불이익이 연금제도를 통해 재생산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노동시장과 단절된 혹은 연계의 정도가 약한 기초연금이 필수적이다.

둘째,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으로 구성된 공적연금 이외의 추가적인 노후소득은 매달 소득의 8.3%를 보험료로 납부하는 퇴직연금을 통해 가능하다. 현재 거의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퇴직금, 퇴직연금을 '연금 수령' 형태로 전환해 가야 한다. 이는 노후보장에 관한 공적 책임 (사회적 연대)을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자는 것이 아니다.

퇴직연금은 법에 의해 오는 2022년까지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의무화될 예정이다. 이에 퇴직연금을 규제·감독할 수 있는 장치를 함께 마련하고, 다층연금체계의 한 층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심각한 노후빈곤을 예방하기 어렵고, 기초연금은 전액 조세를 통해 재원이 조달된다는 점에서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

일각에서는 지금으로부터 70년 이후의 예측치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예측을 위한 가정들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재정계산에 대한 엄밀한 검증은 필요하지만, 이를 넘어 우리 앞에 놓인 국민연금 진단 결과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흘러선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공적연금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미래에 '유연하게' 조정하면 된다는 주장은 후세대에게 현세대의 책임을 미루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되었다. 사람마다 국민연금에 대한 진단이 다르고 해법도 여럿이다. 이럴수록 서로 숙의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거쳐 모든 세대가 두루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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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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