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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vs 한겨레 '통계 왜곡' 공방 관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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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vs 한겨레 '통계 왜곡' 공방 관전평

[기자의 눈] 경제기사 가장한 정치기사, "보면 안다"

개인적으로 정치성이 강한 국내 언론에 '경제 기사다운 경제 기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치적 편향성이 작용해 '경제 기사를 가장한 정치 기사'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기사를 가장한 정치 기사'도 수준이라는 게 있다.

정말 몰라서 결과적으로 왜곡된 경제 기사를 쓴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통계 왜곡을 누가 했느냐'면서 공방을 벌이는 모습은 '한국 언론의 수준을 보여주는 낯뜨거운 일화'를 추가하고 있다.

<한겨레>의 안재승 논설위원은 지난 17일 "통계 갖고 장난치지 마라"는 경제 칼럼을 썼다. 안 위원은 "보수언론들은 참여정부 내내 각종 통계를 왜곡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 위기론'을 퍼뜨렸다. 하지만 위기는 오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5%였다. '경제 대통령'을 자처한 이명박 대통령 시절 연평균 성장률은 3.2%였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안 위원은 "최근 보수언론들의 경제 관련 보도를 보면 참여정부 시절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지난 2분기 한국과 미국의 경제성장률 비교가 한 예다. 지난달 말 보수언론들은 한국은 0.7% 성장했는데 미국은 4.1% 성장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여기엔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국은 전기 대비 성장률이고 미국은 전년 대비 성장률을 연율로 환산한 수치다. 기준 자체가 다르다. 한국 기준으로 하면 미국은 1.0% 성장했고, 미국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2.8% 성장했다. 1분기엔 한국 성장률이 미국보다 높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까지 동원해 "우리 경제가 2분기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한국보다 경제가 12배 큰 미국은 무려 4.3%(연율 환산) 성장을 내다본다"고 쓴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안 위원은 이런 방식으로 비교하는 사설에 "어이가 없다"고 썼다.

나아가 안 위원은 보수언론들이 경제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상황을 두고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느니,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느니 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것이다.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김동연 경제부총리(오른쪽)가 반갑게 악수를 하고 있지만, 경제정책 방향을 두고 갈등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기회로 '경제를 가장한 정치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보면 아는 왜곡 기사, '정석'으로 포장해봐야


이 칼럼에 대해 <조선일보>의 최규민 기자는 지난 21일 '조선일보가 통계 장난? 장난친 곳은 따로 있다'는 칼럼으로 반박했다.


최 기자는 안 위원이 '통계 왜곡'이라고 인용한 <조선일보> 기사는 지난 7월 27일 자 사설 '2분기 0.7% 성장, 그 뒤에 드리운 더 암울한 전망'이라고 소개했다.

사설은 "우리 경제가 2분기에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1분기 1.0%로 올라섰던 성장률이 0%대로 주저앉아 경제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우려가 더 커졌다. 설비투자가 6% 이상 감소해 2년여 만에 최악이었고, 건설 투자(-1.3%)도 내리막으로 돌아섰다. 민간 소비 증가(0.3%)도 1년 반 만에 최저다. 버팀목이던 수출마저 0.8% 증가에 그쳤다. 모든 지표에 일제히 경고등이 켜졌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을 3.0%에서 2.9%로 낮췄지만 이마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올해도 세계 경제는 성장률 3.9%의 호황이 예상된다. 한국보다 경제가 12배 큰 미국이 2분기 무려 4.3%(연율 환산) 성장을 내다본다"고 썼다.

최 기자는 "어떤 부분이 왜곡이라는 걸까요"라고 반문했다. 한국은 분기(分期) 성장률, 미국은 '전기 대비 연율'을 비교했기 때문에 왜곡이라는 <한겨례>의 논리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성장률을 집계·발표하는 방식이 애초부터 다르다"면서 "성장률을 발표할 때 한국은행은 전기 대비 성장률을 앞세우고,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은 '전기 대비 연율'로만 발표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나라마다 성장률 집계 기준이 다르다 보니, 나라별 성장률을 보도할 때는 위 사설과 같이 집계 기준을 명시하면서 각국이 발표한 숫자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정석"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 기자는 역공에 나섰다. <한겨레> 2018년 6월 11일 자 '식어가는 지구촌 경기…미 '홀로 확장' 어디까지 갈까'라는 기사의 소제목에 '세계경제는 후퇴 국면…독 1분기 0.3%↑, 일 -0.6%' 이라고 돼 있는데, 독일은 '전기 대비', 일본은 '전기 대비 연율'이어서 서로 기준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다만 "본문에 '일본은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연율로는 -0.6%)을 했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누구도 이걸 왜곡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왜곡 시비를 건 <한겨레>의 주장을 일축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매체의 기사까지 반박에 동원했다. 2018년 7월 30일 자 <한국경제>의 '글로벌 경기, 미국만 '직진'… 中·日·유럽은 성장세 멈칫'이다.

이 기사는 "미국 상무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4.1%(연율 환산) 증가하며 약 4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나타냈다.(중략) 이에 비해 중국과 일본,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경기는 불안한 모습이다.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6.7%로 1분기 6.8%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고 썼다. 최 기자는 "여기서도 미국의 성장률은 '전기 대비 연율', 중국은 '전년 동기 대비'로 기준이 다르다. 그러나 집계 기준을 명시했으므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의 안 위원은 재반격에 나섰다. 22일 '조선일보, 통계 장난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나'라는 칼럼을 통해 안 위원은 "비교를 하려면 기준이 같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라면서 제대로 된 기사 문장들을 예시했다.

"전기 대비 기준 한국은 0.7%, 미국은 1.0% 성장했다"거나 "연율 환산 기준 한국은 2.8%, 미국은 4.1% 성장했다"거나 "전년 동기 대비 기준 한국은 2.9%, 미국은 2.8% 성장했다"로 쓰는 게 맞다는 것이다. 미국의 성장률 뒤에만 (연율 환산)이라고 적어놓은 것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안 위원은 "발표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 기준이 다른 통계를 비교해도 되는 건 아니다"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도 각국의 성장률을 비교 발표할 때 동일한 기준을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 상무부가 연율 환산만 발표한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거짓말'로 치부했다. 미 상무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연율 환산'뿐 아니라 '전기 대비'와 '전년 동기 대비'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위원은 <조선일보> 식으로 제목을 단 <한겨레> 기사를 지적한 것에 대해서 "같은 차원에서 비교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을 왜곡 비교한 사설과 일본과 독일의 성장률을 다루면서 소제목에서 기준을 언급하지 않은 게 어찌 같은 차원에서 비교될 수 있느냐는 주장이다.

20년 가까이 경제 기사를 다루면서 외국 정부의 경제통계와 외신들의 경제기사를 많이 인용한 경험으로 볼 때, <조선일보> 사설과 최규민 기자의 반박 칼럼은 억지로 보인다. 언론이 독자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것은 기본이다. 비교 기준이 같아야 독자가 헷갈리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 비교 기준이 다른 통계밖에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집계 기준을 명시하면서 각국이 발표한 숫자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정석"이라는 최 기자의 주장도 독자를 위한 기사 작성 지침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기사 문장에 서로 다른 기준의 수치라는 것을 밝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것은,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점에서 최 기자가 반박 소재로 삼은 <한겨레>의 기사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 다만 안 위원의 주장대로 외국끼리 비교한 기사에서 보여지는 '실수 또는 의도'와, 한국과 미국을 비교한 사설의 '실수 또는 의도'와는 차원과 파장이 다르다고 본다.

안 위원의 지적대로 "실수든 고의든 통계를 잘못 인용한 사실이 드러났으면 자성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된다"는 일침에 공감한다.

표현의 자유의 예외 대상인 '하드코어 포르노'에 해당하느냐 여부가 뜨거운 쟁점이 된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당시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은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보면 안다"는 유명한 기준을 세웠다. 이어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은 '보통 사람들의 판단' 등 3가지 판단기준으로 보다 구체화했다.

<조선일보>의 문제의 사설이 통계 인용 방식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도 보면 안다'고 생각한다. 하긴, '하드코어 포르노'인 줄 보면 아는데 '예술'이라고 강변하는 식의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를 펼치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하루 이틀 본 것은 아니다. 견강부회의 수준만이라도 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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