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소주를 따랐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말없이 소주를 마시며 작별을 준비했다.
22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21차 이산가족 상봉의 마지막 일정인 작별 상봉이 시작됐다. 1951년 1.4후퇴 때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남으로 내려온 이기순(91) 씨는 마지막 만남인 작별 상봉 때 남한에서 가져온 소주를 들고 아들 리강선(75) 씨와 술잔을 기울였다.
동생을 만난 김병오(88) 씨는 작별 상봉장에 들어서서 동생 김순옥(81) 씨를 보자마자 허공을 응시하면서 흐느꼈다. 오빠와 동생은 상봉이 시작된 지 10분이 넘도록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다며 서로를 격려하는 가족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국전쟁 당시 헤어졌던 언니 배순복(87) 씨를 만나러 온 배순희(82) 씨는 "지금은 100세 시대니까 오래 살고, 서로 다시 만나자"라고 언니와 약속했다.
한국전쟁 막바지에 헤어진 동생을 만난 신재천(92) 씨는 "서로 왕래하면 우리집에 데리고 가서 먹이고 살도 찌우고 하고 싶은데. 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래"라면서 동생을 위로했다.
동생 신금순(70) 씨는 "개성에서 김포 금방이잖아. 빨리 통일이 돼야 해"라며 화답했고 신재천 씨는 "내가 차 가지고 가면 40분이면 가"라면서 당장 서로의 집을 찾아가 볼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의해 납치된 형인 이재억 씨를 찾았던 이재일(85) 씨와 이재환(75) 씨는 이번 상봉에서 북한에 거주하는 형의 조카들을 만났지만, 이들이 자신의 가족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북한 관계자가 서류를 통해 이 씨 형제의 큰아버지와 삼촌이 호적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것 같이 보였으나, 이재환 씨는 여전히 이들이 가족이 아닌 것 같다면서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이 씨 형제는 예정된 상봉 일정에는 모두 참여했다.
이와 관련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처음 만나고 하다 보니 반신반의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으시다. 그렇다고 저희가 당사자분께 가족이 맞다고 설득 드릴 입장은 아니다"라며 "본인이 요청하실 경우 추가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은 이날 작별 상봉에 이어 마지막으로 점심식사를 함께한 뒤 또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상봉은 오후 1시에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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