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오 국회의사당 정문 앞. 홀로 '4대강 사업 반대' 피켓을 든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이 국회 앞을 지나는 환경부 직원들과 악수하며 이렇게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부터 환경부 장관까지 지내며 15년간 환경운동에 투신해 온 이치범 전 장관은 1인시위에 나선 소회를 묻자 "후배들 보기가 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소신 때문에 묵과할 수 없었다"는 목소리만큼은 단호했다. 그가 시위에 나선 것은 10년 만이라고 한다. 무엇이 그에게 다시 피켓을 들게 만들었을까.
4대강 사업,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왜 1인 시위에 나서게 됐나.
▲1998년에 환경운동진영을 떠나 정부 일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시위현장에 섰다. 이제까지 우리가 쌓아올린 환경에 대한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 자리에 서게 됐다. 지금 환경부 식구들도 앞에 있는데, 정말 참담한 심정이다.
-피켓에 예산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가.
▲4대강 사업에 드는 돈이 22조 원 플러스 알파(α)인데 말이 알파지 막대한 돈을 퍼붓게 될지 모른다. 이 사업은 국민의 73%가 반대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업이다. 이 예산을 복지나 의료,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생 예산, 사람 중심 예산으로 바꿔야만 한다.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이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4대강 사업에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이전의 국가적 치수사업과 비교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4대강 사업이 내세우는 목표는 수량 확보, 홍수 예방, 수질 개선, 일자리 창출의 4가지다. 이 중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건 하나도 없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를 꿈꾸는 이명박 대통령의 소신 밀어붙이기에 불과하다. 누군가 이 사업을 '공공의 적'이라 표현했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얼마전 민주당 의원이 영산강 살리기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 대통령이 "국가 미래 사업에 대해 정치적 논리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다던데 이 사업이야말로 일부 토목건설업자에게 퍼주기 위한 사업이니 정치적 논리에 휩싸여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통에 국토해양부는 물론 '야당' 역할을 해야 하는 환경부도 환경가치를 포기하는 게 안타깝다.
-특히 영산강 살리기에 대한 논란이 크다.
▲ 4대강 중 가장 염려되는 게 영산강이다. 기공식 이름을 '희망 선포식'이라고 했던데 내가 보기엔 '영산강 죽이기 절망 선포식'이다. 그동안 영산강은 식수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질이 오염된 채 그대로 방치되었다. 사실 박준영 전남지사도 영산강의 보를 뜯어내야 한다고 나와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에 지역구에 예산이 배정 된다고 하니까 말은 '환영한다'고 하지만, 본인 신념은 그게 아니라고 본다.
-장관시절 수질개선 관리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삭감된 적은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환경부에서 예산이 가장 많이 배정되는 것이 물 관련 사업이다. 우리의 환경 의식이 높아진 게 낙동강 페놀 사태부터였다. 낙동강이 썩기 시작하면서 수질위험이 이슈화되고 예산이 증액됐었다. 그 때 기준은 엔드 오브 파이프(end of pipe)라고 해서 최종적으로 배출되는 오염 물질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즉 점오염원인 공장을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그걸 다소 해결하게 되어서 이제는 비점오염원을 잡아나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즉 사전 예방차원의 노력이다.(점오염원: 공장폐수, 축산폐수처럼 특정한 지점에서 발생하는 오염원. 비점오염원: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오염원. 편집자)
그래서 보다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는데 예산 역시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연차적으로 투입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포괄적인 계획에 따라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고 있다가 갑자기 '4대강 날벼락'이 친 것이다.
4대강 사업 후 인공물 다시 뜯어낼까 불안
-4대강 사업이 이전 수질개선 사업과 달라 '영(0)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사업 후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거라는 재앙 수준의 의견 내놓고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사업 후 보, 콘크리트를 다시 뜯어내지 않을까 불안하다. 독일 라인 강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현재의 한강처럼 발라 놓은 콘크리트 등 인공물을 다시 뜯어내고 있더라.
-'시민주권'에서 예산주권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고 있다. 어떤 프로젝트인가? 앞으로의 계획은?
▲주권을 찾으려면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예산 집행 과정에서 낭비를 막아보려는 노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예산 편성부터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주권운동을 위해서는 참여가 필요하고 참여는 관심에서 나오며 관심은 알아야 가능하다. 그래서 국민들을 잘 알게 할 수 있는 정보를 취합해 회원들에게 보낼 것이다. 또 예산 심의 모니터링을 하고, 잘못된 것을 말하는 위원이 있다면 항의하도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그는 "환경부 선배들이 그동안 물질만능의 가치가 지배적인 우리나라에서 '환경가치'를 주도했다"며 "그 가치가 무너져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환경부가 다른 부서에 비해 힘들게 일하는데 힘 잃지 말고, 정열을 갖고 선배들이 지금껏 지켜온 가치를 밀고 나가 달라"고 당부했다.
이치범 전 장관의 1인 시위는 지난 11월 12일부터 진행돼 온 '2010년 예산주권 네트워크'의 릴레이 1인시위의 일환이며 2010년 예산안 심의가 완료될 때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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