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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팔이'를 경계하라!

[안종주의 안전사회] 극단적 위험 인식, 폐해 심각하다

어제(20일) 오후 전화 한통을 받았다. 교육방송(EBS) 기자라고 밝힌 그는 대뜸 이렇게 질문했다.

"박사님이 얼마 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석면특강을 하면서 석면은 먹어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강의하셨다는데 맞는가요?"

그의 질문은 이 초등학교 어느 학부모가 말한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거나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초등학교에서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석면 위험이 있는 교실에 학생을 보낼 수 없다며 등교거부를 해 방송 등 언론에 최근 몇 차례 보도된 적이 있다.

극단적 위험 인식, 등교거부 등 극단적 행동 불러

이 학교에서는 석면해체·제거 공사를 하기도 전에 준비 과정이 소홀하다며 공사를 거부해 공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석면 해체·제거는 하지 않았다 해도 공사 준비 과정에서 석면이 공기 중에 날렸을 수 있다며 석면 제로가 확인되지 않는 한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대다수 학부모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 학부모들이 두 쪽으로 갈라진 것이다.

석면 해체·제거 작업 뒤 작업 부실 등을 이유로 불안을 느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등교거부로 학교 쪽이 개학을 연기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이 학교와 같은 사례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매우 드물다. 위험을 극단적으로 느낀 데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위험 인식의 세계에는 심리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위험에 관한 정보를 어디에서 듣고 그것이 '맞다'며 자신의 뇌리에 한번 집어넣으면 그 분야 최고 전문가를 포함해 누가 뭐래도 듣지 않고 자신의 위험 인식이 진실임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 학교에서도 그런 사람이 정확하게 몇 퍼센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법 있었다는 생각을 당시 석면특강을 하면서 느꼈다.

한 학부모는 "석면은 인체발암물질 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안 된다. 단 하나의 석면가닥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발암물질 분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암물질을 분류할 때는 발암성의 강도에 따라 1급, 2급, 3급으로 나누지 않고 인체발암성 여부에 따라 1군, 2군, 3군으로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무지했다.

"백석면은 좀 노출돼도 되지만 갈석면은 한 가닥도 위험?"

이들은 엉터리 석면 위험정보에 휘둘리고 있었다. "백석면은 조금 노출돼도 별 문제가 없지만 갈석면은 단 하나라도 노출되면 위험하다"는 말을 전문가로부터 들었다며 진위를 물어오는 이도 있었다. 한마디로 난센스다. 미세먼지, 라돈, 식품 속 발암물질과 방사성물질 등 인체발암물질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알 바가 아니며 석면만큼은 환경 중 제로가 되어야 한다는 막무가내 주장을 하는 이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석면의 위험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석면은 기본적으로 흡입할 때 문제가 된다는 설명을 잊지 않고 한다. 하지만 위험물질은 어떤 경로로 노출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며 석면의 경우 음식이나 물로 섭취했을 때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발암물질의 안전기준은 따로 없지만 석면은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우리나라는 공기 중(실내 및 대기) 관리농도를 선진국처럼 0.01개/㎤(10개/L)로 정해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면 흡입과 섭취 간 위험 차이 70만 배

한편 물이나 음식물 중 석면 규제농도는 미국에서 700만개/L로 정해놓고 있으며 한국도 이에 따르고 있다. 이는 노출 경로에 따라 석면 위험의 정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다. 기준이 70만 배나 차이 나는 셈이다. 이런 내용을 강연에서 소개하며 석면의 위험성을 본격적으로 안 지난 80년간 석면 섭취로 인한 위장관계암 등의 발병은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이 강연회에 참석한 한 학부모가 "석면은 먹어도 좋다. 석면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연했다"고 왜곡 내지는 말을 지어내 기자에게 전한 모양이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그 내용을 기자는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려 한 것이다.

만국 공통으로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세상에서는 위험을 무시하는 부류, 위험을 제대로 보는 부류, 위험을 왜곡·과장해서 보는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위험을 무시하며 인명재천을 강조하는 사람, 위험을 왜곡·과장해 '위험팔이'를 하는 부류 모두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그런 사람 내지는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동안 수많은 식품위해 파동, 발암물질 파동, 유해화학물질 파동, 환경오염 파동 등을 겪으면서 '위험팔이'를 한 사례가 있었다. 시민단체, 환경단체, 소비자단체, 정치인, 언론인, 학자 등 전문가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아 여기서 그 사례를 일일이 소개하기는 적절치 않다.

'위험팔이'의 활개, 언론이 앞장서 막아내야

'위험팔이'가 위험한 것은 이 때문에 위험을 극도로 느낀 극히 일부 사람들은 온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소독·살균제로 수시로 닦아내는 등 세균 죽이기 행동을 벌인다. 또 아파트 옥상에서 석면으로 의심되는 자재를 승강기로 운반했다며 그 뒤 승강기를 타지 않고 10층이 넘는 집에서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있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이 만병의 근원이라며 이 식품에는 몹쓸 유전자가 있고 비유전자변형식품(non-GMO)에는 유전자 자체가 없다고 믿으며 질문을 해오는 주부도 있었다. 이밖에도 극단적 위험 인식 집단이 보인 행동은 많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은 필자가 지난 30여 년간 실제로 겪은 사례들이다.

위험을 극단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의 귀는 막혀 있다. 다시 말해 타인의 말을 들으려 하는 뇌의 기능이 마비돼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 최고의 석면 전문가, 대한민국 최초로 석면 위험을 30여 년 전부터 알려온 위험소통가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제로위험만이 자신과 자녀들을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 현실에서는 이는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라고 말하면 조소와 야유를 보낸다. 자신이 믿고 있는 위험 인식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 즉 '위험팔이'를 하는 사람에게만 박수를 보낸다. 이런 사람들에게 휘둘려 정책 등을 결정하는 한 '위험팔이'를 하려는 사람과 집단은 더욱 활개를 치기 마련이다.

제로위험을 요구하거나 '안아키' 등 위험을 극단적으로 인식하는 부류의 특성을 잘 파악해 대다수 정상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이들에게 끌려가거나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아키' 관련 기사 보기)

특히 언론들이 '위험팔이'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주목을 끌 목적으로 기사로 다루어주는 등 부화뇌동하는 것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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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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