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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아, 살아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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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숙아, 살아줘서 고맙다"

눈물바다 이룬 금강산 남북 이산가족 상봉

"영숙아, 살아줘서 고맙다"

1951년 1.4후퇴 때 딸 황영숙(71) 씨와 헤어졌던 황우석(89) 씨는 67년 만에 다시 만난 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간 못다 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황 씨는 "딸을 보니 너무 좋다"며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20일 제21차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 호텔에서 열렸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70여 년 만에 만난 가족들과 부둥켜 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70년이라는 분단의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한 89가족 중 부모-자식 간 만남은 7가족에 불과했다.

▲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황우석(왼쪽) 씨가 1.4후퇴 이후 67년만에 딸인 황영숙 씨와 만났다. ⓒ연합뉴스

1.4 후퇴 때 두 딸과 헤어진 한신자(99) 씨는 흥남에 두고 온 딸인 김경실(72)‧김경영(71) 씨를 보자마자 "아이고"라는 외마디 통곡을 하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한 씨는 "내가 피난을 갔을 때..."라고 울먹이며 1.4 후퇴 당시 두 딸을 데리고 함께 내려오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한국전쟁 중 피난길에 남편 및 아들과 헤어지게 된 이금섬(92) 씨는 아들인 리상철(71)씨를 보자마자 "상철아"라며 눈물을 흘렸다. 리상철 씨 역시 어머니인 이금섬 씨를 부둥켜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리 씨와 함께 상봉에 나온 손녀며느리 김옥희(34) 씨는 이 씨에게 이 씨 남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내밀었다. 리 씨는 "아버지 모습입니다. 어머니"라며 오열했다.

역시 1.4 후퇴 때 두 살 아들을 두고 남으로 내려왔던 이기순(91) 씨는 아들인 리강선(75) 씨를 보자 처음에는 가족관계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며 정말 자신의 아들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아들임을 확인한 이 씨는 "내 아들이 맞아. 내 아들이야"라면서 기뻐했다.

이 씨는 테이블 근처에 있던 취재진에게 "어때? 나랑 아들이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라고 물으며 자신과 아들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1.4 후퇴 당시 북한의 의용군으로 끌려가 납북됐던 형을 찾으려 했던 최기호(83) 씨는 2002년에 사망한 형 최기호 씨 대신 조카인 최선옥(56)‧최광옥(53) 씨를 만났다.

형의 사진이 한 장도 없어 북한의 조카들이 형의 사진을 한 장이라도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최 씨는 조카들이 가져 온 사진을 보자 연신 눈물을 흘리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번 상봉 대상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101세의 백성규 씨는 며느리 김명순(71) 씨와 손녀 백영옥(48) 씨를 만났다. 이들의 만남을 지켜보던 북한 관계자는 최고령인 백 씨의 가족들을 위해 즉석에서 기념 사진을 찍어줬다.

며느리인 김 씨가 사망한 남편의 사진을 꺼내며 "옛날 사진이 낡아서 새로 복사해서 가져왔다"고 말하자 백 씨는 사진을 가져가도 괜찮냐고 되물었고, 김 씨는 "집에 또 있다"며 백 씨에게 사진을 건넸다.

이산가족들에게 주어진 2시간의 단체 상봉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금강산호텔에는 "집체상봉을 끝내겠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한신자 씨와 가족들은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의 딸들은 한 씨가 나간 이후에도 계속 서서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어머니 이금섬 씨와 만난 아들 리상철 씨 역시 상봉을 10분 남겨두고 "벌써 끝났나? 시간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러자 이금섬 씨의 딸인 조순옥(69) 씨가 "이따 저녁에 밥 먹을 때 또 만나"라며 리 씨를 달랬다.

▲ 2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이금섬(왼쪽) 씨가 아들인 리상철 씨를 만나 포옹하며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쟁, 김일성…70년 세월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이념

이날 상봉에서는 한국 전쟁과 미국에 대한 논쟁이 오가는 테이블도 있었다. 1.4 후퇴 당시 어머님과 어린 두 남동생만 남기고 남쪽으로 피난을 왔던 차제근(84) 씨는 동생인 차제훈(76) 씨와 조카인 차성일(50) 씨를 만났다. 차성일 씨는 "원래 이맘때쯤에 딸 결혼식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큰아버지를 보려고 결혼식도 미뤘다"며 "큰아버지 죽기 전에 고향에 한번 오라요. 통일이 빨리 와야지요"라고 말했다.

이에 차제근 씨가 "그래 빨리 통일이 와야지"라고 말하자 차성일 씨는 "미국 놈들을 내보내야 해"라며 "큰 아버지 봐보세요. 싱가포르 회담 리행(이행)을 (미국이) 안 한단 말이에요"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차제근 씨는 "6.25가 김일성이 내려와서 그렇다"라고 하자 차성일 씨는 "6.25는 미국 놈들이 전쟁한 거에요.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싸웠어요"라고 맞섰다. 그러자 차제근 씨는 웃으면서 더 이상 조카와 논쟁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북한의 가족이 남한의 가족에게 김일성의 표창장과 표창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다소 언쟁이 높아지기도 했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에 붙들려 간 오빠를 찾았던 주정례(86) 씨는 오빠 대신 조카인 주태조(60) 씨와 주영애(52) 씨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주영애 씨는 김일성의 표창장과 표창을 주정례 씨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

이에 남한 지원요원이 표창장을 테이블 밑으로 내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고, 이에 주영애 씨는 "최고 존엄을 어떻게 내릴 수 있냐"고 따졌다. 그러면 뒤집어 두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으나, 주영애 씨는 "뒤집는 것은 더욱 안된다"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다소 소란이 발생하면서 기자들이 테이블에 놓인 표창장을 찍자 남한 지원요원은 주영애 씨에게 "아까 다 보지 않았나"라며 표창장을 닫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북한 관계자가 "가족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건데 가만히 뒤에 계시라"고 제지했고, 이후 표창장을 그대로 올려둔 채 상봉을 이어갔다.

70여 년 만에 감격의 첫 상봉을 마친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후 7시부터 금강산 호텔에서 북한이 주최한 환영 만찬에 참석한다. 이후 둘째 날인 21일 객실에서 가족별로 상봉을 진행할 예정이며, 셋째 날인 22일 작별 상봉과 점심 식사를 마지막으로 짧은 2박3일간의 만남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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