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라오스에서 완공을 앞둔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댐 사고로 대재앙이 벌어졌다. 수백 명이 사망 혹은 실종 상태로 추정된다. 현재는 긴급구호 활동이 이뤄지고 있고 곧 사고원인 조사에도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해 상황과 피해 주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각종 예능과 다큐에 라오스가 등장하고 현지 방문이 증가하면서 우리에게도 조금은 익숙해졌을 터.
그러나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가 사고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언론, 시장, 정부의 반응은 조심스럽고 경직돼 있다. 수력발전댐 컨소시엄에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이 참여하고 있으며, 정부부처와 한국수출입은행은 유상원조인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활용한 민관협력사업(PPP)을 승인·지원했기 때문이다.
세피안·세남노이댐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13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메콩 수력발전 사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세피안·세남노이댐 개발의 환경적·사회적 문제점을 조명하고, 현장조사를 통해 환경영향평가(EIA)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우려도 제기했다. 같은 해, 한국수출입은행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내용이 지적됐지만 그 후로도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2015년, KoFID(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 환경분과 역시 세피안·세남노이댐 사업에 우려를 표명했다.
댐 사고 소식을 접한 후 국내 시민사회단체는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댐 사고 대응 한국시민사회 TF'를 구성했다. 8월 9일에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주민의 삶 송두리째 빼앗은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업, 누구를 위한 개발이었나" 되물었다.
대응 TF에 참여한 기업인권네트워크, 발전대안 피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진실의 힘, 참여연대, 피스모모, 환경운동연합은 향후 활동계획을 밝히면서,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 그리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의 책임, 환경·사회영향평가와 대외경제협력기금 세이프가드의 문제점 등의 쟁점들을 조목조목 짚었다.
국내외 시민사회들의 요구사항은 여섯 가지 측면으로 정리된다.
① 라오스 정부와 시공 기업들의 사과, ② 진상조사를 통한 사고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③ 피해 지역과 주민들의 삶에 대한 장기적인 복구와 재건 지원, ④ 댐수력발전 등 해외개발사업 제도 개선 촉구, ⑤ 피해 주민들이 참여하는 보상 체계 수립, ⑥ 라오스 정부의 댐 개발 정책 재검토.
특히 라오스 등 현지 지역의 시민단체의 경우, 세피안·세남노이 댐수력발전과 같은 메콩강 대수력 발전에 대한 반대 입장이 강한 편이다. 'Save the Mekong, Mekong Watch, Alliance for Democracy in Laos'는 공적개발원조와 기후변화대응에 역행하고 에너지 부정의를 초래하는 댐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점점 많은 국제개발기구와 국제금융기구들이 대규모 댐 프로젝트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댐 개발주의 세력들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근대적 대형 댐에 대한 열광은 지구적 집착으로 이어져 '수력 자본주의'를 낳은 것으로 평가된다. 근대 국가에서 강과 수력발전 개발은 국가와 자본의 권력 행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억압과 통제는 이 권력을 가시권에 들어오게 하지만, 전문성과 비밀주의는 이 권력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수몰-이주-정착 과정, 그리고 이와 동시에 진행되는 자연의 변형은 세피안·세남노이댐 사고처럼, 댐이 사람을 파괴적으로 삼킬 때 그 실체를 드러낸다.
대규모 토목공학 프로젝트인 대수력 건설 및 운영은 강이 킬로와트라는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단위로 변환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역사학자 리처드 화이트(Richard White)는 저서 <자연 기계(organic machine)>에서 이런 관점을 갖는 이들에게도 강을 다시 사고할 수 있는 예외적인 순간이 온다고 말한다. 바로 강의 힘이 많은 것을 파괴할 때. 이때야 비로소 이들은 "합리적으로 설계된 강, 자연적 기계로서의 강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잠깐이겠지만.
그렇게 "하나의 잘 관리된 기계"는 환상에 불과하다. 세피안·세남노이댐 개발의 사업자들과 참여자들은 댐이라는 자연 기계의 일부를 창조했고 이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실하게 시공·관리했다. 이들은 환상에 빠져 있었다. 리처드 화이트의 주장처럼, 합리화된 강이나 댐조차도 결국은 자연의 끊임없는 변화와 흐름의 창조물이다.
이 자연 기계는 가상의 강을 창조하고, 이는 다시 실재하는 자연-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세피안·세남노이댐은 자본과 기술의 창조물이지만, 그 제어를 벗어나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었다. 설사 이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인근 지역에서 유무형의 피해는 지속됐을 것이다.
자연 기계에 대한 찰나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순간, 개발자들과 관계자들은 책임 회피에 몰두한다. 우리는 라오스에서,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에서 강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보존·관리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분별한 자연 변형으로 얻는 대수력 발전을 둘러싼 경제적 카르텔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라오스의 에너지 전환, 나아가 동남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에너지 전환마저도 의심받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