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천혜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제주 비자림로의 낯선 풍경이다.
9일 오전 찾은 제주시 구좌읍 대천교차로 옆 지방도 1112도로. '비자림로'로 더 잘 알려진 이 곳은 왕복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넓히는 공사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곳은 곧게 뻗은 삼나무가 길 양 옆으로 병풍처럼 늘어서 관광객은 물론 제주도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도로다. 동부지역 주요 관광지를 찾아가다 한 번쯤은 경유하기 마련이어서 이용자들에게 뜻밖의 힐링 선물을 안겨주곤 했다.
그러나 지난주 시작된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아름드리 삼나무가 하나둘 잘려나갔다.
하루 100그루씩, 300그루의 삼나무가 사라지는데는 3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미 현장 곳곳에는 일정한 길이로 잘린 나무 기둥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흙더미 속에 생기를 잃고 엉켜있는 뿌리는 어수선함을 더했다.
계획대로라면 총 2000여 그루의 삼나무가 잘려나가게 됐다. 총 2.94km의 도로를 넓히는 이 사업은 현재까지 약 350m 구간에서 공사가 진행됐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이 구간의 모습은 더욱 처참했다. 면도기로 밀어낸 듯 푸른 숲 한켠을 밀어젖힌 모습은 흉측하기 까지 했다.
경관 훼손 논란이 제주를 넘어 전국적인 이슈로 번지자 공사는 급히 중단됐다. 굴삭기 엔진이 멈춰선 것은 사흘째다. 현재는 이미 잘린 삼나무를 정리하는 작업만 진행되고 있다.
관계 당국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이날 현장에는 제주도청 고위 간부가 찾아와 그간의 추진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그는 취재진이 다가가자 "내 사진은 찍지 말라"며 다소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한 쪽은 (공사를)중단하라 하고, 한 쪽은 계속하라 하니 고충이 크다"며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고민을 해서 앞으로 공사를 어떻게 진행할 지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두 시간 남짓 삼나무숲 현장에 머물러 있는 동안 느낀 온도차는 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인근을 지나다가 차량을 멈춰세운 관광객 정상영(38)씨는 "삼나무 숲길을 쭉 타고 오면서 감탄하고 있다가 갑자기 휑해져 놀랐다. 이 곳이 뉴스에 나왔던 그 곳인가 싶더라"며 "꼭 숲을 훼손하면서까지 도로를 확장할 필요가 있나 싶다. 이미 잘린 나무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남아있는 숲을 보존할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실제 제주도내 환경단체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자림로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8일과 9일 이틀간 '비자림로를 지켜달라'는 취지로 10개의 청원이 올라왔고, 이중 대표적인 글은 하루만에 청원인원이 1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반면, 이 구간의 상습적인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로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날 현장을 찾은 인근 지역구의 한 도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요구로 지난 7년간 준비해 온 숙원사업이다. 환경영향평가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된 것인데 왜 이제 와서 (뒤늦게)문제를 제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사업이 중단될 경우 집단행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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