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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는 잘못이지만 새로운 선택의 기회다"

[시민정치시평] 원칙을 훼손시키는 정치적 선택

각 정당마다 메가톤급 총선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직 4. 11 총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치권은 권력재편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전당대회를 치르고 원내총무와 당 대표를 선출했다. 이제 대선준비 체제로 탈바꿈하고 그 체제를 이끌 리더를 찾고 있다. 일을 치르면 으레 소란이 있다고 했던가. 그 중에서도 통합진보당의 비례투표 부정을 둘러싼 당권경쟁과 민주통합당의 '이해찬 · 박지원 역할 분담론'을 두고 불거진 담합논란은 정치적 선택에 대한 뜨거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담합논란은 결선투표 7표차로 박지원 의원의 승리로 끝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이지만, 통합진보당의 투표부정과 당권경쟁은 여러 정파의 이해가 걸린 만큼 점입가경 양상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담합과 당권경쟁은 오랜 관행 중 하나다.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의 3당 합당도 담합의 산물이었다. 정략적인 결합으로 정권을 연장한 바 있다. 위기 국면에서 적절한 정치적 선택은 중요하다. 그래서 정치 고수의 선택을 위기의 돌파구로 삼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상인가? 정치고수들의 정략적 선택? 대선 필승을 위한 정략적인 선택? 권력을 잡기 위한 꼼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다. 여기저기서 '야합정치' '구태정치'라고 비판한다. 우려 수준을 넘어 경악한다. 대선 필승이 아니라, 대선 필패의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현대 정치에서 정당도 분명 이익단체이다. 당파가 있고, 그 당파적 성격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야당에게 이번 대선은 행복의 여정이 아니다. 총선에서 예기치 않은 실패를 맛본 탓에 대선 실패는 곧 야권의 몰락이라는 강한 위기감이 감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 고수들의 결단과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더더욱 적실한 정치적 결정이 절대적이다. 정략적인 선택의 당위성이 자리 잡는다. 당권 경쟁이라는 복잡한 변수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상식을 벗어난 선택은 '선택자만의 잔치'가 되고 만다. 바라지 않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현명한 판단이 아집에서 나올 수 없다. 상식을 벗어난 선택은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결과만 기다린다. 공유된 원칙 없는 선택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사태의 시시비비를 가릴 때 널리 애용하는 방법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이다. 목적 달성의 유일하고 최상의 수단이라면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행위는 결과를 놓고 평가된다. 수단이 적절하지 못하면 비판받는 건 당연하다. 비판적 관망자들은 이런 맥락에서 호된 비판을 내리친다. 예를 들어 손호철 교수는 민주통합당의 담합행위를 "맹주담합당"으로 규정하고, 대선필패의 길이라고 일갈한다. 통합진보당의 투표부정과 당권경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당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자해행위로 규정한다. 중도성향의 유권자 표심을 잡아야 하는 게 대선 전략의 필수인데, 국민이 원하는 '쇄신', '감동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감동 없는 정치는 역효과만 낳는다. 이번 담합과 당권경쟁은 '상식의 싸움'에서도, 중도를 감동시킬 만한 멋진 쇼도 못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수라는 것이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문제로 내분을 겪고 있는 통합진보당. ⓒ연합뉴스
정략적, 당략적 접근에서 감동의 정치를 논하는 건 분명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 담합과 당권경쟁에 깔려 있는 진짜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원칙을 벗어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용납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당사자들은 너무 성급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정치 고단자의 노련한 경험과 정권 인수 경험이 반영되었는지 모른다. 정치적 행위의 특수성을 봐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눈높이다. 당 눈높이가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치적 선택은 철저히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택이어야 한다. 이렇게 묻자. 달라진 표심과 상황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이번 총선의 표심은 매우 복잡하다. 아니 진심의 향배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상식에 벗어난 행동은 유권자에게 좋게 보일 리 없다. 악영향만 기다릴 뿐이다.

우선 모두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했다. 합당한 목적이라도 적절하지 못한 타이밍은 매사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섣부른 권력게임은 그 선택의 당위성을 떠나 먼저 국민의 호된 비판의 대상이다. 담합이든 당권경쟁이든 권력게임은 국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만 각인시킨다. 동일한 행동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총선실패에 대한 반성 없이 정치적 선택만을 강조하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만 키울 뿐이다. 시대를 거꾸로 읽고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정략이 원칙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담합과 부정투표는 공개성과 대표성이라는 상식적인 원칙을 위반한 사례로 각인된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담합은 민주주의를 갉아먹는다. '담합'과 '연대'는 다르다. 공개여부, 절차가 중요하다. 공개성과 절차의 공정성은 가장 기본적인 정치원칙이다. 이-박의 실질적인 역할 분담을 통한 고도의 정치적 선택이 성공했다 치자. 진보통합당의 당권경쟁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치자. 그러나 당원의 지지를 넘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지 미지수다. 결국 담합과 권력투쟁으로는 국민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담합, 당권경쟁이 연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국민의 눈으로 봐도 밀실거래, 구태정치일 뿐이다.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간주되는 건 치명적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원칙의 고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는 기존 권위를 거부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선출된 사람과 제도에만 권위를 부여하는 체제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전통의 창조적인 계승을 통해 새로운 토대와 상징을 세운다. 민주주의는 이런 새로움의 축적을 통해 성숙된다. 기존의 작태를 용인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정지 내지 쇠퇴를 뜻한다. 새로움의 축적에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공개적인 토론과 소통을 요구한다. 정당도 이런 절차 안에서만 작동한다. 이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그 어떤 정치적 판단이나 정략적 사고도 민주주의와 결합할 수 없다. 어느 체제에서도 권력을 원리에 앞세우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정당은 권력에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권력에 자유롭다. 정당과 무관하게 무언가를 원하고, 무언가를 정치에 기대한다. 정치적 선택은 오로지 이런 소망과 기대 안에서만 작동한다. 따라서 원칙 없는 담합과 경쟁, 개방적이지 못한 담합과 경쟁은 받아들일 수 없다. 상대방을 헐뜯는 전략은 표를 얻을지 몰라도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유권자의 무관심만 키울 뿐이다. 귀중한 한 표는 부동표가 될 뿐이다. 구태정치는 정당의 이익만 앞세운다. 정략은 원칙에 앞선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정치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민주주의 체제는 매우 유연하다. 그 덕을 톡톡히 볼 수 있다. 그 어느 체제보다 민주주의 체제는 실수도 용인한다. 사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실수는 누구나 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체제는 실수를 용납하되, 실수를 통해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아는 체제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실수를 통해 스스로 새롭게 구성된다. 적어도 민주주의 성원들은 민주주의 구성방식을 배워야 한다. 실수는 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제도를 개선 가능하게 한다. 민주주의 체제가 역사를 남다르게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선례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역사는 반복이 아닌, 새로운 선택을 요구한다. 선조들의 어긋난 선택도 시대적 정치적 판단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실수는 잘못이지만, 새로운 선택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는 게 진짜 어리석은 것이다. 늦었다고 말할 때 배워야 한다. 진실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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