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밝힌 부정선거 사례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 수준을 넘어선다. 현장투표에서는 임시 투표소 설치 차원이 아니라 "동일인 필체가 나온 것을 확보했고, (투표한 사람이) 당원이 아닌 경우도 나왔다"고 한다. 온라인 투표에서도 투표 과정에서 소스코드를 열어보는 수준이 아니라 "동일 IP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투표행위에서 대리투표 등 부정투표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고 한다.
▲관악을 후보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정희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이날 오전 발표된 진상조사 결과도 충격적이지만, 이정희 대표를 포함한 소위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들의 사고는 더 충격적이다.
조준호 조사위원장은 4명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진상조사를 책임지게 된 이유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진보연대 등 3개의 정파와 무관한 유일한 공동대표이기 때문이다. 조 위원장은 민주노총 출신이다. 당권파들은 "대표단에 보고가 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지만 앞서 대표단회의에서 조 위원장에게 조사와 관련된 전권을 위임했다. 심지어 외부도 아닌 자당의 진상조사위원회의 공정성, 객관성을 문제 삼았다. 이런 발상은 당권파들이 그동안 자기 정파의 이익을 위해 당 내에서 공정성, 객관성을 침해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이정희 대표를 포함한 당권파가 진상조사위원회의 '공정성'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가? 이정희 대표는 '재범'이다. 이 대표는 앞서 관악을 경선에서 부정경선 사태로 후보를 사퇴했다. 이 대표는 경선 부정이 발각된 이후에도 "재경선을 하자"며 버티다가 사흘 만에 사퇴했다. "부정선거 당"이라는 비난을 처음 사게 만든 당사자다. 뿐만 아니라 이번 비례 경선 투표에서 부정행위를 통해 이득을 봤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범 당권파 출신들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이 어떻게 진보를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공정한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본 토대다. 이를 부인하는 세력은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뽑는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 안에 들어올 수 없다. 이승만 정권과 군부독재정권이 부정선거를 저지러온 부끄러운 과거를 21세기에 재연한 정치세력이 어떻게 진보를 자칭할 수 있나.
당권파의 문제제기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날 발표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미흡하다. "총체적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는 결과는 있는데,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낱낱이 밝히는 일이 이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권파들이 진상조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은 그 자체로 진실을 가리는 행위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자기 측근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 조사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면 통합진보당은 뭐라고 평하겠는가?
행여나 이날 당권파의 반발이 드러난 경선 부정으로 이득을 본 자기 계파 비례대표 당선자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착각이 지나치다. 이미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2,3번 당선자들은 "총체적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들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어떻게 이들을 국민의 대표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들 세 후보는 이미 국회의원으로서 정당성을 상실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의 비극적인 사태를 보며 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분명한 것은 통합진보당이 이번 사태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당의 미래는 없다. 통합진보당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당권파는 2일 이의엽 정책위원장을 통해 진상조사결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당 차원에서 열리는 3일 대표단회의와 4일로 예정된 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도덕적,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책임질지에 대해" 논의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당권파의 대표로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희 대표의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당권파의 이익을 대표할 것인가, 통합진보당의 이익을 대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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