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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전주장’ 명성 재현하는 박기춘 목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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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만드는 사람들] ‘전주장’ 명성 재현하는 박기춘 목공예가

'살기 위해' 배웠던 목공예, 52년째 나무와 호흡... 전통가구 재현에 혼신

박기춘 목공예가가 전통가구인 삼층장을 만들기 위해 사포를 이용, 나무를 다듬고 있다./프레시안(=이태영 기자)

문화와 예술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예술의 고장'인 전북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소신과 철학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들을 찾아 작품 세계와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은 목공예가다.

목공예는 나무를 이용해 여러 가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장식품 등을 만드는 일이다.

다양한 목공예 중에서도 전국 최고의 명품가구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전주장’의 명성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다. 52년째 나무와 함께 호흡하며 전통의 멋을 조각해 가는 박기춘(64) 목공예가를 만나 전국 최고의 ‘전주장’을 만들어가는 삶을 들어봤다./편집자주

■토종 나무들만 재료로 사용...전주장 재현에 온 힘

‘쓱쓱~~싹~~싹~~’

깎여진 톱밥이 꽃잎모양으로 나뒹굴었다. 박기춘 목공예가가 홍송(붉은색을 띄는 소나무)을 대패로 밀 때마다 붉은 꽃이 공방을 가득 메워갔다. 붉은 꽃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를 때 홍송은 제법 전주장 모양을 갖춰갔다.

박 목공예가는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해 전주장의 하나인 ‘삼층장’(의복과 솜, 천, 버선 등을 보관하던 3층으로 된 안방용 가구)을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그의 작업실 입구와 안에는 수북이 쌓아 올린 각종 원목 나무 재료와 가마, 교자상, 삼층장 등 다양한 형태의 목공예품이 가득 모양새를 뽐내고 서 있다. 공방을 가득 메운 목재와 옛 목공도구가 정겹게 자리잡고 있었다.

오직 우리나라의 토종 나무들인 참죽나무, 육송, 홍송, 벚나무, 은행나무, 편백나무, 괴목 등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수 년 전부터 ‘조선시대 가구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전주장 만드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다.

“한때 임금의 하사품으로 이용될 만큼 명성이 있었던 전주장을 재현하는 데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

전주장은 다른 지방 장보다 크기가 작고, 장 안에 비밀문갑이 달린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귀중품이나 중요한 문서를 숨겨 넣기 딱 좋게 되어 있다.

박 목공예가의 눈과 손을 마주한 나무는 영락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새 옷을 입는다. 썩었다고, 보기 흉하다고 버리는 일도 없다. 있는 그대로, 자연의 미를 최대한 살리려는 그의 인생과 닮았다.
박기춘 목공예가가 전주 풍남제 행사 가마행렬을 위해 만들 가마. /프레시안(=이태영 기자)

■고아원서 자란 전주 토박이...‘살기위해’ 목공일 배워

박기춘 목공예가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가 12살이 되던 해 학업을 뒤로 한 채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목공소에 들어가 목공일을 배웠다.

힘든 목공일을 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여러 차례 퇴짜를 맞기도 했다. 사정사정해 가까스로 목공일을 배우게 된 그는 18세가 되던 해 목공분야 기술자 대우를 받았다.

선천적으로 눈썰미와 손재주가 남달라서였을까?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 내는 가구나 기물 등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20세 되던 해 서울로 올라가 큰 규모의 가구점에 목공 기술자로서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한적 없이 묵묵하게 주어진 일만 하며 살아서일까?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설명만 하면 용도에 꼭 맞는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큰 규모의 호텔 내부공사 일체가 주어졌다.

큰 규모의 각종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그렇게 수년 째 묵묵히 목공일에 매달리며 살아온 그에게도 1997년 IMF는 시련으로 다가왔다.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 것. 서울 생활을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릴 적부터 배워 온 목공예 외에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건 자신이 없었다.

어릴 적 그를 돌봐준 고아원을 찾아 뜻 있는 아이들에게 목공기술을 가르쳐 주며 재기를 모색했다. 고아원에서 매년 목공기술을 가르쳐 주는 여름학교를 열기도 했다.

‘살기 위해’ 목공예 일을 계속하며 스스로는 가구 만드는 데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짜맞춤 기술을 익혔다.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새로운 접합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년이 흐른 뒤 전주 평화동 인근에 목공예방을 차린 후 오늘까지도 나무와 함께 살아오고 있다.
석등형 육각목등 ⓒ박기춘 공방

■새로운 짜임기법으로 가구 내구성 높여...풍남제 행사 때 가마 만들기도

“서로 다른 나무가 한 몸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가구가 완성됩니다...제가 만들고 있는 가구들은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미감도 최대한 살려 냈습니다”

박기춘 목공예가는 전주 풍남제 행사때 1,2,3회 연속 가마행렬에 사용된 가마를 만든 장본인이다.

풍남제는 전주시에서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옷날에 베풀어지는 민속제전이다. 목공일을 수십 년 해 온 경험 많은 목수도 어지간해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마를 만들어낸 것,

그는 나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장식품을 전체적인 형태를 눈으로 한번 보기만 해도 어떻게 제작해야 되는지 방법이 떠오른다 할 정도로 눈썰미가 좋다.

특히 그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가구와 공예품들의 제작기법은 한국의 전통방법인 장부짜임(목구조의 한 부재에 장부를 내고 다른 부재에는 장부구멍을 파서 끼우는 결구법), 연귀촉짜임(세모꼴 파임을 이용한 짜임. 보통 사방탁자의 세로 기둥과 가로 쇠목을 연결할 때 쓰이며 각재를 90도로 연결해주는 기법) 같은 전통 짜임기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는 전통가구를 재현함에 과거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마감에 어울리도록 조형성과 실용성을 고려하는 독창성을 구사한다.

“전통 짜임기법에 작가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응용해 새로운 짜임기법으로 가구의 내구성을 과거의 것보다 더 견고하게 했습니다”

그는 짜임기법에는 목재들 조립 시 모서리 이음새 부분 내부에 사각 혹은 삼각 판재를 다시 삽입하는 기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또한 교자상에서 잘 드러나듯이 판재의 사용에 원하는 너비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접착기법을 활용, 판재들을 지그재그식으로 겹치게 접착함으로써 완전 건조 후에는 전혀 분리되지 않고 작품이 뒤틀리거나 변형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그의 가구들은 조형성에서 날렵하고 청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그의 독창성은 돋보이고 있다.

기법에 있어서도 전통 짜임기법을 바탕으로 제작함으로써 가구들에게 치밀한 형태미가 돋보이는 특성이 있다.
ⓒ박기춘 공방

■목공예 기술학교 세우고 후배양성하는 게 꿈

박기춘 목공예가는 묵묵히 목공예가의 길만 걸었을 뿐, 개인 전시회나 전국 공모전에 출품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작품을 본 여러 지인들이 “전국 공모전에 출품해서 실력을 한번 공증 받는 것도 좋지 안겠나”라는 권유에 몇 차례 응모했을 뿐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2014년 제17회 세종문화대상 목공예문 명품을 수상했다. 2016년 제4회 대한민국 전통 공예대전에서는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7년엔 문화재 수리기능자(소목수)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요즘 그의 공방에는 그에게 목공예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대부분 취미로 배우지만 제2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물론 후계자의 길을 걷기 위해 청년들도 문을 두드리기는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경제적 이유가 주된 이유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그는 요즘 목공예 기술학교를 세우는 꿈을 키우고 있다.

50여년 넘게 익히고 배운 목공예 기술을 체계적으로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매달 2회 노인요양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사회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따뜻한 손’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이 애용했던 가구들을 하나하나 다시 재현하고픈 소망을 지닌 그에게 장인의 숨결이 흠뻑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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