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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의 발광욕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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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교수의 발광욕대규

[기고] 송호근 서울대 교수야말로 '민생 현장'을 아는가?

송호근 교수의 7월 25일 자 <중앙일보> 칼럼(☞바로 보기 : '진보지식인 성명에 현장은 없었다')에서 "진보의 책문(策文)은 발광욕대규(發狂慾大叫)"라는 구절을 처음 봤을 때, 필자는 깜짝 놀랐다. 발광대욕규는 '미쳐 소리치고 싶다'는 의미인데, 설마 송 교수가 7월 18일의 지식인선언을 미쳐 소리치고 싶은 자들의 악다구니쯤으로 여기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칼럼을 끝까지 읽어보니 미쳐 소리치고 싶은 주체는 서명에 동참한 323명의 지식인이 아니라 송 교수 자신인 듯해서 일단 마음이 놓였다.

지식인선언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표방했던 출범 당시 정신을 망각하고 규제 완화 일변도의 정책으로 회귀하는 조짐이 보여서, 이를 엄중히 경고하고 '촛불 정부'의 소임인 사회경제개혁에 매진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발표한 것이다. 선언의 대상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였음에도, 엉뚱하게 송호근 교수가 미쳐 소리치고 싶었다니 기이한 일이다.

현장을 잘 아는 실천적 지식인들이 참여했으면 어쩌려고?

서울대 석좌교수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인 '유력' 인사가 일갈한 것이니만큼, 선언문 초안 작성과 기자회견까지의 관련 실무를 담당했던 필자로서는 칼럼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학자가 다른 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이라서, 이론이나 논리 타당성 방면의 지적이 중심을 이룰 것이라 짐작했건만, 칼럼은 필자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가 칼럼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 구절로 집약된다. "대공장에 가봤냐고? 중소기업체 직원들이 파산만은 면하려고 안간힘 쓰는 현장을 가봤냐고? 본사의 갑질과 급상승한 최저임금에 협공당하는 영세점주의 고충을 들어봤냐고?"

지식인이 323명이나 동참한 선언을 놓고, 당신들이 현장을 아느냐고 질책하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정말 현장에 천착하는 실천적 지식인들이 선언에 참여했다면 어쩌려고 송 교수는 그다지도 '용감하게' 꾸짖는 것일까? 필자만 해도 서울대 교수는 알 수 없을 '을(乙)'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이력서를 백 군데나 냈는데도 면접 한 번 못 본 청년들의 비애를 송 교수는 들어 봤을까? 취업이라고 했지만 비정규직이라서 한참 동안 상사 눈치를 보다가 결국은 잘려서 나와야만 하는 사회 초년병들의 좌절감은? 전국 방방곡곡까지 침범하는 재벌·대기업의 상권 침범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수십 년을 지탱해온 구멍가게, 마트, 식당을 정리해야만 하는 지방 자영업자의 애환을 접한 적이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이야기로 송호근 교수의 기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그는 현장 운운하며 우리를 학자로 대하지 않았지만, 필자는 그를 학자로 대접해드리고 싶다. 아래에서는 칼럼 중에서 그래도 논리적으로 대응할만한 부분을 뽑아서 반론하고자 한다.

송 교수의 칼럼에는 과학적 진단도, 객관적 근거 제시도 없다

송 교수는 "파산만은 면하려고 안간힘 쓰는 중소기업체 직원과 본사의 갑질과 급상승한 최저임금에 협공당하는 영세점주"를 많이 염려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왜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영세점주들이 왜 노동자 임금조차 벌지 못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과학적 진단은 없다. 필자가 송호근 교수의 칼럼을 애써 읽어서 발견한 원인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제한, 두 가지이다. 한계상황에 처해 있던 영세 기업가와 자영업자들에게 그 두 가지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 지식인선언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정책을 최저임금 인상 정책과 함께 추진하지 않아서 을과 병의 전쟁을 야기한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가 곤경에 처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그 두 가지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는 것은 부당하다. 왜 송 교수에게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범, 재벌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일감 몰아주기, 기술 탈취 등의 반시장적 행태보다 문재인 정부가 '찔끔' 시행한 정책들이 더 눈에 띈 것일까?

송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는 정규직 정원이 다 찼다고 대답한다. 근거는 말하지 않는다. 석·박사도 비정규직, 기간제로 일하는데 그 아래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인 듯하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임대료 상승을 유발하므로 소용이 없단다. 송 교수는 사회학자고, 필자는 경제학자다. 경제학자로서 단언하는데,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대한 그의 주장은 틀렸다.

한국 사회의 최대 과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송호근 교수는 증세해서 복지를 강화하자는 지식인선언의 주장에 반대한다. 굳이 복지를 강화하려면, 우선 소득세를 면제받는 근로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중상위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시켜는 대신 하위 소득자에게 개별적으로 공적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복지=일자리 창출'이라는 유럽 복지국가의 '기본 방정식'을 거론하지만, 복지국가의 초입에도 들지 못한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한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 당장 필요한 것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특권이익과 지대를 환수하는 일이고, 그렇게 확보되는 재원으로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에 이 일을 하라고 촉구한 지식인 323명에게 '제발 현장에 가보라!'고 외치는 송호근 교수는 외계인인가, 한국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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