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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는 소유에 앞선다"

[시민정치시평] 소유권은 절대적 권능이 아니다

용산참사를 비롯한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사회적 문제가 강제철거 문제다. 강제철거의 무자비성을 비판하면서 강제철거금지법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다. 그러나, 민법이 소유권의 절대적 권능으로서 소유자에게 점유자를 무자비하게 쫓아 낼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는 한, 소유자의 권리로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루어지는 강제철거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똑 같은 이유로 강제철거 문제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권리금 문제도 소유권의 절대적 권능 앞에서는 한발도 전진하지 못한다.

민법 제213조는 '소유자는 그 소유에 속한 물건을 점유한 자에 대하여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그 물건을 점유할 권리가 있는 때에는 반환을 거부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 규정은 민법에서 소유권의 절대적 권능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규정이다. 이 규정에 의하여 소유자는 점유자가 소유자에게 대항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점유자가 물건을 점유함으로써 가지는 주거의 평온, 직업의 자유, 인격권, 가족을 보호ㆍ유지하고자 하는 소망 등 일체의 생활관계를 무시하고 점유 상태를 뒤집어서 물건을 반환할 것을 판결에 의하여 강제할 수 있게 된다. 소유자가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물건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택, 상가 등의 부동산인데, 그 부동산이 점유자가 평생을 바쳐서 일궈온 일터라거나 단란한 가정의 보금자리라거나 하는 등의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소유권 앞에서 직업의 자유, 사생활과 주거의 평온과 같은 헌법적 가치는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민법을 처음 배우던 시절 들었던 이야기다. 민법이 소유권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이유는 소유권은 법이 보호하기로 맹세한 권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많은 법률실무와 시민운동, 입법운동을 해 오면서 '과연 우리 법체계가 소유권을 보호하기로 맹세하였나?'라는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 헌법 제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유권도 재산권의 일종임에 틀림없으므로 우리 헌법상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해지는 것에 불과하고, 그 또한 다른 재산권보다 특별히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볼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왜 우리 민법은 소유권을 그렇게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을까? 과연 우리 법체계는 소유권을 보호하기로 맹세하였나?

소유권 절대주의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존 로크를 만나게 된다. 로크는 재산권에 천부인권의 지위를 부여한 정치사상가이다. 존 로크에 의해 재산권은 생명권, 자유권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존 로크는 노동가치설에 입각해서 소유권 질서를 정당화하였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모든 인간이 풍족하게 사용할 만큼 충분한 자연을 주었고, 어떤 개인이 자연에 자신의 노력을 가하여 수취한 것은 그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것이다.

로크의 이러한 설명은 일상적인 생활관계의 경험으로부터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우물은 우리 모두의 것이지만, 자신의 노력을 기울여서 우물로부터 길어서 주전자에 담은 물은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것은 우리 일상의 생활관계에 부합한다.

그런데 모든 이론이 제약조건을 가지듯이 로크의 소유권절대주의 이론에도 두 가지 제약조건이 있다. 우선,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노동을 가하여 소유물을 수취할 만큼 자연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이 충분하지 않다면, 자연에 노동을 가하여 소유물을 수취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러한 상태는 소유권제도의 공정성(학문세계의 제1덕목이 진리이듯이 사회제도의 제1덕목은 공정이다. 어떠한 정치사상가도 공정하지 않은 사회제도를 지속가능한 사회제도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을 허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소유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신의 노동으로 수취한 것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노동에 의한 수취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소유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에 의한 수취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자연 자체는 로크의 소유권 절대주의 사상에서도 소유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토지를 개간하여 수확물을 얻으면 그 수확물은 토지를 개간한 자의 소유이지만, 토지까지 개간한 자의 소유가 될 수는 없다. 토지 자체를 노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는 다른 사람들도 가질 수 있을 만큼 무한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소유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토지 소유권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토지 소유권의 근거는 지배자의 결정이었다. 지배자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법에 의하여 토지 소유권이 정해지고, 분배되었다. 토지는 무한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로크의 소유권 이론에서도 토지는 사유 재산이 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토지소유권의 근거는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사정(査定)이라는 행정처분이다.
대법원은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이루어진 토지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정에 토지소유권을 원시취득하게 하는 절대적인 권리 분배의 효력을 부여한다.

이처럼 과거의 어떤 시기에 지배자의 결정으로 토지소유권의 향방을 정하므로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토지를 정당하게 분배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토지없이는 삶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토지를 타인으로부터 사거나 빌려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사유 재산권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존 로크의 소유권 절대주의 이론에서도 토지소유권은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과거의 특정시기에 지배자의 결정으로 분배되는 토지소유권이 법체계가 보호하기로 맹세한 권리가 될 수 있겠는가?

토지소유권은 철학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권리이다. 법이론적으로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법이 정하는 내용과 한계에 의존해서만 인정될 수 있는 권리이다. 즉, 토지소유권은 생명권, 자유권과 같이 인권의 반열에 오른 확고한 권리가 아니라, 법률에 의한 강제에 불과하다.

토지소유권이 이처럼 철학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고, 법이론적으로 제한적인 권리임에 반하여, 점유권은 대체로 삶의 기초를 구성하는 권리이다. 점유권은 일터나 주거와 결합되는 권리로서 소유권보다 상위의 권리로 보호되어 마땅한 권리이다. 점유를 빼앗기면 직업을 잃거나 주거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활경험이다. 점유를 동반하는 소유권의 경우, 점유를 보호함으로써 소유자가 소유물에 대하여 가진 이해관계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소유권의 진면목은 점유와 소유가 유리된 경우에 볼 수 있다. 소유권은 현재의 점유자를 상대로 그 점유상태를 뒤집어서 점유를 박탈할 수 있는 무자비한 권리로 나타난다.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 헌법으로부터 우리의 법체계를 다시 써야 한다. 소유권 질서에도 인권에 관한 보편 규범을 반영하여 소유권을 이유로 직업의 자유, 사생활과 주거의 평온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점유와 소유가 충돌할 때, 점유를 더 강하게 보호해야 한다. 점유는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소망이지만, 소유는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이다. 점유는 삶의 터전, 인간의 생활관계, 눈물과 피땀이지만, 소유는 재산, 화폐, 숫자, 전자파일에 불과하다. 상가임차인, 주택임차인이 부동산소유자에 대항하여 자신의 삶의 터전을 방어할 수 있도록 굳건한 성채를 만들어야 한다.

'점유는 소유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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