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위쿠데타 논란으로 표류 중인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통화를 감청했고, 민간인 수백만 명을 무차별 사찰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30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이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내부제보를 통해 이 같은 정보를 입수했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를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무사, 대통령·민간인 무차별 감시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기무사는 과거 윤광웅 국방부 장관 재임 시절(2004~2006) 노 전 대통령과 윤 장관의 통화를 감청했다. 당시 대통령은 민정수석(현 문재인 대통령)에 관한 업무를 국방부 장관과 논의했다. 감청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방부 장관이 사용하는 유선전화가 군용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감청은 비상식적이다. 군인권센터는 "대통령과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할 기무사가 지휘권자까지 감시한 것"이라며 "기무사가 벌인 도·감청의 범위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가 누적 수백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도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기무사는 존재 의의 자체를 시험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군대가 주권자를 불법 사찰했다는 사실은 이미 세월호 피해자 불법 사찰 논란으로 드러났지만, 무작위 민간인이 불법 사찰에 노출됐다는 건 파괴력에서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통상 민간인이 군부대 면회, 군사법원 방청, 군병원 병문안 등 군사시설을 방문할 때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 위병소는 방문 민간인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을 전산망에 입력하는데, 이 정보를 기무사가 사찰에 이용했다는 게 군인권센터의 설명이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기무사는 매 1개월 단위로 보안부서인 3처 주관 하에 위병소에서 확보한 민간인 개인정보를 일괄 수합해 이를 대공 수사 부서인 5처에 넘긴다.
5처는 경찰로부터 수사협조 명목 하에 제공받은 경찰망 회선 50개를 활용, 민간인들의 주소, 출국정보, 범죄경력 등을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한다. 이 중 진보 인사, 운동권 단체 활동 대학생, 기자, 정치인 등 특별한 점이 있는 인사들에게 갖가지 명목을 붙여 대공 수사 용의선상에 올린다.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이라면 군대를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무사의 대공 수사 '용의자'가 된 것이다. 용의자가 되는 명목도 기무사 마음대로였다.
군인권센터는 "중국 여행을 다녀온 출국정보가 있는 경우에는 '적성국가 방문'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범죄경력이 있는 경우에는 '범법행위자' 등을 명목으로 갖다 붙인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용의선상에 올리는 식"이라며 "이렇게 한 뒤 대공 수사 명목의 감시, 미행, 감청, 소셜미디어 관찰 등의 갖가지 사찰을 자행한다"고 비판했다.
기무사는 '군내 방첩업무'와 군사기밀과 관련한 보안 감시를 하는 곳이다. 민간인을 수사 대상으로 사찰하는 건 명백한 불법행위다.
민간인 사찰 전담 부대도 운용
기무사가 아예 민간인 사찰 전담 부대까지 운용했다고도 군인권센터는 지적했다.
사찰 부대는 '60단위 기무부대'로, 이들이 기무사 특활비 200억 원의 주된 사용처라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60단위 기무부대는 전국 각지에 퍼져 지역정치인, 공무원, 지역유지 등과 '세미나' 명목으로 술자리 향응접대를 일삼으며 민간 관련 첩보를 수집한다. 또 국회의원 보좌진, 시민단체 활동가 등을 대상으로 20~30만 원 상당의 고가 식사 제공, 선물 공세 등의 향응 접대를 벌여 매수한 뒤 소위 '프락치'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군인권센터는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이 같은 무차별 사찰의 대표적 사례로 지난 2016년 기무사가 대외비로 작성한 문건 '현안보고-좌파단체 민주주의국민행동 하반기 투쟁 계획(2016.9.23.)'을 꼽았다. 이 문서는 함세웅 신부 등이 포함된 민주주의국민행동이 2016년 8월 25일 서울 합정동에서 개최한 워크숍 결과를 상세히 정리해뒀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가 프락치를 활용했거나, 도·감청, 해킹 등을 통해 문건 내용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기무사는 각종 집회 현장은 물론, 서울퀴어문화축제 등의 대규모 문화행사에도 요원을 파견해 민간인들을 사찰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군인 사찰은 당연히(?) 마음대로
기무사의 군 장병 사찰 역시 제멋대로 이뤄졌다고 군인권센터는 지적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기무사는 군인 사찰을 '관리'로 표현한다. 관리는 기본관리와 중점관리로 나뉜다.
기본관리는 소위 '존안자료 작성'으로 알려진 행위다. 각급 부대의 기무부대 요원이 군 간부 개인정보를 수집, 평가항목에 따라 자료를 작성한다. 평가항목에는 충성심, 도덕심, 사생활, 음주, 업무 충실도 등이 포함된다. 해당 정보는 장병 탐문이나 지휘관·참모 등의 뒷이야기를 캐내는 식으로 수집된다.
이렇게 작성된 정보는 군내 인사에 활용됐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에 비판적 입장을 가진 간부 존안자료가 부정적으로 작성되는 경향이 있다"며 "예를 들어 사찰 대상 간부의 주량이 2병일 경우, 기무사에게 잘 보인 간부는 '주량이 2병으로 세서 술을 마시고도 실수가 없다'고 쓰는 반면, 기무사의 미움을 받는 간부는 '주량이 2병이나 되는 폭주가로 술 먹고 사고를 칠 가능성이 크다'고 쓰는 식"이라고 밝혔다.
평가 항목이 추상적인 만큼, 악용될 소지가 크고 전근대적인 수준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주량 등의 정보가 인사에 반영되는 건 헛웃음이 나올 만한 일이다. 더 중요한 건, 이 같은 정보를 통해 기무사가 군 인사권을 틀어쥐게 된다는 점이다.
중점관리는 소위 '동향관찰'로 알려진 명백한 불법 사찰이다.
기무요원이 기본관리 중 특이한 첩보를 입수하면, 대상자는 중점관리 대상으로 변경된다. 기무부대 지휘관이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하면, 그때부터 해당 간부는 횡령, 비리 등은 물론, 불륜 등 사생활 영역까지 감시당한다.
군인권센터는 중점관리 내용으로 "유선전화 감청, 일과 후 및 휴무일 미행 감시, 2주~한 달 여의 잠복활동"등이 포함된다며 "첩보 결과는 감시 대상목표의 차상급지휘관에게 제공되며, 지휘관은 해당 정보를 활용하여 감찰 및 헌병조사를 의뢰한다"고 밝혔다.
사병 역시 사찰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연히 제1 감시 대상은 운동권 경력이 있는 대학생 출신 입대자다.
군인권센터는 "지금은 없어진 306보충대 입소자의 경우 600기무부대(의정부)에서, 논산 육군훈련소 입소자의 경우 607기무부대(대전)에서 사찰"했다며 "기무사는 사찰 목표 병사의 휴가 시 미행, 소셜미디어 관찰 등을 시행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지난 2016년 기무사가 대학 시절 운동권 활동을 한 3군사령부 소속의 병사를 휴가 중 미행하고 통장 거래 내역을 추적하다 들통 난 사건이 있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감시는 당연히 불법적이다. 군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운동권 출신을 이유로 기무사가 한 개인을 마구잡이로 사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군인권센터는 "사찰은 기무사가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권력의 원천"이라며 "누구나 기무사의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기 때문에 장군부터 초급간부까지 모두 기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기무사 해체해야"
기무사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권력을 움켜쥔 전두환 등 12.12 쿠데타 세력이 몸담았던 보안사령부의 후신이다. 군인권센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쿠데타 30년이 지나도록 기무사는 외피만 방첩기관일뿐, 여전히 권력을 추구하며 온 국민을 무차별 감시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군인권센터는 "제보자에 따르면, 2012년 기무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노무현 자서전>을 가지고 있자 교관이 '이러한 불온서적을 읽어도 괜찮은가?'라고 추궁한 해프닝도 있었다"며 "기무사가 전직 대통령을 이적 인사로 본다는 충격적인 의미"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다른 제보에 따르면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였을 당시 속보를 본 기무사 요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를 존치한 상태에서 군 개혁은 불가능하다"며 "(기무사 해체 후) 대공 및 대전복 첩보 수집 임무는 '군방첩수사단'을 신설해 맡기되, 군과 관련된 내란과 외환에 관한 첩보만을 수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첩이 군인이 되려 하거나, 군인이 간첩과 접촉하거나, 군인이 쿠데타를 모의하는 행위로만 신설 방첩수사단의 첩보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군인권센터는 또 "(신설 부대에) 공안수사권을 부여하되 헌병에게도 이중으로 부여해 견제가 가능하게끔 해야 할 것"이라며 "단장은 민간개방직으로 두어 문민통제의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 해체 후 기무사 요원은 전원 원대 복귀시키고, 군방첩수사단 등 기무사 해체 후 신설될 정보 관련 기구에 보임될 수 없도록 원천 배제해야 한다"며 "기무사에서 교육 받고 근무한 이력이 있는 자들은 다시는 정보 업무에 접근할 수 없게 해야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정보기관을 만들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아울러 기무사의 정책 기능은 모두 민간 영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도 전했다. 민간인으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의 가칭 '군인사검증위원회'를 세워, 이 위원회에서 대령 이상 고위급 군 관련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군인권센터는 "군인 인사의 평가 기준과 근거를 민간에서 마련하는 것이 문민통제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또 "정부에 대한 군 관련 상황보고도 기무사 종합상황실이 아닌 국방부와 합참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종합상황실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면 된다"며 "보안업무 역시 각급부대 보안부서에서 담당하면 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의 이 같은 기행이 드러난만큼 "기무사 개혁 태스크포스(TF)도 재구성해야 한다"며 "현 기무사 개혁 TF는 13명 중 9명이 현역 군인으로 구성되어있고, 심지어 이 중 3명은 기무사 장군"이라고 지적했다.
계엄령 문건이 공개되기 전에는 해당 TF에 바로 계엄령 문건 작성 책임자인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혁 대상이 오히려 개혁 주체가 된 형국인 셈이다.
군인권센터는 "기무사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체의 감시와 통제로부터 벗어나 국민의 머리 위에 올라 서 누구도 겁내지 않는다"며 "70년 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기형적 정보기관의 실체가 드러난 이 때를 기회삼아 기무사를 반드시 해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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