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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 아빠의 11년 싸움, 이제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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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 아빠의 11년 싸움, 이제 이기는 길이다

삼성과 반올림, 조정위 방안 따르기로 약속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전자를 대표한 임원과 공개된 자리에서 악수를 했다. 이로써 황 씨가 사망한 지난 2007년 이후 11년 동안 끌어온 삼성 직업병 분쟁은 해결 국면에 들어섰다.

반올림과 삼성, 중재안 무조건 따르기로10월 안에 보상 완료 계획


직업병 피해자와 삼성 측이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한다고 약속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삼성전자, 그리고 조정위는 24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법무법인 지평 대회의실에서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 서명식'을 열었다. 반올림을 대표한 황상기 씨, 삼성전자에서 나온 김선식 전무, 김지형 조정위원장이 합의문에 서명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조정위원장이 마련한 중재안을 무조건 따른다'라는 게 합의문의 골자다. 조정위는 오는 8∼9월 중재안 내용을 논의해 마련하고,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최종 중재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10월 안에 삼성전자가 반올림 소속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완료하기로 했다.

중재안에는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 절차 및 방안, 삼성전자 측의 사과,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아울러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등 직업병 전문가들이 중재안 마련 실무에 참가하기로 했다.

이날 합의문은 삼성전자가 "중재안에서 제시하는 절차에 따라 중재안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반올림에 대해선 '합의가 이뤄지는 날을 기준으로 수일 내 삼성전자 앞에서의 농성을 해제할 것'과 '중재안에서 제시하는 절차에 따라 반올림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보상받는 데 필요한 사항을 이행할 것'을 의무로 명시했다.

반올림, 노숙농성 1023일째 농성장 해체 예정

이에 따라 반올림은 삼성전자 서초 본사 앞에서 1022일째 이어온 농성을 중단하기로 했다. 농성 1023일째인 25일 저녁, 삼성전자 서초 본사 앞에서 문화제를 열고 농성장을 해체할 예정이다.

조정위가 처음 구성된 건 지난 2014년 11월이었다. 그보다 3개월 전인 같은 해 8월, 법원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 고(故) 이숙영 씨 등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2015년 7월, 조정위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독립적인 공익재단을 세워 피해자를 보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게 1차 중재였다. 반올림 측은 이를 수용하겠다고 했으나, 삼성 측이 거부했다. 삼성 측은 독립 재단이 아닌 자체 보상위원회를 통한 보상을 주장했다. 그러자 반올림은 삼성전자 서초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했다. 조정위 권고안마저 거부한 삼성에 대한 항의였다. 농성이 천 일을 넘기면서, 조정위가 2차 중재를 시도했고, 삼성 측이 갑작스레 이를 받아들였다. 24일 열린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 서명식'이 그 결과다.

그간 자체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반올림과 백도명 교수 등을 비판했던 삼성 측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등에 대한 고려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해석이 있다.

김지형 전 대법관 "불행 겪은 분들, 대가 없이 헌신한 분들제가 구원받았다"

이날 서명식에서 황상기 씨와 반올림 활동가들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대법관 출신이며 노동법 전문가인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자신이 구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는 "산업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큰 불행을 겪은 분들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경험"이라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그런 분들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온 몸을 던져 헌신하는 분들을 대하면서, 그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온 제 삶이 새삼 부끄럽기만 했다"고 말했다.

반올림은 입장글을 통해 "아직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채 중재안에 사전 합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반올림은 "조정위원회가 처음 출범할 때부터 이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한 약속을 믿기로 했다"라며 합의 배경을 설명했다.

황상기 "끝까지 책임 회피한, 섭섭하고 못난 삼성"

황상기 씨는 미리 준비한 자필 편지를 낭독했다. 황 씨는 이 글에서 반올림을 포함해서 그간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애쓴 이들을 열거하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삼성과 정부에 대해서는 쓴 소리를 했다. 황 씨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이 병들고 죽는데도 끝까지 책임 회피하면서 10년이 넘도록 있다가 이제야 미흡하게 해결하는 것은 정말 섭섭하고 못난 삼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삼성을 운영하는 이들이 바뀌고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에 대해서도 삼성 반도체 공장 근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 대해 섭섭하다고 밝혔다.

- 다음은 황상기 씨의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반올림 황상기입니다.

우리 유미가 2005년 삼성반도체 공장 다니다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을 적에 너무나도 큰 낙심과 좌절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의 어려운 얘기를 듣고 기사로 다루어 준 말지, 수원시민신문 등 여러 언론 기자님들이 삼성직업병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해주신 덕분에 미흡하나마 삼성반도체, LCD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또한 삼성직업병 피해자 여러분, 특히 혜경 씨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10년이 넘도록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치료비, 생계비 등 어려움이 많이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반올림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상임활동을 해오신 분들도 고생하셨습니다.
날이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철주야로 고생하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또한 반올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단체들, 다산인권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건강한 노동세상 등 많은 단체들, 소수정당인들, 또한 종교인들, 개인적으로 반올림에 찾아오셔서 후원에 동참해주신 분, 반올림 천막농성 3년 가까이 슬픈 일,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또 하나의 약속> 영화를 만드신 분, 감독, 피디, 영화배우, 스텝 여러분, 다큐멘터리 만드신 감독, 스텝 여러분들도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연극으로 세상에 알리고, 책으로도 만화책으로도 삼성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생하신 여러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또한 속초에서도 황상기 용기를 잃지말라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속초모임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법률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 참 많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법률 서비스를 도와주셨기 때문에 삼성이 대화에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반지모(반올림지원노무사모임) 여러분 감사합니다.
삼성직업병 피해자들 산재신청 역학조사 등 이 어렵고 힘든 과정을 불평없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삼성 직업병 문제는 노동조합이 없어서 생긴 일이라면서 죽어라하고 힘을 실어주면서 싸워온 민주노총 관계자 여러분과 금속노조 여러분들 정말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칭찬할 수 없고 미운 곳이 있습니다.
바로 삼성입니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이 병들고 죽는데도 끝까지 책임회피하면서 10년이 넘도록 있다가 이제야 미흡하게 해결하는 것은 정말 섭섭하고 못난 삼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은 아니 삼성이 아니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변해야 합니다.
사회와 소통해야 합니다.
노동자와 소통해야 합니다.
세상은 변해가는데 삼성맨들만 소통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도 삼성직업병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뭐했냐고 묻고 싶습니다.
삼성노동자들 각종 화학약품으로 병들고 죽어가는데 삼성반도체 공장 근로감독이나 처벌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정부가 노동자 문제에 소홀한 점 너무너무 섭섭합니다.

산업의학교수님들, 학생 여러분들 독성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 노력해주셔서 삼성직업병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반도체 공장을 포함하여 이 사회도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로 갈거라 생각합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삼성직업병 문제를 풀기 위해서 수 년간 노력해오신 조정위원장님, 조정위원님을 포함하여 문제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외에 다수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반올림에 힘을 실어주셔서 오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반올림은 독성화학물질 직업병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올림 황상기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24일 서명식에서 눈물을 흘렸다. 반올림 활동가들도 함께 울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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