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전 국민의 '이과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시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전 국민의 '이과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시대

[평화통일시민강좌] <3>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비한 북한사전'을 주제로 8월 11일까지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7월 14일 서울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바실리오홀에서 '북한을 읽는 키워드, 과학기술 강국'을 주제로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이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 강좌 소개 바로 가기)

▲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주체과학'을 바탕으로 한 자립경제건설 계획

과학기술 주도로 국가발전을 이룩하겠다는 북한의 구상은 짧게는 1990년대 말부터, 길게는 해방 직후부터 이어져 왔다.

김일성은 식민잔재 청산과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 발전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1950년대 말 소련의 원조가 줄어들자 북한은 자립경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가기 위해 과학기술에서의 주체를 강조하고 연료, 원료, 인력,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기본방향을 설정했다.

우리는 '천리마 운동'을 '새벽별 운동'이나 '천 삽 뜨고 한번 허리 펴기' 등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노동력이 부족하고 하루도 24시간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만으로는 공업 생산성을 연평균 30% 이상 상승시키기는 어렵다.

실제 과학계와 생산현장에서 크고 작은 기술혁신들이 있었다. 석유가 아닌 북한에 풍부한 석회석과 석탄을 원료로 하여 만든 합성섬유 '비날론' 생산 공장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북한은 소련의 도움 없이도 과학기술 발전으로 경제건설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공업 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1962년 안보위기를 겪으며 북한은 경제와 국방을 같이 발전시키겠다는 병진노선을 택했다. 소련과 중국의 갈등, 쿠바 미사일 위기(1962)·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1962) 등에서 미국에 대한 소련의 타협적 태도 등으로 인해 북한, 중국, 소련의 삼각 동맹에 큰 균열이 생긴 반면, 남한에서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한미일 동맹이 강화될 가능성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은 안보위기를 느끼게 되고 경제에 일부 지장이 있다 하더라도 국방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1960년대 말에는 국가 예산의 30%가 국방으로 들어가게 됐다.

국방과학기술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고 과학연구 주제도 경제와 결부시켜 연구주제를 통제하게 되니 과학자들이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과학발전 속도도 떨어졌다. 이로 인해 1970년대 말까지는 과학계에 대한 감시와 통제 위주의 과학기술 정책이 유지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말부터 변화를 모색하여 과학자의 사기 진작과 과학기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과학영재들을 가르치기 위해 평양에 제1고등중학교를 설립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김정일 시대의 도전과 성과

과학에 대한 지원확대와 과학기술 전문성을 높여나가는 정책은 김정일 위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은 영재교육에 부정적이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과학기술 영재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때부터 이공계 분야에 탁월한 학생들은 군대 지원 없이도 바로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고, 과학기술 예산 및 과학기술 우대정책 확대, IT 등 첨단 과학기술 육성과 같은 정책들도 모색했다. 1990년대 들어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 김일성 주석 사망과 경제난을 거치며 10년 정도 중단됐던 이 정책은 1998년 '과학기술중시정책'이란 이름으로 재가동됐다.

2001년 3월 김정일 위원장이 당 간부들 앞에서 "새 세기, 21세기는 정보산업시대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정보화시대에 맞게 경제정책을 바꾸고 간부선발 방식도 학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중학교를 다닌 탈북자에 따르면, 이때부터 북한 학생들은 '컴퓨터를 잘 하면 좋은 직장에 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공이 아니더라도 C언어를 대부분 할 줄 안다고 한다(이 탈북자는 남한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선호하지만, 북한에서는 2000년대 이후 인재들이 이공계로 간다고 했다).

2002년부터는 초중등 교육에서 컴퓨터 영재교육이 강화되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컴퓨터 관련 학과가 신설됐으며,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도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김정일 시대는 선군시대 경제 발전 노선을 채택했고,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를 그 대표적인 성과로 꼽는다. 2009년 4월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2호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에 성공했는데, 이때부터 CNC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인공위성과 수천 km를 올라가야 하는 로켓은 부품의 정밀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로 정밀공작기계를 제어해야 한다. 그래서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나라들은 자체 CNC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북한은 CNC를 필두로 국방 과학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하면 민간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2009년에는 '지식경제시대'와 '과학기술 강국' 담론도 등장했다. 그리고 2009년은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김정일 시대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식경제 강국 건설'을 목표로 한 '새 세기 산업혁명론'이 후계자의 과제로 정립됐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의 과학기술 정책은 김정일 시대의 10여 년의 모색과 실행의 결과이며 연속성이 크다.

▲ 지난 2017년 1월 2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사중인 여명거리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전 국민의 '이과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시대

북한은 과학기술 강국을 위해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중요시한다. 전 인민들이 대학 졸업 수준의 과학기술지식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무교육 과정에서 과학기술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11년 의무교육과정을 12년으로 늘리면서 38% 정도였던 수학·과학 비중을 45% 정도까지 높였다.

학교 실험실과 교실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평양중등학원 교사를 새로 짓고 교실마다 컴퓨터와 시청각 기기를 설치했다. 전자열람실, 생물, 화학, 물리, 기초기술 실습실도 만들었는데, 생물실습실에는 책상마다 현미경과 노트북이 비치되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강의실도 컴퓨터에 기초한 '다기능화된' 강의실로 바꾸고 있고, 이공계 실습을 강화하기 위해 실습용 설비와 기자재를 확충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본보기를 만들고 전국에 전파하고자 한다.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가 평양 쑥섬에 지어진 과학기술전당이다.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을 보급하는 것이 목적이다.

남한의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과학공부 하라고 하면서 본인들은 하지 않는다. 과학관은 학생들이나 가는 곳으로 인식한다. 과천에 있는 국립과학관의 2배 규모인 평양의 과학기술전당은 학생은 물론이고 성인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북한은 우리처럼 개인 PC로 자료를 검색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학기술전당에 과학기술 자료를 축적해 놓고 사람들이 직접 방문하거나 공장·농장의 전자열람실에서 접속해 필요한 자료들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이곳은 김정은 시대에 만들어진 전국적인 과학기술보급망의 '허브'다.

과학기술보급망 확충은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위해 북한이 강조하는 사업이다. 공장에 과학기술보급소를 만들고, 공간이 부족하면 공장 곳곳에 무선공유기를 설치해서 태블릿PC로 접속하여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한다.

주민들은 과학기술보급실에서 과학기술전당만이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등 대학들이 운영하는 원격교육대학 사이트에 접속하여 대학교육을 수강한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도 인터넷 강의처럼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전자교과서를 이용해 수업을 한다.

과학자 우대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평양에는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가 차례대로 건설됐다. 연구성과가 좋은 현직 과학자나 이미 은퇴했으나 국가에 공헌이 큰 과학자들이 이 단지들의 아파트를 무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전체 과학자에 비하면 적은 수이겠지만, 현역에 있는 과학자에게 열심히 하면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준다.

과학자 전용 휴양소도 있고 최근에는 '국가 최우수 과학자·기술자상'을 신설하여 연구성과가 뛰어난 과학자와 엔지니어에게 시상과 상금을 주고 <노동신문>에 한명 한명의 사연을 기사화한다. 이렇게 과학자들의 연구 의욕을 북돋아 준다.

"평양서는 중국산 제품 안 쓰고 안 먹습네다"

새 세기 산업혁명의 핵심은 '정보화', 즉 생산과 경영 전반에 컴퓨터 이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역점은 통합생산체계 구축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주요 경공업 공장, 식품공장 대부분이 정보화, 현대화됐다.

룡악산비누공장은 주요공정이 전부 자동화되고 컴퓨터망으로 연결되어 종합지령실에서 컴퓨터로 특정 공정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류원신발공장도 통합생산체계가 완성되어 일 년에 백만 켤레 이상을 생산한다. 통합생산체계를 도입해서 품질관리를 표준화하고 생산력도 높였으며 노동력은 절감됐다. 이제 평양에서는 중국산보다 질 좋은 '국산' 소비재를 더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대학이나 연구기관도 자체적인 상품 개발과 판매를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일성대 첨단과학연구원이 자외선가시분광광도계(투과율을 이용한 농도측정기)나 백신 프로그램 '클락새'를 만들고, 생물공학 분원이 줄기세포 화장품이나 건강식품을 만들어 판다.

북한은 공장이나 기업소, 농장의 신기술 개발도 독려하고 각종 과학기술 전시회를 개최한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하여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은 여전히 국가나 협동조합 소유지만, 기업들에 최대한의 경영권을 보장하여 이윤을 창출하도록 한다. 과학기술에 기초해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 수익이 늘면 개인이 가져가는 수익도 늘어나게 해서 생산 의욕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제활력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북한은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여전히 전기 사정이 안 좋은 상황에서 생활에너지를 최대한 친환경 에너지로 충당하려고 한다. 평양 소재 음대에 가면 강의실 창문마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생산현장에도 친환경 에너지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류원신발공장에는 400kw 태양광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북한 보도에 따르면 이 시스템으로 생산에 필요한 모든 전기를 충당하고 남는 전기는 국가전력망에 넣어준다고 한다. 평양화장품공장도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지하에는 분산형 지열설비도 갖추었다고 한다.

아직 대규모 중공업 공장이나 화학공업 공장에는 통합생산체계나 친환경 에너지 비중이 높지 않아 보이지만, 평양의 경공업이나 식품공장에는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김정은 위원장의 새해 첫 현지지도는 '국가과학원'

김정은 위원장의 2018년 첫 현지 지도는 '국가과학원'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을 갈 때도 과학원이나 농업, 에너지 분야의 연구기관을 방문했다. 북한은 올해 4월 20일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와 핵의 병진노선 종결을 선언하고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집중'이라는 전략적 노선을 발표했다. 과학기술과 교육의 힘으로 강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가 핵심 구호이고,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 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5월 인민군 최고위급 인사를 단행했다. 국내언론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에 대한 군부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온건파로 교체했다는 해석이 주로 소개됐다. 하지만 과학기술 측면에서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총정치국장 김수길은 인민군 중장을 하다 2014년 4월 평양시당위원장으로 발령이 났다. 오늘 강연에서 예로 든, 과학기술 중시 정책에서 비롯된 최근 평양시의 변화는 대부분 김수길이 시당위원장으로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즉, 그는 4년 동안 평양시가 과학기술정책에 따라 확 바뀔 때 총책임자였던 사람이다. 이 사람을 군 서열 1위로 보냈다.

인민무력상 노광철은 직전까지 제2경제위원장, 그러니까 군수공업과 국방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인민무력상으로 새로 임명한 것이다. 경제 국방의 병진노선을 종결하고 경제건설의 총력집중으로 바꾸었으니, 거기에 맞춰 군 사업 전반도 재조정한다는 것이다.

2013년 북한이 경제-핵 병진노선을 채택할 때 내세운 첫째 목표는 핵 억지력을 갖추는 것이었고, 둘째 목표는 국방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이를 민간으로 옮겨 민간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핵 무력 완성과 병진노선의 종결 선언 이후 군 최고위급 인사 단행은 전략적 노선의 변화에 맞게 국방과학기술의 민간이전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앞으로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이전이 대대적으로,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