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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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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평화통일시민강좌] <1>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올해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비한 북한사전'을 주제로 8월 11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5월 12일 서울 종각역 인근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북한혐오를 파헤치다'를 주제로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이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 강좌 소개 바로 가기)

혐북현상 1. "우리도 북한처럼 국정교과서 택하고 망할 것인가"


현실 속에서 혐오는 존재 자체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은 것이다. 북한이 그냥 싫은 것이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는 '북한을 혐오와 조롱, 냉소나 적대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태도'를 혐북이라고 규정했다. 소위 민주진보개혁 세력에서도 북한에 대한 혐오가 너무나 많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국정교과서 채택한다고 할 때 굉장히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때 한 TV 토론에 출연한 유명 작가가 "북한은 국정교과서 채택하고 다양성이 말살되어서 망했다. 북한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북한식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망했는가? 망할 뻔 했지만 망하지 않았다. 망했다 치더라도 국정교과서 채택해서 다양성이 말살되어 망했다는 건 섣부른 결론이다. 물론 논란은 많다. 중요한 점은 북한이 이렇게 안 좋은 것의 사례로만 소비된다는 사실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포스터를 패러디한 포스터가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남녀 주인공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바꾸고 욕을 써 놨다. 뜬금없는 일이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화가 나서 거리로 나갔는데, 갑자기 '우리도 북한이랑 비슷하다' 이렇게 가버린다.

우리는 북한에 빗대지 않아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충분히 싸울 수 있다. 촛불항쟁 당시 광화문광장에 선 유명 방송인은 "촛불 든 우리는 한 번도 불의에 저항한 적 없는 북한 사람들보다 위대하다"는 발언을 했다. 맥락상 그 전 발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인데 뜬금없이 북한을 끌어 들인다.

▲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혐북현상 2. 남한 수구세력과 "짬짜미"하는 북한

또한 적대적 공생이라 하면서 북한이 남한 수구세력과 "짬짜미"한다고 한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다. 그때 남한은 10월 재보궐 선거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고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꿀 때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자 이명박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라 하며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그때 <딴지일보>에 '괴물의 죽음'이라면서 죽는 타이밍도 수구에게 도움을 준다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이 굉장히 많다. 4.27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고, SNS상에서는 세기도 힘들 정도다.

혐북의 토대 1.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분단체제'

평화공존의 상대인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못보고 있는데 그 토대를 살펴보자.

우리는 북을 적으로 규정하는 '분단체제' 속에 살고 있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유엔 회원국이기도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괴뢰고, 휴전선 이북은 괴뢰가 점령하고 있는 수복 대상 지역이 된다.

대한민국은 형법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전에 국가보안법이 먼저 작동했다. 근대국가에서는 인신을 구속하고 벌주고 죽이는 폭력행위를 법에 근거하여 국가만이 할 수 있다. 그 법이 형법이다. 형법은 근대국가의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인데 형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일제가 만든 국가보안법이 북한이란 존재를 핑계로 먼저 작동된 것이다.

백낙청 선생은 분단을 핑계로 주권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해 온 관행을 '이면헌법'이라 지칭한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헌법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이미 폐기되었어야 마땅하다. 분단체제에서 북은 적이기 때문에, 북과 친하거나 북을 좋다고 하거나 북을 이롭게 하면 잡아가는 것이 당연한 나라에서 혐북은 당연하게 되었다.

혐북의 토대 2. 우리가 볼 때 납득 안되는 북한발 사건들

우리가 볼 때 쉽게 납득이 안되는 북한발 사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3대 세습문제가 있다. 3대 세습, 연평도 포격, 장성택 처형 등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를 떠나 민주주의, 인권 등의 잣대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2009년 5월 25일 우리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상중인데 북은 2차 핵실험을 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북이 핵실험을 했고 이명박은 이것을 핑계 대며 북이 핵실험하는데 초상만 치르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쌓여가며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만들어졌다.

혐북의 토대 3. 왜곡과 오보 넘쳐나는 북한뉴스

북한에 대한 왜곡된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혐북 인식을 조장하는데 기여했다. 2016년 9월 <뉴욕타임스>가 한국발 북한 정보는 조작이나 부정확한 것이 많으므로 잘 가려서 봐야 한다는 기사를 쓴 적도 있다("Rumors, Misinformation and Anonymity: The Challenges of Reporting on North Korea" The NewYork Times, 2016.09.15.).

2015~16년 대북제재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기자들이 단둥에 가서 '숨죽인 단둥...북한 제재 이번엔 심상찮아'라고 기사를 쓴다. 압록강 대교는 차가 없고 북한 식당은 문을 닫았다는 기사들이 나온다. 그러나 사실은 문 닫았다는 북한 식당은 바로 옆 100미터 거리로 옮겼고, 원래 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압록강 대교를 찍어놓고 경제 제재로 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이 '북, 전기요금 300~3000배 인상...주민 쥐어짜기'란 제목으로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실제로 기본요금 기준에서 300배, 누진제가 적용되면 최대 3000배 인상한 것은 맞다. 문제는 인상 전 북의 전기요금이 거의 공짜였다는 것이다.

기사 내용도 20여 년 전부터 전력난을 겪었던 북한이 이제야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사람들이 경제관념을 가지고 아껴 쓰도록 하기 위해 인상했다는 건데,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제목만 보면 천하에 이런 나쁜 정권이 없다. 이런 기사를 별 생각 없이 제목만 보고 넘어가면 북을 혐오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북한혐오의 토대 4. '이명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대북 대결정책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북한 붕괴론이 기승을 부렸고 이명박 정부는 곧 붕괴할 북한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 오바마 행정부를 대화하면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설득까지 했다.

2008년 관광객 피격 사망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자 김정일 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사과하며 재발 방지 약속을 했다. 그런데 정부는 못 믿겠다며 문서로 약속해달라고 했다. 북의 입장에서 최고지도자가 한 약속을 믿지 못하겠으니 문서화해달라는 요구는 굉장히 치욕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이 문서화를 거부했다고 일관되게 거짓말을 했다.

▲ 금강산 관광지구 내 버스정류장. 2008년 이후 사용하지 않아 낡은 상태 그대로 방치됐다. ⓒ프레시안(이재호)

그러나 2012년 홍익표 의원이 그 당시 북이 한국 정부의 요구안을 담은 초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폭로했다. 남쪽 협상단이 논의해 놓기로 하고 논의를 안했으면서 북에서 종이 문서를 안 써줘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안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런 식으로 남북대화를 거부해왔다.

한국 정부의 종북몰이도 대단했다. 2013년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되었다. 발언 녹취록이 400군데 이상 조작되고 나중에 재판에서도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이 유죄였지만 국회에서는 정의당은 모두 찬성했고 민주당도 대부분 찬성했다. 오히려 반대와 기권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려는 시도가 펼쳐졌다.

지난 9년 동안 대북인식이 안 좋아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대북 적대 의식이 약화되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가 남북분단 70년사에서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1. 북에 대한 무지

혐북이 만연하니, 그 후과도 크다. 분단문제와 북한문제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 머릿속의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어 사람들의 불만이 높고, 그래서 권력은 불안정하고 폭압적이라 생각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북한에 살고 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도가 50% 이상이었다고 생각했나'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해마다 높아져 2017년에 63.4%였다. 2016년 36년 만에 열린 7차 당 대회, 6개월마다 개최되는 전원회의 등 북한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안정화되어 있다.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 경제성장률을 남한보다 앞선 3%대 초반으로 추정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주요 경공업, 식품공장의 생산라인이 자동화되어 있고 컴퓨터로 원격조종 하고 있다. 통합생산체계를 구축해 노동력을 절감하고 컴퓨터로 품질관리를 하니 효율이 높아졌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에서 탈북자들의 북한 거주 시 식생활에 대해 물었다. 85%이상이 하루에 세끼 이상 먹고 한 끼도 못 먹는다고 하는 사람은 0%이다. 탈북 직전 고기 식사 횟수도 물어봤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 37.1%, 거의 매일이 17.4%, 한 달에 한두 번이 32%이다.

물론 평양 외곽으로 나가면 여전히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고 남한의 70년대 수준 집들이 있는 지역들이 있지만, 평양에는 여명거리라든가 과학자우대정책으로 인한 과학자 전용 휴양시설이 있다. 이런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혐오로 인해서 북한의 못사는 장면만 그것도 90년대 후반의 극심한 경제난 당시의 못사는 장면만 떠올린다. 북한의 20대에게도 고난의 행군 시절은 옛날이야기이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2. 북한은 호전광이란 잘못된 인식

북한은 호전광이란 인식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절실하게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나라가 북한이다. 동북아 긴장 때문에 가장 힘들고 손해 보는 나라가 북한이었다.

북은 일관되게 핵을 포기하기 위해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합의되자마자 미국 재무부가 북한이 위조 달러를 유통시켰다는 명분으로 뱅코델타아시아 은행을 제재했다. 하지만 미국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2009년 <뉴스위크>가 2006년 당시 미 재무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위조 달러는 중국 고위 장성들의 비자금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지금도 위조 달러를 명분으로 북한을 제재하고 있다.

북한이 2006년 1차 핵실험을 하고 2007년 2.13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때부터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가 하나씩 실현되어 갔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한다.

진보커뮤니티에서는 냉각탑 폭파를 안 해도 되는데 북한이 쇼하려고 폭파시켜서 주변이 광범위하게 방사능 오염되어 주민들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냉각탑 폭파는 극적인 장면을 위해 미국이 요구한 것이다. 한국 정부한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크리스토퍼 힐이 북한에 가서 미국 국내 여론용으로 사진 찍고 왔다.

▲ 2008년 6월 북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장면. CNN 방송 갈무리

이 과정에서 북한이 1만 9000쪽에 달하는 1980년대부터의 핵 활동 관련 문서를 미국에 넘겼다. 이렇게 하면 미국이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문서를 받은 이후 사전에 약속되지 않았던 '검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지고 합의는 흐지부지 된다.

그 뒤로 북한은 계속 핵개발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북한은 꾸준히 대화 제안을 했다. 2015년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이하여 북한은 공화국 정부성명을 내며 대화 제안을 했다. 매해 대화 제안을 하는데 사람들은 모르거나 진의를 믿지 않는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취임 한 달여 뒤 인도 주재 북한대사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은 핵실험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 예전보다 요구조건을 낮춘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는 거의 동시에 한미군사훈련은 합법이고 북한의 핵실험은 불법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11월 29일까지 달려갔다.

지금의 대화국면도 북한이 먼저 구체적 행동을 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평화가 절박하다. 북한이 '우리가 왜 굳이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냐'는 이야기를 20여 년 동안 했는데 이제야 조금씩 믿어주고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긴장과 위기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다. 한반도 위기는 북미 대결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북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미 항공모함 3척이 한꺼번에 한반도로 몰려들면서 미국이 한반도 긴장 고조의 주범임을 알아서 보여주었다.

북한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거리 시험을 한 번도 안했다. 위로만 쐈는데 그것을 계산해서 사정거리가 미 본토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미국은 작년에 미니트맨3라는 ICBM을 여러 번 실거리 사격을 했다. 이것을 조금만 방향과 각도를 조절하면 평양까지 간다. 그런데 미국이 ICBM을 발사하면 메시지를 탑재했다고 하고 북한이 하면 도발이 된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3. 누가 더 '반북'적인지 경쟁하는 사회


국내 이념 지형이 보수화 되어간다. 종북 공세에 무기력하게 밀려오면서 우리가 종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누가 더 반북인지 경쟁한다.

2016년 당시 한 야당 의원이 5.18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했던 박승춘 보훈처장을 색깔론으로 공격했다. 김일성 주석의 외삼촌 강진석은 13년 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고, 해방 전에 사망해서 북 정권을 만드는데 참여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수십 년 간 싸워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이 이루어졌는데, 그 의원은 '김일성 집안'에 주었다고 박승춘을 공격했다. 당장 박승춘은 난처했겠지만 속으로는 웃었을 것이다. 박승춘은 앞으로 사회주의자에게 서훈 줄 때 더 신중하겠다고 대답했다.

한 유명 기자님은 페이스북에서 '북한이 예전처럼 연석회의 주장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땅에 정체성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쪽의 주장에 생각 없이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연석회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면 틀린 이유를 합리적으로 제시하면 하면 된다. 만약 내가 이것저것 따져보고 연석회의를 하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려도, 나는 북의 주장에 생각 없이 부화뇌동하는 사람이 된다.

14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했던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다. 시민운동가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던 인사들이 정치권에 들어온 뒤 국가보안법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구도가 결정되었을 때 한 변호사는 TV토론에 나와서 '김정일 000' 해보라고 했을 때 못하면 종북이라고 규정했다. 지금 여당 지지자들 중 일부가 실제로 SNS나 팟캐스트에서 북한 관련 발언을 할 때 '김정은 000', '김일성 000'를 먼저 쓰고 시작한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4. 혐오와 폭력을 합리화하는 사회

혐북은 인권의식과 지적능력을 파괴시킨다. 아이들에게 혐오와 폭력을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3년 전 초등학생들에게 통일교육 한다고 군 장교가 북한과 관련한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들이 울면서 뛰쳐나갔다.

그나마 뛰쳐나갔던 아이들은 그런 내용을 거부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냥 흡수한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김정은은 총으로 쏴 죽여야 하는데 왜 친하게 지내라고 해요?'라고 묻는다. '김정은을 죽여야 우리가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 중 일부도 공공연하게 '간첩 고문하는 게 죄야?'라고 생각한다.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행위가 간첩에게는 허용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이다.

<한겨레> 오철우 기자의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라는 책이 있다.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 아님을 증명했다기보다는, 그 당시 천안함 민관합동조사위원회에서 북한 소행이라 결론 내린 여러 가지 과학실험 결과가 부실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과학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것들을 부실하게 해놓고 믿음을 강조했다. 그래서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북한 탓이라 하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냉철한 이성이 사라지고 전반적인 사회지능이 떨어진다. 혐북이 확산될수록 지적능력이 파괴된다.

▲ 강연하고 있는 변학문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여전히 합리성이 결여된 '세련된' 혐북, '적대적 공생론'

적대적 공생론도 있다. 북한이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이명박 정권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분노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 시험은 오바마 미국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다.

되돌아보면 2009년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에 대화 제의를 했고 2월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할 권리가 있느냐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모든 나라들이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인공위성과 장거리 로켓을 개발하고 발사할 수 있는데 북한만 못한다. 장거리 로켓은 미국을 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이 북의 주권을 보장하느냐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 중에 하나가 자신들의 인공위성 발사 권리를 보장하느냐이다.

이것을 두고 이견이 벌어지다 북한이 4월 광명성 2호를 발사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으로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 연설을 준비할 때이다. 물론 그는 연설만 하고 행동은 하나도 안했지만 노벨상을 수상했다. 바로 이 연설 당일 새벽에 광명성 2호가 발사됐고,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 북한을 비난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때부터 둘의 사이가 더욱 안 좋아지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북이 5월 25일 핵 시험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국면에 '이명박이 위기에 빠졌으니 한번 쏴줘야지'가 아니라,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몇 시간을 앞두고 쏜 것이다. 미국 여론에 대한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였다. 우리로서는 아쉽고 야속할 수 있었겠지만, 이것이 이명박과 짜고 치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분단 구조를 해체해야 하고, 이를 위해 혐북에서 벗어나 북한을 합리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혐북하다 전쟁 직전까지 간 김영삼 정권


김영삼 대통령은 '핵을 가진 상대와 악수할 수 없다'며 남북대화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을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협박한 것처럼 알지만 실제는 달랐다.

북한과 미국이 물밑 접촉 끝에 1994년 2월 비무장지대의 긴장 완화와 양국의 적대행위 중단을 잠정 합의했고, 이것을 3월에 공식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정부는 북미대화를 반대하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남북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클린턴 대통령이 남북 특사 방문 이후 북미 발표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특사방문을 위한 실무회담이 열렸다. '불바다' 발언이 나온 그 회담이다.

그전부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비롯하여 한반도 분위기는 험악했다. 이 회담에서 북한은 그동안 남한이 해왔던 행위들을 열거하며 이렇게 하면 '전쟁이 나고 휴전선에서 서울이 멀지 않고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고 말했다.

남북회담은 녹화는 하지만 공개하지는 않는다. 이것을 청와대가 편집을 해서 방송사를 돌아다니고 MBC가 제일 자극적인 부분을 편집해서 반복해서 내보냈다. 북미협상은 물 건너갔고 94년 6월 북한 폭격 직전까지 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을 싫어하고 대화를 거부해서 전쟁 직전까지 갔다.

혐북에 사로잡혀 있으면 김영삼 정부 때처럼 전쟁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혐북에 머무르면 결국 우리의 안전과 이익을 침해당하고 지성과 감성마저 저하된다. 혐북을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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