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과 '제2차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이 조용히 확정되었다. 2030년까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BAU(배출전망 또는 현 추세 지속) 대비 37% 줄이고 향후 3년간 배출권 할당총량을 17억7713만 톤으로 설정한 것으로, 둘다 환경부 초안이 그대로 녹색성장위원회를 통과한 결과다. 오는 24일 국무회의를 한번 더 거치겠지만 추가적 변동은 없을 것 같다.
정부의 발표와 이를 설명하는 언론 보도는 203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목표였던 5만3600만 톤으로 유지하되, 근거와 내용이 불투명하다고 비판받았던 국외감축량을 11.3%에서 4.5%로 줄이고 대신에 국내의 부문별 감축량을 25.7%에서 32.5%까지 늘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실제로는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량이 늘어났고 그만큼 산업계의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들이 존재한다. 그 전 로드맵에 존재하지 않았던 산림흡수원이 감축수단으로 추가되었고 해외감축분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수단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업을 할지 그리고 국제적으로 어떻게 인정받을지가 향후 발굴하고 협상해야 할 과제로 넘겨질 것이다. 전환(발전) 부문도 폐지가 확정된 석탄화력발전소 수 만큼의 배출량 말고는 '추가 감축잠재량'이라는 모호한 항목이 남았다. 이 부분들은 2020년에 UN에 수정된 NDC(국가별 감축기여목표) 제출 전까지 다시 확정되어야 한다. 환경급전과 세제 개편, 남북 협력사업, 수소경제 인프라 구축 등 세부적 정책 수단들이 언급되었지만 모두 앞으로 검토를 거쳐야 유효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번에 수정된 로드맵의 더욱 중요한 결함은 한국이 얼마나 온실가스 감축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의식이 사회적으로 전혀 환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파리협정이 온도 상승을 2도보다 훨씬 아래인 1.5도까지 묶어두도록 노력할 것을 명시했고,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배출량과 국력에 걸맞지 않는 미온적인 감축 목표를 비판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고려는 결과적으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로드맵 수정을 책임졌던 환경부는 연초에 관련 논의를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공개토론회와 녹색성장위원회 회의에 이르기까지, 파리협정의 원칙과 진지한 기후변화 대응의 책무는 외면한 채 시종일관 산업계를 달래고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녹색성장위원회를 주재한 국무총리가 거듭 강조한 것도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책무와 국가적 수준의 감축 준비가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내 기업 의견수렴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배출권 할당계획도 기업들의 추가 부담이 거의 없는 수준으로 그리고 국제무역 비중이 큰 업종들은 여전히 무상 할당이 적용되는 것으로 확정된 것을 보면, 2차 배출권 할당을 빨리 끝내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을 거꾸로 짜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현 정부로서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무책임하게 설정해 놓은 감축 목표의 내용들을 정리하고 뒤처리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억울해 할 수 있고, 녹색성장위원회도 환경부가 다 짜 놓은 목표와 세목들을 어떻게 바꿔보기에는 힘이 부쳤을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서 총 감축 목표와 부문별 목표로 제시되는 숫자 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와 기업들에게 주는 시그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로드맵 수정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한국이 앞으로 수년부터 십수년간 무엇을 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과 기업들이 받은 신호는 'BAU(지금 하는 것 그대로 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모든 가치가 종속되어 왔던, 그래서 환경과 문화와 사람을 담당하는 부서들은 언제나 돈과 산업의 가치와 그것을 담당하는 부서에 휘둘려야 했던 한국의 사정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고, 바뀔 조짐이 있어야 하며, 최소한 그러한 변화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발언하고 정책을 만들고 다른 부서들과 싸우는 것이,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을 저해한다고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지구와 사람의 관계와 지속성을 고민하는 환경부의 운명이자 책무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환경부가 장차관을 둔 별도의 정부 부처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래도 '환경부'라면, 이번 로드맵 수정 논의 과정에서 공언했던 'BAU 기준 폐기'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유감이라도 표하면서, 실제 온실가스 감축 수준이 보잘 것이 없다는 점 또한 솔직히 밝혀야 했다. 예를 들어 2030년에 5만3600만 톤이라는 목표 배출량은 2010년 배출량인 6만5700만 톤 대비로 하면 37%가 아니라 19% 감축에 불과하다. 만약 정확한 감축 효과나 수단이 확정되지 않은 수치들(에너지신산업과 CCUS[탄소포집이용저장] 1만30만 톤, 산림흡수원과 국외감축 3830만 톤, 전환 부분 추가감축 잠재량 3410만 톤)까지 제외하면 2030년 배출량은 5만3600만 톤 아니라 6만1870만 톤이 되고, 그렇다면 2010년 배출량에 대비하여 겨우 5.8% 감축에 불과하게 된다.
또한 그래도 '환경부'라면, 이번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작업을 마무리 하면서, 비록 지금은 국내의 조건 제약과 준비의 부족으로 인해 1.5도 목표를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했고 결과를 만들어내지도 못했지만, 그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언급을 구두선으로라도 했어야 했다. 그리고 향후 2020년에 제출할 목표 설정과 2050년 장기 감축전략 수립에서 한국의 입장과 앞으로의 논의 기준은 투명하고 분명한 감축수단 설정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1.5도 목표와 국제 사회의 요구에 맞춰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여, 국민과 산업계에 명확한 신호를 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래도 '환경부'라면, 스스로 공언했던 로드맵 재설정의 목표들마저 저버린 것과 산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급급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지구와 인류를 지키는 핵심 부처로서 본분을 다할 것을 결의해야 한다. 스스로의 자세를 분명히 하고 일관성을 갖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부처의 독립성이 확보될 리도 만무하며, 시민사회도 환경부를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은 이렇게 끝났지만 환경부의 역할과 운명은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밝히고 만들어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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