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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좌회전 깜빡이를 켠 우회전'?

[민교협의 시선] 체중감량과 체질개선의 차이

체중감량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노력하면 가능하지만, 체질개선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하게 노력해야 가능하다. 고도성장 이후의 우리나라경제는 체질개선이 필요했다. 두 번의 기회가 있었고, 지금 세 번째의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물거품같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재벌총수의 개혁합의 그리고 용두사미

한국정부는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1997년 말 IMF와 구제금융 협약을 맺었다(1997.12.3.). 당시 재벌의 과도한 투자가 외환위기의 주요원인이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어느 때보다 재벌개혁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 전에 4대 재벌총수를 만나 '초강도'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1998.1.13.). 재벌총수의 책임 하에 부채비율을 낮추고 계열 간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여 경영투명성을 제고하며 문어발식 업종을 전문화하라는 것이었다. 한 재계인사가 "섬뜩했다"라고 전할정도로 김 당선자는 결연했다고 한다. 이에 총수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해야 하는 것"(삼성 이건희), "정리해고는 마지막 방법으로 하려는 것"(현대 정몽구), "당연히 해야 하는 것"(LG 구본무), "1백% 동의한다."(SK 최종현)라고 적극적인 동의를 표시했다(중앙일보 1998.1.14.).

노사정은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에 합의하는 공동협약을 체결했다(1998.2.6). 이때부터 '명예퇴직'과 '희망퇴직'의 단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재벌총수들은 적극적인 동의를 표시한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구조조정 안의 하나인 문어발 업종 조정에 대해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시 여당인 국민회의는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강조했고, 김 당선자 측근들은 재벌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더라도 강제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다(한겨레21 1998.2.12.). 재벌총수와 김 당선자 측근들은 시장경제원리에서 벗어나는 구제금융은 받아들이고 구조조정 압력은 시장경제원리에서 어긋난다고 부정하는 모순된 논리를 공유했다. 당시 국민은 돌반지와 결혼반지를 들고 은행에 가고 노동자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포기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한국사회는 격차사회로 돌입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의 외풍을 이용하여 재벌개혁을 일정기간 시도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고도성장에서 안정성장으로의 변화는 체중감량이 아니라 체질개선이기에 지지율 하락을 예상하며 인내를 가지고 지속하여 다음 정권으로 바통을 넘겨주어야했다.

노무현 정부 '국민소득 2만 불로 가는 길'과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

필자는 제16대 대통령 후보자 토론에서 노무현 후보자가 이회창 후보자의 선 성장, 후 분배 주장과는 달리 성장시키면서 분배도 중시하겠다고 하여 논리적인 모순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예상한바와 같이 출범 초기 재벌개혁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해하기 어려운 두 가지 선택을 했다. 첫째는 재벌개혁의 적임자를 등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책의 골자를 개혁대상의 계열 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얻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한지 6개월만인 200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선언하면서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했다(한겨레 2012.2.12.). 삼성경제연구소는 30명의 연구진을 투입하여 450쪽에 달하는 '국민소득 2만불로 가는 길'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마의 1만불'이라는 위기를 강조하고 2만불이 되면 노사관계도 안정된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2만불을 달성하는 비결로 첫째, 정치 리더십으로 국력을 결집해야하고, 둘째,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하며, 셋째, 전통제조업의 혁신과 신성장 엔진의 발굴을 제시했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 출범초기의 정책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내용인 것 같다. 그렇지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요건을 보면 노무현 정부 출범초기의 지향점을 크게 수정해야 했다. 보고서는 '과도한 친노동자 정책은 경제 쇠퇴의 원인'이 된다며 영국이 1942년 베버리지보고서 이후 분배정책 및 복지국가 건설을 추진한 것이 영국병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보고서는 1만불에서 2만불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업규제를 철폐하고 세금 인하로 기업 활력을 제고해야한다고 제안했다(삼성경제연구소, 국민소득 2만불로 가는 길: 선진 23개국 벤치마킹).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에서 실패한 재벌개혁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는 지지율 하락을 과도하게 의식한 탓에 사상 첫 연속된 진보정권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구조 체질개선의 고통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탓이라고 판단된다.

장하성-김상조 콤비의 어제와 오늘

우리는 고도성장에서 안정성장으로의 체질개선 과정에서 두 번의 실패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초기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잡게 하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게 우리나라 경제의 체질개선을 맡겼다. 두 사람은 20년 전 각각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위원장과 재벌개혁감시단장으로 시작하여 호흡을 맞추어온 경제민주화의 화신과 같은 존재로 기대가 모아졌다. 그런데 최근 김상조 위원장은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성, 경직성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강한 어조로 진보진영 시민단체를 비판했다(한겨레 2018.7.6.). 문재인 대통령 취임(2017.5.10.) 1년 2개월만의 일이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그룹총수들과의 합의에 대한 입장'(1998.1.16.)에서 '정리해고제 도입으로 근로자들이 기업부실화의 책임을 떠맡게 된 상황'에서 '무엇보다 재벌 총수들의 퇴진이 선행'되어야한다고 강한 어조로 김 대통령당선자와 재벌총수와의 합의를 비판했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는 7개월 뒤 '대통령의 재벌 총수와의 비공식 독대에 관한 논평'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총수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한 대화과정'이 '또 다른 정경유착으로 이어졌던 암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대통령이 진정으로 구해야할 것은 재벌총수의 이해와 협조가 아니라 국민의 이해와 협조임을 분명히 한다.'라고 강조했다(1998.8.20.). 김대중 정부 출범(1998.2.25.) 6개월만의 일이었다.

청와대 경제정책팀 구성이 바뀌며 김상조 위원장이 진보진영 시민단체를 비판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재벌 총수가 만난 것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체질개선이 단기간에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약장수임에 틀림없다. 경제구조가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성장위주의 체질에서 분수효과를 기대하는 안정위주의 체질로 개선되려면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해야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더라도 경제성장률에 구애받지 말고 경제구조의 체질개선을 우선해야한다. 문재인정부 경제정책팀은 두 번의 경제개혁 실패를 곱씹어야한다. 그리고 개혁적 진보경제학자들은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경제개혁실패의 결과인 격차사회 극복을 위해 줄기차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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