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군기무사령부의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 촛불집회 정국 당시 작성·보고된 모든 문건을 즉시 청와대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국가 안위와 관련한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에서 나온 조치다. 다만 국방부는 지난 4월말 이미 해당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히고 있어, 그로부터 2~3달 후에 대통령이 다시 이런 지시까지 내리게 된 배경을 두고 청와대와 국방부 간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오전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국방부·기무사와 각 부대 사이에 오고 간 모든 문서와 보고를 대통령에게 즉시 제출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계엄령 문건에 대한 수사는 국방부 특별수사단에서 엄정하게 하겠지만, 이와 별도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계엄령 문건이 실행까지 준비되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지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라며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사건 실체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통령 지시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방부는 "송영무 장관은 3월 16일 기무사령관으로부터 본 문건(계엄령 검토 문건)을 보고받았다"면서 당시 송 장관은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정무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며 문건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송 장관이 이같은 판단을 내린 근거로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적 개최 분위기를 유지하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우호적인 상황 조성이 중요하다고 봤다"는 점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건 공개시 쟁점화될 가능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송 장관은 이런 판단과 함께 문건의 존재에 대해 다음달인 4월 말에 청와대 참모진과 논의를 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국방부는 "송 장관은 4월 30일 기무사 개혁 방안을 놓고 청와대 참모진과 논의를 가졌다"며 "당시 논의 과정에서 장관은 과거 정부 시절 기무사의 정치개입 사례 중 하나로 '촛불집회 관련 계엄을 검토한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히 언급했으나, 국방부의 비공개 방침에 따라 청와대에 당해 문건을 전달하지 않아 이 문건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청와대의 설명은 달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4월 30일 회의에 참여한 '청와대 참모'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이라고 밝히면서도 "국방부가 발표했듯, (당시 회의에서는) 청와대에 원본 문서(계엄령 검토 문서)를 배포하지 않았고, 주된 회의 내용은 기무사 개혁 관련 내용이었다. 그래서 회의 석상에서 계엄령 문건 관련 질의나 토의는 일체 없었다"고 언급했다. "참석자들이 그 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국방부가) '계엄 검토 문건의 존재와 내용을 간단히 언급했다'고 하는데, 송 장관은 '이 문건에 대해 (자신이 청와대에 이미) 설명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당시 참석한 청와대 참모진으로서는 장관이 생각한 만큼 그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때문에 (지난 11일 김의겸 대변인이) '두부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회색지대 같은 부분이 있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송 장관은 나름대로 이미 계엄령 문건에 대해 청와대에 보고를 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청와대로서는 그런 보고를 받았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문건을 보고 경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이 문건을 직접 본 시점과 관련해 "문건이 청와대에 보고된 것은 6월 28일"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문건을 언론에 공개한 시점(7월 5일)으로부터 불과 1주일 전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송 장관이 문건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판단, 그 이후 4월 30일 회의 당시 송 장관이 청와대 참모진에 한 보고의 형식이나 내용을 보면 현재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국가 안위 관련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것과 무게감이 다르다. 당시 송 장관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딱히 부인하지 않고 "그 문제는 언론인들이 판단하라"고만 했다.
다만 청와대는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2016년 겨울 촛불집회 정국 당시 작성·보고된 문건을 제출하라는 것일 뿐, 올해 들어 이 문건이 발견되고 기무사령관이 송 장관에게 이를 보고한 시점 이후의 과정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송 장관과 청와대의 '미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질책성 조치는 아니라는 의미다. 청와대 관계자는 '송 장관의 문건 비공개 판단에 대한 조사라는 의미도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촛불시위 당시 문건 생산·보고나 지시는 특수단이 수사해야 할 범죄행위이고, (기무사령관의) 3월 16일자 보고나 그에 대한 송 장관의 판단 등은 행정적 절차 관련 문제다. 영역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미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수사에 착수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별도의 사실관계 파악을 지시한 배경이 뭔지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대통령이 제출을 지시한 문건들은 그 자체로 특수단의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대령급 법무장교가 단장인 특수단이 기무사 등으로부터 자료를 확보하는 데 애로가 있을 거라고 보고 외곽에서 지원 사격에 나선 것인지, 특수단의 수사 역량이나 의지에 대해 청와대가 미심쩍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추측이 무성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파악하고자 하는 내용과 특수단 수사는 별개로 독립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특수단의 수사 자율성·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최저임금 논란 등 경제 현안이 대통령 국정지지율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적폐 청산' 이슈를 다시 환기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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