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8350원으로 결정한 것과 관련, 정치권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8350원이 너무 높다며 최임위를 다시 열어 더 낮은 수준으로 재심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과, 여당 내 일부 정치인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상 폭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은 여론 흐름을 관망하는 듯 보인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일요일인 15일 일제히 당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최저임금 재심의'를 주장하고 나섰다. 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2년 사이에 최저임금이 무려 29.1%나 올랐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2020년까지 1만 원' 대통령 공약에 무리하게 맞춘 결과"라며 "반(反)시장적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하고 대통령 공약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수석대변인은 "직원보다 돈을 적게 버는 고용주가 적지 않다"거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당은 최저임금위가 재심의를 통해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3자 합의로 적정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도출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신용현 수석대변인도 "사용자 위원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위기와 절박함을 외면하고 두 자릿수 인상을 밀어붙였다"며 "부작용에 대한 대비도 없는 무책임한 최저임금 급격 인상으로 우리 경제를 망가뜨리고 자영업자와 소상공민들이 도저히 버티지 못할 지경까지 몰고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수석대변인 역시 "바른미래당은 최저임금법 제8조 3항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이 최저임금위에 2019년 최저임금안 재심의를 요청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히며 "재심의에서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3자가 모두 출석한 가운데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내년도 최저임금액이 결정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이같은 입장은 노동계 및 시민사회와는 온도차가 크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전날 논평을 내어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달성하려면 2019년 최저임금은 시급 8670원가량이 돼야 했는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사용자 단체, 보수언론과 한국당 등은 2018년 최저임금이 적용된 이래 지속적으로 최저임금을 공격하기 바빴다"며 "최저임금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며 노동자와 영세사업자 간 반목을 조장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저임금·장시간 노동구조를 바꾸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하는 한편 원하청 간, 프랜차이즈 업체와 가맹점주 간의 불공정한 거래 구조나 영세상인이 겪고 있는 임대료와 카드수수료 문제 등 구조적 어려움을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진영 "정부가 재벌과 보수언론의 거짓말에 동조"
진보정당의 반응은 한국당 등과 정반대였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이날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약속 파기에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한국당을 제외하고 모든 정당이 동의했던 '2020년 1만 원 달성' 꿈이 사실상 어렵게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특히 "상여금과 복지비까지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시킨 최근의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작년에 결정한 16.3% 인상률은 사실상 줄어들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에 의하면 적게는 2.74%, 많게는 7.7% 삭감 피해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하며 "노동연구원이 최저임금위에 공식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내년(2019년) 최저임금 10%를 인상할 경우 실질 인상률은 2.2%에 불과한 것으로 예상됐다"고 꼬집었다.
정의당은 "따라서 (최임위에서) 결정된 '10.9% 인상'은 실질적으로는 3%도 못 되는 사상 최악의 인상률"이라며 "그것을 몰랐을 리 없는 정부가 노동자 측에서 제출한 '15.27% 인상'안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소득주도성장과 양극화 해소라는 국정운영의 큰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애초에, 영세 상공인의 어려움은 상가 임대기간 연장과 임대료 인하, 하청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원청) 갑질 근절, 프랜차이즈 본점의 과도한 로열티 인하, 카드수수료 인하 등 영세 상공인 보호대책을 통해 해결해야 마땅한 일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 협상 과정에 영세상공인 보호대책을 세우라고 난리법석을 떠는 재벌 대기업과 언론에 정부와 여당이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다만 정의당은 한국당 등과는 달리 최임위 재심의를 요청하기보다는 "오늘의 실망스러운 결정을 보완하고, 최근의 산입범위 확장에 따라 예상되는 저임금 노동자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에 산입된 임금의 통상임금 인정,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등 저임금 노동자 보호 대책 마련과 실현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8.25 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광온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최저임금은 무죄다. '갑질경제'가 유죄"라며 "나의 가족이 최저임금을 받는 대상이라면 지금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 비판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살인적인 임대료, 초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프렌차이즈 불공정 계약 등 '갑질경제'를 해결해야 우리 경제가 상생할 수 있다"고 했다.
청와대 '노 코멘트', 민주당 "양자 모두 조금씩 양보"
다만 여당은 공식적으로는 사용자 측과 노동자 측에 모두 유감을 표하는 등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동결을 주장하는 사용자 측과 15% 이상의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 측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솔로몬의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사회적 대타협기구인 최저임금위 결정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갈등도 봉합하지 못한 채 반목과 대립만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양자를 모두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양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합의는 바꿔 말하면 양자가 조금씩 양보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라는 반증"이라고 주장하며 "각자도생의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잘사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어려운 결정에 사용자도 노동자도 마음을 내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 대변인은 다만 야당의 공세에 대해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사람다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저한도의 임금"이라며 "사회에서 가장 최소한의 생활조건에서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들의 생존권을 박탈한다는 주장은 서글프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이날 최저임금 관련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최저임금 관련 정부의 입장은 기획재정부 및 고용노동부에서 나갈 것이라며 "청와대가 따로 입장을 낼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내더라도 오늘은 아니다"라고 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정부·여당을 향해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말할 것이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거래, 재벌 대기업과 가맹본사 등의 과도한 성과 독점, 임대료 인상 억제와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 개선 등에 대한 개혁 조치를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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