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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의 말콤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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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의 말콤X

[기자의 눈] 쉬운 일과 어려운 일

기자 :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콤X : 응당 일어날 일(chickens coming home to roost)이었다. (1963.12.1.)

최근 혜화역 여성시위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들과 관련, 말콤X가 존 F. 케네디 암살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고 '잘 죽었다'는 취지로 이렇게 답한 일이 겹쳐 보인다. (그 반향이 어찌나 컸던지, 결국 말콤X는 자신이 몸담았던 흑인-이슬람-민족주의 운동 단체로부터도 사실상 축출당한다.)

말콤X는 생전 소수 지지자들로부터는 열광적 지지를 받았지만, 미국 주류는 물론 흑인 다수로부터도 경원시됐다. 그의 사망으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지금, 흑인과 백인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거나, 모든 백인은 악마일 뿐이고 따라서 흑인들은 백인에 대해 비타협적 투쟁을 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무력 투쟁을 동원하자, '백인 종교'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에 귀의하자, 흑인들만의 나라를 세우자(분리주의)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말콤X는 여전히 인종차별에 맞선 기표로 살아남아 있다. 20세기 중반,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인종차별이 극심했던(LA '흑인 폭동'이 불과 1992년이었다) 미국의 사회상을 생각해보면 그의 극단주의적인 주장이 '결과적으로' 인종차별 극복에 기여한 면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반대 논리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사후 5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논쟁적인 인물이다.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콜슨 화이트헤드. 은행나무 펴냄)의 책장마다에는 피냄새가 너무도 선연하다. (명작임에도,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이어서 도저히 재독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들의 역사적 고통 앞에서 '흑인 우월주의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마틴 루터 킹도 목사인데 이슬람교만이 흑인을 위한 종교라니 미국의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거냐', '모든 폭력은 나쁘다. 고로 흑인의 폭력도 불의다', '기독교와 JFK를 적대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 달성에 유리한 선택이 아니다' 등의 비판과 훈수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공의 안녕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행위에는 엄정 대응하되, 건설적 논쟁과 비판의 방향은 '차별받는 이들'이 아니라 '차별'을 향해야 한다.

지금 차별받고 고통받는 이들이 뭔가를 주장할 때, 그들의 주장에 담긴 부당함과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 쉽다. 어려운 것은 차별과 고통을 없애는 일이다. 말콤X와 흑표당(블랙팬서) 등이 내세웠던 과격하고 부분적으로 잘못된 주장의 '멸종'은 KKK와 FBI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의 당선에 의해 이뤄졌다. 말콤X의 과격성은 물론, 노년의 마틴 루터 킹이 펼친 사회주의적 주장 역시 이제는 미국 시민사회 내에서 거의 희석됐다. 그들이 던진 핵심적 질문 '인종차별 철폐'가 대중화되고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하면서다. 1863년 링컨의 노예제 폐지 선언 이후 150여 년이 흐른 후다. (물론 아직도 미진한 면이 없지는 않다.)

현재의 미국인들은 말콤X가 했던 과격한 주장을 그대로 일일이 기억하지는 않고, 단지 그를 인종차별에 분노했던 흑인의 상징 정도로 받아들인다. FBI 국장이 공개적으로 '국가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라며 테러단체 취급을 했던 '블랙팬서'는 이제 마블 히어로물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다. '블랙팬서'란 말을 듣고 무얼 먼저 떠올리느냐는 아마도 미국에서 '아재'와 젊은이를 가르는 지표일 게다.

오늘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뒤, 한국에서 '워마드'가 바로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꿈을 나는 꾼다(I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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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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