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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성폭력 제거'로 제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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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성폭력 제거'로 제거되지 않는다

[정희준의 어퍼컷] 폭력적 한국 문화에 조종을

현재 한국엔 7만 명 가량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중국인 남성 유학생들은 한국 여성과의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여성 유학생들은 한국 남성과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유를 물었다. '문화적 차이'란다. 문화적 차이가 국가 간 다를 수는 있지만 어떻게 남녀 간 그렇게 다를 수 있냐며 그 이유를 다시 물었다. 한국의 남성들은 가사를 돌보지 않고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란다. 반면 중국 남성들은 한국 남성들보다 훨씬 가사에 충실하다고 한다. 각기 다른 세 명의 중국 여성 유학생에게 물어본 결과다.

1990년대 미국 유학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똑 같았다. 한·중·일 세 나라의 유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국 가정에서의 가사 분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론은 한국 남성이 가장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으며 제일 부엌에 안 들어가는 것도 당연히 한국 남성이었다.

이는 우리가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피상적 이미지(?)와 꽤 다르다. 우리는 흔히 일본의 여성이 남성에게 매우 순종적이라 알고 있다. 또 예를 중시하는 유교의 발상지 중국의 남성들이 더 가부장적일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의 남성이 가장 권위적이다. 그래서인가. 한국 여성 취업률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낮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폭력에 대한 저항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다"는 이례적 표현까지 쓰며 사회 전반 깊숙이 자리 잡은 성차별과 성폭력을 근절할 것을 주문했다. 문제 해결은 안 되고 오히려 성별 간 갈등이나 혐오감만 더 커질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한 것은 "성평등의 문제를 여성가족부의 의무로 여기지 말고 각 부처의 행정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 부처가 책임져야 하는 고유의 업무로 인식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정확히 본질을 짚었다. 이 문제는 여성(가족부)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은 바로 폭력이다.

미투운동은 남성 폭력에 대한 반발이고 저항이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당하고 살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또 이는 동시에 다면적이다. 미투운동이 남성에 대한 여성의 반격이라면, 중고등학생 시절은 물론 초등학생 때 자신을 성추행한 교사를 고발하고, 여고생들이 교내에서 집단으로 교사들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스쿨미투는 성인에 대한 청소년들의 저항의 성격도 갖고 있다.

이렇듯 미투운동은 성과 세대를 가로지를 뿐 아니라 공간과 제도를 넘나든다. 성인 여성의 직장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의 문제인 것이다. 흔히 한국사회 폭력의 발상지로 군대를 꼽는데 사실 그 기초공사(?)는 태어나자마자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가정과 학교: 한국사회 폭력의 생산공장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폭력에 노출된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안 돼", "하지 마" 그리고 "나가 죽어"다. 남편은 아내를 때리고 맞은 아내는 아이를 때리는데 그 아이는 아버지에게도 얻어맞아야 한다.

남자 아이는 학교를 거치고 군대에 머물며 폭력을 배우게 된다. 반면 여자 아이는 학교에서 교사로부터의 성폭력에 침묵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 매개는 교사의 권력도 있지만 교사들의 외면도 있고 또 생활기록부에 적힐지도 모를 글자 몇 줄이 되기도 한다.

결국 여성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쉽게 폭력에 노출되는 집단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치면 거칠수록 선배에게, 남자친구에게, 남편에게, 직장 상사에게, 길 가던 모르는 사람에게 얻어터지고 강간을 당해도 평생의 비밀로 간직하고 그 고통을 평생 이고 가야하는 존재로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성폭력이 성인여성이나 여성가족부만의 일이 아닌 이유는 이 문제가 직장 뿐 아니라 가정, 학교, 군대, 나아가 우리 일상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성폭력 제거'로 제거되지 않는다

성폭력에 대해 여성가족부만이 아닌 모든 부처가 대응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20% 부족하다. 성폭력은 성폭력 근절에 나선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성들의 성폭력은 그들의 '성폭력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의 '폭력성'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폭력'에 저항하고 반격해야 한다. 성폭력도 결국 모든 폭력, 즉 일상화된 폭력의 결과물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폭력이 계속되고 있는데 성폭력만 사라질 수는 없다. 어떻게 가정폭력, 유치원폭력, 학교폭력을 방치하고 성폭력만, 예리하게, 외과수술적으로, 선별적으로 감소할 수 있나. 국방부, 행정안전부 뿐 아니라 최우선적으로 교육부가 폭력 근절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의 기득권과 권력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강고화된 이 사회의 폭력성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일상적 폭력이 횡행하고 이를 묵인하는 한 사회적 강자인 남성이 그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도 "(집안 시끄럽게 만든) 내 잘못이지" 하며 가슴을 쳤던 할머니, 어머니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미투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울러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맛이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며 껄껄 웃는 남성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폭력'에 반격을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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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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