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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라는 환상!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책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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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라는 환상!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책임'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books] 정희진의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내가 소통할 수 있을까? 여성학자 정희진은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다.

"'대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 '언어 사용은 인간만의 특성'.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소통에 관한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말에는 본디 폭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20년전 만성질환을 앓게 되면서 소통 불가능성을 체감하게 됐다. 드라마 <다모>(2003)의 "아프냐...나도 아프다" 대사는 그야말로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현실에선 "넌 왜 맨날 아프냐?"는 면박이 우리의 일상이다.

그가 대화의 폭력성, 소통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소통을 갈망하고 자기 삶을 끊임없이 해명해야 하는 건 대체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페미니스트 시인인 오드리 로드의 "아버지의 도구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한다. 인간은 언어 속에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언어는 강자의 것이며, 지배의 언어로는 지배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의 길을 내야 한다는 것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들이다.

그가 이처럼 '소통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 목적이다. 우선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려고 애써야만 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소통의 실패를 나의 성격이나 태도 문제로 돌리지 말라"는 위안을 주기 위해서다. 완벽한 소통이라는 환상을 버릴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해 소진되던 에너지를 거두어 '나를 돌보는 소통'과 '나의 언어를 세우는 일'에 쏟을 수 있게 된다.

부당한 질문, 폭력적 대화에 대처하는 6가지 방법

그는 사회적 약자의 정의 중 하나는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공무원 대상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면서 경험한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한 남성 공무원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선생님은 성(性)을 연구하시니까 남편하고 잠자리가 끝내주시겠어요!"

전형적인 성희롱이자 여성 강사에 대한 공격이다. 여성 청중이 남성 강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는 이런 부당한 질문, 폭력적 대화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소통법으로 6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위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남편하고 안 자는데요? 어머니랑 자는데요? 간병하느라고요."

그 순간, 질문자 남성의 기세를 꺾였고, 강의실의 분위기는 역전됐다고 저자는 회고했다. 상대의 성급한 상상과 고정관념을 뒤집는 솔직한 말하기는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또 과감한 침묵과 무응답.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상처와 위협을 계산해 낸 적극적인 저항의 언어다. 무응답 역시 무례에 대처하는 능동적인 수단이 된다.

넷째, 중간 지점을 찾는 협상적 말하기. 서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여기까지 합시다"라는 심리적 저지선을 설정해 소모전을 방지한다.

다섯째, 타인을 설득하지 않기. 타인을 설득하겠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상대를 100% 변화시키겠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섯째, 대화 종료의 권리 행사 하기. 대화를 멈추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나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주권 행위다.

'표현의 자유'에서 '표현의 책임'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더 나은 소통

저자가 '소통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대의 변화도 한몫을 한다. 소셜 미디어 등 매체의 발달로 모두가 각자의 진실을 들이대며 각자의 주장을 전시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지고, 악의와 혐오 행위가 더이상 창피하지 않는, 포스트트루스(post-truth), 탈진신의 시대라고 저자는 규정한다.

악의와 혐오가 또 하나의 의견이나 입장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지는 탈진실의 시대이기 때문에 저자는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여겨지던 개념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에 비해 약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비판하고 말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었지만 오늘날 '표현의 자유'는 역전된 방식으로 혐오 표현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표현의 자유'보다 자신의 말의 무게를 감당하는 '표현의 책임'이 더 강조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말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요구한다. 저자는 투표라는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기술적 수단일 뿐 민주주의 그 자체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언어의 도단을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서로의 다름으로 인한 인식과 말의 차이를 힘으로 깎아 누르지 않는 것, 이런 태도들이 켜켜이 쌓일 때 민주주의를 위한 더 나은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정희진 지음, 창비 펴냄) . 여성학·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 <아주 친밀한 폭력>,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전 5권) 등 다수의 책을 썼다. 3년만의 신작인 이 책은 그가 처음으로 강의에 기반해 쓴 책이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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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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