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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월성 핵발전소 마을, 4000일 상여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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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월성 핵발전소 마을, 4000일 상여 행렬

[월성원전 이주농성 12년의 질문] ① 들리지 않는다고, 듣지 않는다고 목소리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2014년 8월 25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이 월성 핵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로부터 안전하게 이주할 권리를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주민들이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는 때, 환경운동연합이 핵발전소의 비용을 떠안아 온 지역의 목소리를 기고한다.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핵발전소 옆에 작은 마을이 있다. 어느 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건강에 이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 핵분열 과정에서 생기는 방사성 물질이 주민 40명 전원의 몸에서 검출됐다. 자기도 모르는 새 피폭 중이었던 거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가 떠오르는 이 이야기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사람들이 현재도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나아리 주민들은 정부와 한수원에 2014년 8월 25일부터 피폭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이주할 권리를 꾸준히 외쳤다. 그러나 12년째, "제한구역 밖"이라는 이유로 이주 요구는 번번이 거부됐다. 나아리는 '원자력안전법'상 제한구역(914m)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주대책위원회 자체 조사에 따르면, 제한구역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가구까지 겨우 수십 미터다. 백 미터도 안 되는 이 짧은 거리가 나아리 주민들을 이주대책 대상에서도, 온전한 안전지대에서도 밀어내고 있다.

어떤 목소리를 기억한다.

유년 시절, 온 동네가 나의 놀이터였다. 잡초 무성한 언덕길과 개똥 많은 좁은 골목길을 마당처럼 쏘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로 통하는 지름길 옆엔 작은 숲도 있었는데, 거기엔 '털보아저씨'가 살았다. 남자의 얼굴을 뒤덮은 턱수염 때문에 아이끼리 만든 별명이었다. 그는 아침마다 움막 같은 집에서 나와 빨랫줄에 옷가지를 널어 놓았다. 가끔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할머니가 그 곁에서 볕을 쬐었다. 두 사람은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았지만 나 같은 아이들을 보면 늘 손을 흔들어 줬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강북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우리 동네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다. 일대를 싹 밀고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고 했다. 처음엔 집값이 오른다고 다들 좋아했지만, 본격적인 조합원 분양이 시작되자 집마다 희비가 교차했다. 턱없이 높은 아파트 분양 중도금 탓이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은 어떻게든 목돈을 마련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분양권을 양도하고 동네를 떠났다. 애초에 분양권이 없는 세입자의 처지는 훨씬 더 가혹했다. 갈 데 없는 몇몇은 퇴거 통보를 무시하고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강제집행 앞에 백기를 흔들었다. 이주가 끝난 자리에는 포크레인이 들어섰다.

▲월성 핵발전소 1~4호기. ⓒ프레시안

가장 오래 버틴 건 숲에 살던 털보아저씨였다. 용역 깡패가 움막에 불을 질렀다더라, 칼부림이 났다더라 하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우리 집 이사가 임박했던 어느 날, 혼자 그 숲에 가 본 적이 있다. 털보아저씨는 어디 가고 할머니 홀로 무너진 움막을 향해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미동 없는 뒷모습이 비석 같았다. 덜컥 겁이 나서 냅다 도망치는데,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왜…." 처음 들어본 할머니의 목소리는 사무치게 슬펐다.

그 목소리는 한참 동안 내 기억 저편에 숨어 있었다가 불쑥, 먼 북소리처럼 다시 찾아왔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관을 끄는 나아리 주민들의 상여 행진을 보았을 때였다. 기억 속 할머니가 던진, '도대체 이 나라는 왜?' 그 말 뒤에 생략된 말을 나아리 주민들이 이어 질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느냐고. 잘 살던 사람을 못 살게 하는 나라가 어찌 나라냐고.

1983년, 월성 핵발전소가 처음 지어졌을 때 나아리 주민들은 반가웠다. 전기를 만드는 공장이니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 했다. 탄소배출도 없는 친환경이라고 하니 깨끗하다고 했다. 지진이 나도 안전하다고만 했다. 주민들은 정부와 한수원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시간이 흘렀다. 왜인지 마을 사람들 하나둘 아프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었다. 월성 핵발전소가 생긴 것뿐. 주민들 마음에 설마 하는 불길함이 싹텄다.

민간 단체에서 주민들 소변검사를 진행했다.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아야 할 삼중수소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주민 전원의 몸에서 검출됐다. 핵분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삼중수소는 암 발생 확률을 높이는 방사성 물질이다. 출처는 월성 핵발전소가 분명했다. 나아리 주민들의 건강과 월성 핵발전소의 관련성을 입증하기 충분한 결과였다. 하지만 정부도 한수원도 나아리 주민들의 사정을 나 몰라라 했다. 한수원은 검출된 삼중수소가 '기준치의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기준치 이하라는 말이, 매일 그 공기를 마시고 그 물을 먹는 사람들에게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2014년 9월 월성 원전 홍보관 앞에서 농성하는 주민들. ⓒ프레시안

결국 그냥 살거나 알아서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떠나려고 해도 돈이 필요했다. 평생 모은 재산이 나아리에 있는 집 한 채뿐인데, 이 집을 사겠단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었다. 주민들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나아리가 '원자력안전법'상 제한구역(914미터)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주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아리 주민들은 계속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다. 주민들은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방사성 피폭으로부터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이주하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자신들의 상여를 끌며 행진했다. 그 첫날이 2014년 8월 25일이었다.

사람들은 농성장 화이트보드에 농성 첫날을 1로, 날이 바뀔 때마다 숫자를 올려 적었다. 100일이 1000일이 되고, 1000일은 4000일을 넘어갔다. 그사이 나아리 주민들은 자신들과 연대하는 이들을 만났다. 핵발전소 문제에 두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마을의 일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나아리 사람들의 바람은 딱 하나였다. 피폭되지 않는 안전한 곳에 이주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대한민국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제35조 환경권에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쓰여 있다. 나아리 주민들은 그 한 문장을 들고 이제껏 견뎠다. 1년도, 5년도 아니고 12년 동안이나. 그리고 그 여정은 끝난 게 아니다. 여전히 지속되는 누군가의 구체적인 삶이다.

"대책 없는 삶, 대안 없는 삶입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 살고 싶어서 여기에 사는 게 아닙니다." 나아리 주민 황분희님이 천막 농성장에 찾아온 취재팀에게 한 말이다. 나는 정말로 묻고 싶다. 왜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왜 들리지 않는가? 왜 듣지 않는가. 도대체 왜, 이놈의 나라는!

12년, 시간은 충분했다. 이제는 응답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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