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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미식과 지역 이야기] ⑧밤이 열리는 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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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의 미식과 지역 이야기] ⑧밤이 열리는 미식

야시장과 야간경제, 그 가능성과 조건

지난 글까지 우리는 주로 낮의 공간인 골목과 시장, 문화재 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여행지의 진짜 매력이 해가 진 뒤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대만의 야시장, 방콕의 밤거리, 그리고 우리 곁의 야시장까지 사람들은 '밤에 먹으러' 모여든다. 밤은 단지 낮의 연장이 아니라 지역이 새로 열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제 무대다. 오늘은 미식이 여는 '밤의 시간', 곧 야시장과 야간경제의 가능성과 그것을 지역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조건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밤은 왜 '두 번째 무대'인가

먼저 왜 밤이 중요한지부터 짚자. 관광에서 밤은 오랫동안 '자는 시간'이었다. 낮에 관광하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동선이었다. 그러나 밤에 즐길 거리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행자가 밤까지 머무르면 자연스럽게 하룻밤을 더 자게 되고 저녁 식사와 야식, 술과 군것질, 공연과 쇼핑으로 지출이 이어진다. 요컨대 밤은 여행자의 체류 시간과 지출을 늘리는 '두 번째 무대'다.

이 무대의 힘은 세계 여러 도시가 이미 증명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대만 타이베이의 야시장, 방콕의 야시장과 밤거리는 그 자체가 도시를 찾는 이유가 된다. 이들 야시장의 공통점은 그 중심에 '먹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한 손에 들고 먹는 길거리 음식,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야식이 밤의 미식을 이끈다. 밤의 경제는 곧 밤의 미식경제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 가능성에 주목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야간관광 특화도시'를 지정하고 지역의 밤을 관광 자원으로 키우는 정책을 펴 오고 있다. 통영이 2022년 첫 특화도시로 지정된 이래 여러 도시가 저마다의 밤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밤의 미식이 지역에 특별한 이유

야간 미식경제가 지역에 특별히 매력적인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공간을 두 번 쓴다. 낮에는 조용하던 시장이나 거리가 밤에 다시 열리면 같은 공간이 하루에 두 번 경제활동을 만들어낸다. 새로 큰 시설을 짓지 않고도 기존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실제로 침체된 원도심의 낡은 시장이 야시장을 계기로 다시 사람을 불러 모은 사례가 여럿 있다.

둘째, 진입 장벽이 낮다. 작은 매대 하나로도 시작할 수 있어 청년이나 소규모 창업자, 지역 상인에게 부담이 적은 도전의 장이 된다.

셋째, 특유의 정서가 있다. 밤이라는 시간, 조명이 밝힌 거리, 김이 오르는 음식, 사람들의 활기가 어우러진 분위기는 낮에는 얻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을 만든다. 이 '밤의 분위기' 자체가 강력한 관광 콘텐츠다.

다만, 어느 야시장을 가도 똑같다 - 획일화라는 함정

야시장을 연다고 곧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난 야시장 가운데 상당수가 같은 벽에 부딪힌다. 바로 '어디를 가도 똑같다'는 문제다.

한번 떠올려 보자. 서울의 야시장이든 지방 소도시의 야시장이든 매대에 늘어선 메뉴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회오리감자, 닭꼬치, 스테이크 컵밥, 소떡소떡, 피자, 닭강정, 큐브 스테이크, 소세지 등등. 마치 같은 납품업체가 전국의 야시장을 채운 것처럼 어느 도시에서 찍은 사진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하다. 이렇게 되면 그 도시의 야시장에 굳이 갈 이유가 사라진다. 우리 동네에서도 옆 도시에서도 똑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위해 먼 길을 나설 사람은 없다.

이것은 앞선 글들에서 되풀이한 '그곳에서만'의 원리가 무너진 결과다. 야시장이 지역의 관광 자산이 되려면 그 지역의 식재료와 향토음식, 그 도시만의 야식 문화가 매대를 채워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야시장은 유행하는 아이템을 그대로 들여와 손쉽게 매출을 올리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개성 있는 지역 음식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잘 팔리는 프랜차이즈형 길거리 음식을 들이는 편이 상인에게도 운영자에게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편리함을 좇는 사이 야시장은 어디서나 본 듯한 먹자골목의 복제가 되어 버린다. 그 지역만의 색이 사라진 야시장은 문을 열어도 오래 사람을 붙들지 못한다. 결국 야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질문은 화려한 조명이나 규모가 아니라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이다.

▲금·토요일에 열리는 대전 중앙시장 야시장의 한 좌판. 바다가 없는 내륙 도시 대전에서도 시장 골목의 좌판에는 해산물도 정겹게 오른다. 다만 '그곳에서만'의 밤이 되려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구성을 넘어 대전다운 식재료와 이야기가 한 접시 더 놓여야 한다. ⓒ프레시안(문상윤)

작은 접시에 비싼 값 - '바가지'라는 불신

획일화만큼이나 야시장의 발목을 잡는 것이 또 있다. 합리적이지 못한 음식 가격, 이른바 '바가지'다.

야시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손바닥만 한 종이컵에 담긴 음식이 만 원에 가깝고 몇 점 되지 않는 꼬치가 시중 가격의 곱절을 받는다. 어묵 몇 개, 감자 하나에 붙은 값이 매장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 축제나 야시장이라는 이유로 평소보다 값을 올려 받는 일이 반복되면 방문객의 마음속에는 '여기는 바가지'라는 인상이 새겨진다. 그리고 그 인상은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SNS와 후기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 애써 알린 야시장의 이름값을 오히려 갉아먹는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비싸다'가 아니라 '값과 가치가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방문객은 특별한 경험에 대해서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러나 양도 적고 질도 평범한 음식에 축제라는 이유만으로 값이 얹히면 지불한 돈만큼의 가치를 얻지 못했다는 배신감이 남는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소비자가 화를 내는 진짜 이유는 '비싸서'가 아니라 '속았다고 느껴서'인 경우가 많다. 한 번 '바가지 야시장'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것을 씻어내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든다. 반짝 성수기에 값을 올려 눈앞의 이익을 챙기려다 다시 찾을 손님을 잃는 셈이다.

그래서 가격의 신뢰는 야시장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정당한 값과 정직한 양, 그리고 그 값에 걸맞은 품질. 이 기본이 지켜질 때 방문객은 안심하고 지갑을 열고 또 찾아온다. 일부 지역이 야시장 운영에서 '착한 가격'이나 표준 가격표를 앞세우는 것도 결국 가격의 신뢰가 밤의 경제를 오래 지탱하는 토대임을 알기 때문이다.

화려함 뒤의 현실 - 교통, 주차, 그리고 위생

메뉴의 획일화가 야시장의 '매력'에 관한 문제라면 그 못지않게 발목을 잡는 것은 '운영'에 관한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사람이 한꺼번에 그것도 밤에 몰리는 야시장은 낮의 관광지와는 또 다른 부담을 지역에 안긴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이 교통과 주차다. 야시장은 흔히 좁은 원도심 골목이나 전통시장 안에서 열리는데 이런 곳은 애초에 넓은 주차장을 갖추기 어렵다. 방문객이 몰리면 인근 도로가 순식간에 정체되고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차들이 골목과 주택가 앞에 뒤엉킨다. 이는 방문객에게는 '가기 힘든 곳'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주민에게는 '내 집 앞이 주차장이 됐다'는 불편을 안긴다. 대중교통이 일찍 끊기는 밤 시간대라 자가용 의존이 커지는 것도 야간관광 특유의 난제다. 밤에 사람을 부르려면 밤에 돌아갈 방법부터 함께 마련해야 한다.

위생은 더 까다롭다. 야외에서 임시 매대로 밤에 조리하는 야시장은 식품위생 관리가 특히 어렵다. 상온에 오래 둔 재료, 부족한 손 씻기 설비, 미흡한 냉장·보관은 여름철 식중독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앞선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듯 여름의 세균과 겨울의 노로바이러스는 계절을 가리지 않으며 한 번의 식중독 사고는 오래 쌓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여기에 수백 명이 한꺼번에 버리는 일회용기와 음식물 쓰레기, 기름과 오수(汚水)의 처리, 임시 전기·가스 설비의 화재 위험까지 더해진다. 실제로 위생과 안전 관리가 부실한 무허가 야시장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화제성만 좇아 급조된 야시장은 바로 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기본에서 무너지기 쉽다.

이 문제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 아무리 음식이 훌륭해도 가는 길이 막히고 주차가 불가능하며 위생이 미덥지 못하면 방문객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밤의 미식경제는 화려한 무대만이 아니라 그 무대를 떠받치는 교통·주차·위생·폐기물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반'이 함께 설계될 때 비로소 굴러간다.

밤을 둘러싼 또 하나의 문제 - 주민과의 공존

야간경제에는 낮에는 없던 특유의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그곳에 사는 주민의 밤이다.

밤에 사람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소음과 빛, 쓰레기가 따라온다. 관광객에게는 즐거운 밤이지만 그 곁에 사는 주민에게는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수 있다. 관광이 주민의 일상을 침해하는 이른바 '투어리스티피케이션(관광지화로 인한 주민 이탈)'의 문제가 밤에는 더 예민하게 불거진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리빙 헤리티지', 곧 주민의 삶이 살아 있어야 지역이 건강하다는 원리는 밤에도 유효하다. 주민을 몰아내는 밤은 결국 그 지역을 지속가능하지 않게 만든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낸 사례도 있다. 어느 지역은 야시장을 매일이 아니라 토요일 하루로 집중 운영하기로 했는데 이는 인근 주민의 야간 소음 민원을 줄이고 참여 상인의 본업 부담도 배려한 결정이었다. 매일 어정쩡하게 여느니 하루를 열더라도 밀도와 완성도를 높여 방문객과 주민 모두가 만족하는 모델을 택한 것이다. 밤의 경제는 주민과의 '공존의 시간표'를 함께 설계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

좋은 밤을 설계하는 조건

교통·주차·주민 공존 같은 문제는 도시 계획과 행정의 몫이 크다. 그런데 야시장의 가장 앞자리에 놓인 문제, 곧 획일화와 위생과 가격은 사실 '음식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음식을 공부해 온 사람으로서 흔한 처방과는 조금 다른 각도의 대안을 몇 가지 보태고 싶다.

첫째, 획일화를 푸는 열쇠는 '지역 식재료 팔레트'와 향토음식의 재해석에 있다. 그 지역의 농·수·축산물 몇 가지를 야시장의 공통 재료로 정해 두고 상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주하게 하면 어떨까? 재료라는 뿌리는 공유하되 조리는 제각각이니 지역색과 개성을 동시에 얻는다. 문제는 향토음식이 대개 국물이나 비빔 형태라 걸어 다니며 먹기 어렵다는 점인데 여기서 조리·가공의 지식이 힘을 발휘한다. 지역 국밥을 한입 크로켓이나 주먹밥으로 나물과 무침을 쌈말이로 탕 요리를 꼬치나 전(煎)의 형태로 재설계하면 향토의 맛을 '한 손에 드는 스트리트푸드'로 바꿀 수 있다. 지역 조리학과나 청년 요리사와 함께 '야시장 전용 레시피'를 개발해 공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유행 아이템을 들여오는 것보다 품은 더 들지만 그 품이 곧 '그곳에서만'의 차별성이 된다.

둘째, 위생은 '개별 매대'가 아니라 '공용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한다. 식중독의 핵심은 세균이 급격히 번식하는 위험 온도대(섭씨 5~60도)에 음식을 오래 두는 것인데 좁은 매대마다 냉장·세척 설비를 온전히 갖추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시장 차원에서 '공용 전처리 주방'을 두어 재료의 세척·소분·초벌 조리를 위생적으로 끝낸 반조리 상태로 각 매대에 공급하고 현장에서는 최종 가열만 하도록 하면 어떨까. 일종의 '밀키트형 야시장'인 셈인데 위생과 조리 속도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여기에 공용 냉장·냉동 스테이션, 매대마다 간이 온도계와 조리 타이머, 상설 손 씻기·장갑 교체 지점을 두고, HACCP의 원리를 야시장 규모에 맞게 줄인 간단한 위생 점검표를 운영하면 좋다. 위생을 상인 개개인의 양심에만 맡기지 않고 시스템으로 떠받치는 것이다.

셋째, 가격의 신뢰는 '중량 표시'와 '공동조달'로 만든다. 값만 정해 붙이는 것을 넘어 한 접시의 양(그람 수)을 함께 표시하면 '작은 접시에 비싼 값'이라는 불신이 크게 줄어든다. 나아가 상인들이 지역 식재료를 공동으로 구매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어 '착한 가격'이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가능해진다. 원가가 내려간 만큼 양을 늘리거나 값을 낮추면 가격의 신뢰가 곧 재방문으로 돌아온다.

넷째, 지역성과 지속가능성을 한 번에 잡는 재료가 가까이에 있다. 외관이 상품 기준에 못 미쳐 팔리지 못하는 '못난이 농산물'과 가공 부산물을 야시장 메뉴의 재료로 쓰는 것이다. 원가는 낮고 지역색은 살고 버려질 것을 되살린다는 이야기까지 얹힌다. 여기에 이동성과 저장성이 좋은 지역의 발효식품이나 전통주를 야시장 상품·페어링으로 엮으면 그 지역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밤의 미식이 완성된다.

다섯째, 이왕이면 '건강한 밤 음식'을 차별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야시장 음식은 짜고 단 쪽으로 쏠리기 쉬운데 지역의 발효장이나 제대로 우린 육수로 감칠맛을 살리면 소금을 덜 쓰고도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알레르기 유발 재료와 간단한 영양 정보를 표시하는 작은 배려까지 더해지면 '맛있으면서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야시장'이라는 인상이 오히려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이 제안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문제를 '규모'가 아니라 '음식 그 자체'에서 다시 본다는 것이다. 결국 밤의 미식경제는 지역에 주어진 매력적인 기회이지만, 저절로 열리는 무대는 아니다.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시스템으로 떠받친 위생, 양이 보이는 정직한 가격, 그리고 주민과의 공존이 함께 설계될 때 밤은 지역의 낮을 잇는 든든한 두 번째 경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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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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