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이는 한일회담의 문화재 반환 문제와 어떻게 이어져 있었을까?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가 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가 불법적이고 무효였다는 한국의 입장과 정반대이며 한일 양국 간에 역사인식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한일회담의 문화재 반환 교섭에서 당시 일본이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문화재 반환 문제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초기 한일회담 시기의 일본외교문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외무성의 문화재 반환 선례 조사
초기 한일회담 당시 일본 측의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로 '세습적 문화재에 대해서'라는 것이 있다. 이 자료는 1953년 2월에 외무성이 작성한 것으로 문화재 반환 선례를 조사한 '1. 선례', 문화재 반환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입장을 설명한 '2. 한국 측의 주장에 대해서', '3. 일본 측의 사정'로 구성되어 있다.
외무성은 '베르샤유 조약', '이탈리아 평화조약', '오스트리아 평화조약', '불가리아 평화조약', '인도네시아-네덜란드 평화조약' 다섯 가지를 예로 들면서 각각의 반출 방법, 반출 시기, 현소유자, 품목의 특정성, 피반출지역, 반환 방법을 정리했다.
먼저 '군사점령지'에서 분리된 지역에서 문화재가 반출되었을 때 반환을 청구하는 국가가 반출 경위를 입증할 책임은 없고 문화재를 '반환' 또는 '환부'받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점령국의 권력이 강력하고 ●●(판독 불가)했다는 점에서 문화재 반출의 불법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유지' 또는 '식민지'에서 분리된 지역에서 문화재가 반출되었을 때 반환을 청구한 국가가 반출 경위를 입증할 책임이 있고 문화재를 '이전'받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분리 지역에 수립되어 있던 권력이 일단 평화적"이었고, 따라서 문화재 "반출의 불법성이 추론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군사점령지'에서 분리된 지역의 국가는 문화재 반출의 불법성에 비춰 문화재를 '반환'받을 수 있고, '영유지'나 '식민지'에서 분리된 지역의 국가는 문화재 반출의 불법성이 없으므로 문화재를 '반환'이 아닌 '이전'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은 일본의 '평화적 영유지'
외무성은 상기 선례에 비춰 한국을 다음과 같이 '군사점령지'와 '평화적 영유'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삼한정벌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 등의 경우는 전시 점령의 예이며, 일한합병 이후의 사태는 평화적 영유의 예이다. 단 한국 측은 후자의 경우에 대해서도 병합조약 무효론을 통해 전시 점령의 예에 따라 주장한다고 생각된다. 또한 분로쿠의 역(文禄の役,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아마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일회담 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에 대해 일본이 조선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설명한 '선례'에 비춰보면 점령국의 문화재 반출은 불법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한국 측이 임진왜란 시기의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면 일본은 문화재를 반환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측이 당시의 문화재 반출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한국 측은 문화재 반환 기준 시기를 1905년으로 설정하고 이때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반출된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했기 때문에 임진왜란 당시 반출된 문화재는 논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칼럼 번외편 ② 참조).
한편 외무성은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평화적 영유' 지역으로 생각했다. 이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과정에 체결한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조약과 같은 조약은 물론이고 36년 동안 조선을 지배한 일도 합법·유효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측은 상기 자료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병합조약 무효론', 즉 일본의 조선 지배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일본의 문화재 반환 문제에 관한 입장
외무성은 위와 같은 문화재 반환 선례를 토대로 제1차 회담의 문화재 반환 교섭에서 한국 측이 주장한 내용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정리했다.
한국 측이 제1차 청구권위원회(1952년 2월 20일)에서 제출한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 협정 요강 한국측 제안'과 이에 대한 설명을 검토했을 때 한국 측이 마치 '군사점령지'에 해당하는 듯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 측이 "반출된 시기나 재산 취득의 형태는 묻지 않지만, 점령지로부터 가져간 재물을 연합국에 반환한 것처럼 그에 준해서" 문화재를 반환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이는 "점령지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며, 조선과 같이 평화적 영유의 경우에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합법적인 '평화적 영유'였기 때문에 한국 측이 '군사점령지'인 것처럼 문화재 반환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 측이 제1차 회담에서 문화재 반환을 주장한 일은 "부당하며, 이를 합리적인 것으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출 시기를 영유 시대(일제강점기: 필자 주)로 한정"하고 반출 경위에 대해서도 "한국 측이 입증한 후 품목을 특정해서 청구해야 한다"고 했다.
외무성은 이와 함께 '한국 측이 요청하는 광범위한 문화재 조사는 상당히 곤란하다', '가치가 있는 한국 관계 문화재는 오래전에 들어왔고 여러 번 소유자가 변경되었으며, 적어도 현소유자는 정당하게 매매했다', '해당 문화재는 한국보다 일본에 두는 것이 안전하다', '개인 소유 문화재를 사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는 일본 측의 입장을 정리했다.
이와 같은 견해를 바탕으로 외무성은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이상의 실정에 비추어 반환의 경우 실제적인 방법으로는 한국 측이 특정 품목에 대한 리스트를 제출하면 이를 받아서 조사한 다음에 혹시 청구가 타당하다면 반환한다(사유의 것은 사들일 수 있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또는 일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 일본 측이 적당하게 선택한 것에 대해서 권리가 아닌, 증여로 제공하는 것 중 어느 쪽으로 따르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제1차 회담 종료 이후 외무성이 정리한 이와 같은 문화재 반환 문제 관련 견해, 특히 '권리가 아닌 증여로 제공'한다는 논리는, '반환'이 아니라 '기증'으로서 문화재를 돌려주겠다는 일본 측 입장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번 칼럼에서는 초기 한일회담 당시 외무성이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인식과 그것이 문화재 반환 문제와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를 살펴봤다.
외무성은 일본에서 분리된 한국을 '군사점령지'가 아니라 '평화적 영유' 지역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한국 측이 마치 '군사점령지'에 해당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일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평화적 영유', 즉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무효인가, 유효인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인식은 달랐다.
이 문제는 기본관계문제 교섭에서 '구조약의 무효 확인 문제'로 논의되었는데, 이는 기본관계문제를 비롯하여 한일회담을 통틀어 '과거사 청산'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다. 한국 측은 '1910년 이전에 체결된 조약과 협정은 당시부터 무효였다', 일본 측은 '1910년 이전에 체결된 조약과 협정은 유효했으며, 한국 독립 후 무효가 되었다'라고 주장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이 문제는 결국 제7차 회담에서 한일기본조약의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로 타결되었다.
하지만 이 규정은 한일 양국이 모두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와 같은 규정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한일 양국은 '일제강점기는 불법적이고 무효였다', '일본의 조선 통치는 합법적이고 유효했다'라는 입장을 각각 견지하고 있는데, 이는 한일기본조약의 제3조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제강점기의 불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는 한일회담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문화재 반환 문제를 비롯하여 역사인식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꺼지지 않는 불씨'로 여전히 살아있다.
■ 참고문헌
한일회담 관련 일본외교문서
엄태봉, <한일 문화재 반환 문제는 왜 해결되지 못했는가?-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문제의 구조'>, 경인문화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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