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씨가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최근 건강이 악화돼 서울 한 요양병원에 머물던 이 씨는 지난 25일 숨졌고, 현재 서울 동대문의 한 병원에 안치돼 있다. 발인은 오는 27일이다.
이 씨는 1970~19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했고, 물고문·전기고문·관절뽑기 등 악랄한 가혹 수사를 자행하는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다.
1979년 남민전 사건,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학 간첩 조작 사건, 1986년 반제동맹 사건 수사 등에 이 씨는 관여했고, 당시 피의자들에게 고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1년 서울대 무림 사건 수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이 씨는 김근태 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1988년 12월 수배됐고, 이후 12년 간 도피 생활을 했다.
1999년 10월 자수한 이 씨는 2000년 9월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의 대법원 판결을 받은 뒤 수감됐다 2006년 출소했다. 그는 2024년에도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던 중 숨진 납북어부 유족에게 7억 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이 씨는 출소 뒤 종교 활동을 하며 과거를 반성한다고 했지만, 문제적 발언을 이어갔다. 201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고문 기술자라고 불리는 데 대한 심경을 묻자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며 "그런 의미에서 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답했다.
2012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는 "당시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며 "애국이 아니면 누가 열심히 목숨 내놓고 일했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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