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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가격 낮추면 문제 해결? 교복 제도 자체가 '인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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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가격 낮추면 문제 해결? 교복 제도 자체가 '인권 침해'

[청소년 인권을 말하다] 교복의 문제를 정말로 해결하려면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적 학교에 여러 불만이 많았지만, 불편함이 가장 많이 체감됐던 건 교복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교복을 입어 보는 순간부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모두 똑같은 옷을 강제로 입힌다는 이상한 풍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불편하기는 또 어찌나 불편하던지. 몸을 움직일 때 걸리적거리거나 피부가 쓸리는 건 물론이요, 동복, 하복, 춘추복이 나뉘어 있던 교복은 착용 시기도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줘서 종종 너무 얇게 또는 두껍게 느껴지곤 했다.

내가 교복이 너무나 싫다는 표를 내면, 학생들 다수는 교복을 원한다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의문이었다. 학생들은 틈만 나면 상의를 벗어 던지고 셔츠만 입고 다니곤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토요일엔 교복을 안 입어도 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날 자발적으로 교복을 입고 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설령 교복을 좋아하는 학생들이라고 해도 교복을 잘 갖춰 입었는지, 변형하진 않았는지, 명찰과 배지는 잘 달고 있는지 등을 단속당하고 이를 어겼다고 벌점을 받거나 체벌을 당하는 것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해결되지 않는 교복 문제

지난 2월,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물가 대책을 지시하면서 '최근 교복 구입비가 부모님들의 등골브레이커라고도 얘기한단다', '그렇게 비싸게 받는 게 온당한지, 문제가 있으면 어떤 대책을 세울지 검토해 달라', '어차피 대부분 교복을 무상 지급하는 상황, 업체들한테 돈을 대주는 게 아니라 교복 생산 자체를 협동조합 형태로 하는 것도 타당성이 있는지 검토해 달라' 등의 발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으로 재임할 때 '무상교복' 정책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자 관계부처는 교복 가격 안정화를 위해 가격 전수조사 및 불공정행위 엄정 대응, 비싸고 불편한 정장형 교복 전환 유도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교복 구입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나온, 나름대로 적극적인 정책들이다. 대통령과 교육부의 강한 의지에 언론들과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고, '정장 교복'이 사라지게 됐다는 호들갑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전에도 교복 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지원 정책이 시행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교복 가격이 너무 비싸다거나 업체들의 담합이 의심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이제는 교복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의 원인임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학생이 학교에 다니기 위해 특정 복장을 구해 입어야 한다는 것은 낭비이자 제약일 수밖에 없다. 수백 명의 학생이 특정 옷을 반드시 사야만 하는 구조 자체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기업들의 담합이나 상품 가격 인상을 쉽게 만든다.

교복을 입는다고 해서 그 외의 평상복이 불필요한 것도 아니니, 교복을 사서 관리하는 일 자체가 크든 작든 추가적 부담이다. 사실 가장 효율적인 것은 학생들이 제각각의 사정과 신체조건, 취향, 개성에 맞게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는 질이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다종다양한 옷들이 널려 있다.

교복 제도는 인권 침해의 문제

정부 논의의 가장 큰 한계는 친권자들의 경제적 부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실제로 교복을 입는 학생들의 권리나 삶의 질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교복 제도는 학생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습이다.

만약 지금껏 교복과 같은 제복이 존재하지 않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소속감'과 '분위기'를 위해 구성원들에게 모두 똑같은 제복을 입게 강제하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를 상상해 보면 쉽다. 학교가 학생에게 동일한 제복을 입히는 교복 제도는 군국주의 시대 전체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됐고, 교복 제도가 잔존해 있는 것은 학교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받아들이지 않은 역사적 현실을 보여 줄 따름이다.

학교에서 학생의 복장, 머리카락, 액세서리, 그 밖의 외모 등을 규제하고 단속하는 것은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개성실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자유를 제한하려면 안전 문제라거나 행사를 치르기 위한 것이라는 등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제한도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교복을 포함해 학교의 각종 용의 규제에는 그러한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며 대개 그 정도도 과하다. 결국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게 강요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인권 침해다.

복장의 문제는 건강 등 삶의 질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다. 똑같은 기온과 환경이어도 더위나 추위를 느끼는 정도, 쾌적하게 느낄지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고 체질이나 그날그날의 건강 상태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우리가 체온을 관리하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첫 번째 대처 방법은 옷이다. 획일적인 교복 제도는 날씨 대처와 건강 관리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며 학생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기후위기로 변동 폭이 커진 날씨 속에 이런 문제는 더욱 크게 체감되고 있다.

더구나 학생들은 여러 가지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문화와 출신국가 배경, 피부색이나 외모, 서로 다른 신체적 특징 등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교복 제도는 이런 다양성과도 맞지 않으며, 학생들의 자기 표현의 가능성도 위축시킨다. 오래전부터 교복과 두발 규제가 성별이분법적이고 성별고정관념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설령 교복을 성별 구분 없는 디자인으로 변경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의 적극적인 정체성 표현 및 탐구, 개성 추구를 막는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복장을 자유로이 선택하여 쾌적한 상태를 추구하고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기본권이자 삶의 질에 중요한 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은 그만

흔히 학생들도 상당수가 교복을 원하고 찬성한다거나, 교복이 편하다고 여기고 옷에서의 경제적 격차가 가려져서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학생들 중 얼마나 교복에 찬성하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복장의 자유는 개인에게 속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가령 어느 학교의 학생들 중 다수, 혹은 학교 구성원들 중 다수가 ‘우리 학교는 이제부터 모두 불교를 믿고 승복을 입는다’라는 데 찬성표를 던진다고 해서 그렇게 양심·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학칙을 시행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하는 사람은 학교가 지정한 옷을 입으면 되겠지만, 그들이 남에게 똑같은 옷을 입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복을 입고 싶지 않은 학생들은 아무리 소수이든 자신의 복장의 자유를 침해당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학교마다 알아서 교복 착용 여부나 관련 규정을 정하면 된다는 ‘학교 자율’의 논리도, 다수가 찬성한다는 다수결의 논리도 이 경우에 적합하지 않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싼 옷(소위 명품 같은)과 싼 옷의 격차로 인해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불평등을 인식할 수 있음을 교복 제도의 구실로 삼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논리다. 꼭 옷이 아니더라도 소지품, 삶의 모습, 사는 동네나 집에서부터 불평등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런 경제적 불평등이 모욕이나 차별로 이어지지 않게 함과 동시에 학생들이 불평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바람직한 가치관을 가지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며, 과시적 소비가 과연 좋은지를 성찰하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세워야 한다.

학교나 정부가 불평등을 줄이고 싶다면 청소년들에게 피복비 등을 지원하는 것이 올바르고 실제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이다. 현재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확대할 수도, 학생수당을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1인당 수십만 원씩 지원하고 있는 교복비를 그렇게 전환할 수도 있다. 복지제도를 확대하고 실제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해 나가야 할 일에 학생들의 복장을 통일시킴으로써 대처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명확하다

과거 두발자유 문제에 대한 토론회에서 어느 중등 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 생각에는 중고등학교의 모든 용의 복장 규제 등은 그냥 초등학교랑 같은 수준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는 잘만 있다가 중학교 와서부터 갑자기 이것저것 규제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생각해 보면 그렇다. 대다수 초등학교에는 교복이 없고, 대학교에도 교복이 없다.(물론 초등학교 중에도 부당한 규제를 가진 곳이 꽤 있긴 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만 교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10대 중후반의 사람들만 뭔가 특출나게 미성숙하고 문제 있을 것이라는 믿음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교복 제도를 유지하려는 배경에 있는 것은, 그저 수십 년간 그래 왔으니 이래야 할 거라는 고정관념과 학생들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전부일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 교복을 입지 않았던 시기가 몇 년 있었다. 그리고 그때도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도 교복이 없는 중고등학교가 소수 존재하며, 학생들은 그 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다. 교복이란 없는 게 당연하고,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나라들도 많다. 교복의 불필요함과 교복을 없애도 문제가 없음은 이미 경험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시공간을 넘어 입증된 셈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교복을 없애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교복 가격을 어떻게 낮출 것인가 하는 방법을 넘어 중고등학교의 교복 제도 자체를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보자. 그 출발점이자 목표지점은 학생의 인권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교복 강요나 두발 규제는 물론, 화장 단속, 외투나 가방 규제 등 학생의 용의복장을 단속·처벌하는 행태는 부디 사라지기를 바란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학교에 있어야 할 것은 당연히 '자유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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