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살다 처음 접하는 희귀한, 아니 희한한 뉴스다. 지난 23일 열린 인천국제마라톤대회 국내 여자부 1위를 차지한 이수민 선수(삼척시청)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김원기 감독이 큰 수건을 들고 선수의 허리를 감싸려 했는데 선수는 오히려 이를 안간힘을 다해 뿌리쳤다. 이 영상이 퍼지자 감독의 성추행 논란이 일었고 다수 언론에서 가장 많이 읽힌 뉴스에 등극했다.
그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 이수민 선수가 결승선을 두 팔 벌리고 당당하게 통과하는데 결승선 코앞에서 기다리던 김 감독은 선수를 낚아채듯 잡아당겨 허리에 수건을 두르려 했다. 결승선 통과한 선수에게 수건 덮어주는 것은 익숙한 모습이긴 한데 선수가 저렇게 사력을 다하듯 이를 뿌리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약 5초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성추행 논란이다. 국민신문고에는 관련 민원이 100여건 접수됐다고 한다.
아마 모든 국민이 올림픽 등 마라톤 대회 한 번은 봤을 것이다. 또 지금은 '마라톤 인구 천만 시대'이고 나 역시 지난 두 달 동안 풀코스 세 번을 완주한 마라톤인이다. 마라톤은 기록이나 등수 이전에 고통과의 대결이다. 풀코스 완주하고 골인하는데 선수 위한답시고 저렇게 잡아채듯 붙드는 사람 없다. 선수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결승선을 통과하면 우선 속도를 줄여야 하고, 천천히 걸어가며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줘야 한다. 그때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 주최 측이든 코치든 다가와 선수의 상태를 체크하며 양어깨에 수건을 걸쳐준다. 엘리트든 마스터든 아직 고통이 끝나지 않았기에 누군가 옆에서 몸에 손대는 것도 금물이다. 격려하며 관찰만 한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수건을 덮어주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의견이 있나 보다. 맞다. 흔하다. 뒤에서 선수 양어깨에 걸쳐준다. 그러나 수건으로 허리춤을 감싸안으려는 '선수 보호'는 처음 본다. 우선 김 감독은 선수가 속도도 줄이지 못했고 호흡도 가다듬지 못했는데 득달같이 달려들어 선수를 강제로 멈추게 해 더 고통스럽게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마치 (상체만 사용하는) 그레코로만 레슬링 선수라도 된 듯 굳이 여성 선수의 양 겨드랑이 사이로 자신의 손을 집어넣어 허리에 타월을 감싸려는 해괴한(?) 행동을 했다. 선수의 허리를 가지고 몸싸움 수준의 실랑이를 벌이다보니 성추행 논란으로 이어진 것인데, 상식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혀 불필요한 신체접촉이기에 성추행으로 판단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 선수는 지난 25일 자신의 SNS에 문제의 본질은 성추행이 아니라 골인 직후 예상치 못한 강한 신체접촉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이라고 분명히 했다. 당시 숨이 가쁘고 정신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옆에서 갑작스럽게 매우 강한 힘으로 몸을 잡아채는 충격에 팔이 압박됐고 가슴과 명치에 강한 통증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는 선수로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먼저 감독에게 찾아가 순간적으로 뿌리친 행동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사과를 표했으나 김 감독은 자신의 저지른 황당한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나 인정은 전혀 없었고, 말을 돌리는 식으로 대응"했다면서 이후 개인적·공식적 연락도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선수를 보호하고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삼척시의 조사 전 본인은 잘못이 없다며 먼저 입장을 밝히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도 통증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병원에서 2주 치료 소견을 받고 회복 중"인 그는 다음 달 소속팀과의 재계약을 앞두고 이 논란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왜 그랬을까. 그는 해명에서 "모든 지도자가 (선수가) 들어오면 다 잡아주고 한다", "여자 마라톤 선수는 결승선에 들어오자마자 실신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안 잡아주면 넘어지고 크게 다친다"고 주장했다. 언급했듯 최후의 스퍼트를 하고 들어온 선수를 속도도 줄이기 전에 결승선 통과하자마자 낚아채 허리를 붙잡고 몸싸움을 벌이는 지도자는 이 세상에 없다. 특히 수건은 뒤에서 양어깨에 걸쳐주는 것이지 허리에 둘러매라고 허리를 감싸안으려는 지도자도 처음 본다. 논란의 장면 몇 발짝 후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이가 정확하게 매뉴얼대로 했다. 이 선수는 말없이 이를 받아들였고.
또 결승선 통과 후 실신하는 선수들이 없지는 않겠으나 첫째 엘리트 선수 경우엔 매우 드물고, 둘째 여기엔 남녀 구분이 없으며, 무엇보다 셋째 1등으로 들어온 선수가 실신하는 경우를 적어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몸에 이상이 왔음에도 기어이 완주한 후순위 선수라면 모를까. 자신의 해괴한 행동에 대한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 소속팀 선수가 1등으로 들어오자 "내가 이 선수 감독이다"를 주변에 과시하기 위함이었을까? 사진기자, 방송카메라들이 주변에 몰려있으니 자신의 성과를 알리기 위한 공명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라면 이수민 선수의 경우처럼 혹시 재계약을 앞둔 그가 불안감에서 저지른 기행(?)이었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감독으로서의 자격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젊은 시절 달리기는 잘 했으나 감독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또 하나 확실한 점은 이수민 선수가 약자이자 신체적, 정신적 피해자라는 점이다. 탁월한 경기력을 증명했음에도 감독으로 인해 난데없는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 그의 재계약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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