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어머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어머니

[세상을 바꾸는 힘, 나눔] 감사편지의 전도사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

국내외 정세가 불안합니다. 서로를 향한 미움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남모르게 내 소중한 것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미래의 희망을 꿈꿀 수 있습니다. 나눔은 힘이 셉니다. 작은 결심, 조그만 행동이지만 태풍이 되어 사회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푸르메재단이 한국 최초로 어린이 전문 재활병원을 세운 것도, 단단한 의지로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장애인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나눔을 실천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대표가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께 전합니다.

▲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 ⓒ푸르메재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일까? 사랑, 희망, 행복, 평화 등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영국의 한 단체가 영어권을 제외한 102개국 4만 명에게 물은 결과 가장 많은 응답을 받은 단어는 '어머니'라고 한다. 이어 열정, 미소, 사랑 순으로 꼽혔다. 내 어머니도 돌아가신 지 3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란 단어를 들으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다.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오랜 투병생활로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지만 기억 속의 어머니는 젊고 고운 40대의 모습이다.

2008년 장애자녀를 가진 어머니를 위로하는 행사를 열었다. 정호승 선생님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이별노래> <수선화> 등 당신의 시를 낭송한 뒤 시를 지은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는 인문학 강연이었다. 어린이 가족부터 휠체어를 탄 장년의 부부까지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화문 KT홀을 메웠다. 마지막 순서로 정호승 선생님은 <바닥에 대하여>란 시를 낭송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을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정호승 시인은 "여러분! 인생의 바닥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닥'이 비참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일 뿐입니다. 바닥에 닿으면 그저 '이제 정말 바닥이구나' 하고 그 바닥을 딛고 일어나십시오"하고 말했다. 그 말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난 뒤 중년의 부부가 찾아왔다. 옆에는 한 청년이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스물여섯 살인 제 아들입니다. 근이영양증으로 장애를 가졌습니다. 모두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런 줄 알고 스무 살 이후 아들이 어떻게 살지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데리고 외국 여행을 가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다르더군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다르니 제도와 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고요.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일이 중요합니다. 푸르메재단이 그 역할을 해주십시오." 박점식 천지세무법인 회장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 2014년 더미라클스 회원 가입식에서 아들 동훈 씨(사진 맨 왼쪽)와 함께. ⓒ푸르메재단

박 회장은 푸르메재단 후원에 참여했고 2014년 고액후원자 모임 '더미라클스'가 발족하자 1호로 가입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부의금을 기부해줬고, 2020년 유산기부보험에 가입해 자신의 사망보험금 수령자를 푸르메재단으로 지정했다. 재단이 일을 벌일 때마다 발 벗고 나섰다.

어머니, 내 어머니

박 회장으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어머니, 내 어머니>였다. 책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회한이 절절히 담겨 있었다.

흑산도에서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며, 가난과 절망 속에서 아들을 키운 호랑이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홀어머니와 범상치 않은 외아들의 삶은 처음부터 굴곡이 예고됐다.

꽃다운 20대 어머니는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이 다섯 살이 되자 뭍을 떠나 섬으로 들어갔다. 목포에서 뱃길로 반나절 거리인 흑산도였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흑산도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했다. 품삯을 받아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아들이 기죽지 않게 늘 새 신과 새 옷을 사입혔다.

"어머니와 저는 섬에서 유일하게 남의 집 셋방살이를 했습니다. 어렵게 살았지만 제 마음속에 그늘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신뢰하고 자신감을 키워주신 덕분이지요."

▲ 어린 시절. ⓒ푸르메재단

행여 '아비 없는 자식'이란 말을 들을까 봐 엄하게 대했기에, 아들은 동네에서 가장 매를 많이 맞는 아이였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자신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계주에게 속아 돈을 모두 잃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긴 글렀구나' 싶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과 담배를 입에 댔습니다."범상치 않은 엄마와 엇나간 아들의 갈등이 되풀이됐다. 아들이 중학교 졸업반이 되자 어머니가 갑자기 매를 내려놓았다. 아들을 앉혀놓고 선언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너를 고등학교에 보낼 테니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라." 박 회장은 이때 어머니 말씀이 매 맞는 것보다 열 배나 더 아팠다. 그날부터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한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명문 목포상고에 합격했다.

뭍으로 진학한 아들은 방학이 되면 고향집을 찾았다. 한번은 친구들과 집에 왔다가 이웃집 염소를 몰래 잡아먹고는 목포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그길로 아들을 찾아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내가 바르게 살라고 하지 않았느냐, 공부는 해서 무엇하겠느냐" 하고는 아들 책을 모두 불살랐다.

성공의 그림자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아들은 구로공단 노동자와 백화점 점원을 거쳐 꿈에 그리던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경력이 쌓이자 작은 회사를 창업했다. 회사는 어느덧 직원 100명이 넘는 중견 세무법인으로 성장했다. 고생 끝에 '징하고 징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 성공했다고 자부했다.

▲ 1990년 세무사무소 개업식에서 가족과 함께. ⓒ푸르메재단

하지만 성공하면 할수록 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가장이 되었다. 근이영양증으로 장애를 가진 아들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매일 아들을 업어 등하교시킨 아내는 양쪽 무릎 연골이 망가졌다. 사업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외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와 장애아들을 간호하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충돌했지만, 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직원들에게도 호랑이보다 무서운 상사였다. 실수라도 하면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쳤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수록 더 날카로워졌다. 200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전자세금계산서가 도입되면서 태풍 같은 변화 앞에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몰려왔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직원들의 긍정적 사고가 필요했다. 전자세금계산서 입력센터를 만든 뒤 직원들에게 고객상담에 집중하도록 요구했다. 사무실에만 있지 말고 찾아가는 고객서비스를 지시했다. 고객과 통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진상 고객'을 직접 찾아가라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직원들은 반발했다.

'직원들 마음을 바꿔야 조직이 사는데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연히 뇌과학자와 심리학자가 쓴 논문을 읽게 됐다. 하루 다섯 가지 '감사편지'를 3주 동안 쓰고 나면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 변화를 알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뇌가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이야기였다. 그날부터 박 회장은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효과를 체험하자 직원들에게도 함께 쓰자고 권유했다. 처음에 주저하던 직원들도 하나둘 서로에 대해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젊은 시절 어머니와 함께. ⓒ푸르메재단

직원 간 감사편지가 자리잡자 이번에는 고객에게 쓰자고 제안했다. 직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갑질하는 진상 고객에게 감사편지를 쓰라니, 모두 기막혀했다. 박 회장은 감사편지는 자기를 성찰하고 남을 이해하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설득했다. 동참하는 직원들이 늘어나자 거짓말처럼 고객도 늘어났다.

전하지 못한 1000통의 편지

박 회장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1000통의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첫째, 저를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비록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시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감사합니다. 셋째,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아들을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와의 좋은 추억을 하나둘 정리해 나갔다.

아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진학의 길을 열어주셨고, 언제나 기다려주셨고, 아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셨던 어머니. 어려움 속에서 긍정의 힘을 가르쳐주신 어머니가 계셨기에 이 자리에 서게 됐고 삶의 의미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 제주도 여행길, 어머니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하셨다. "우리 아들이 운전하느라 술을 마실 수 없으니 그 얼마나 좋으냐" 하고 웃었다. 자식이 술 못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어머니 속을 썩였는지 고개가 숙여졌다.

630통의 편지를 쓸 무렵 어머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셨다. 어머니는 아들이 천 통의 감사편지를 쓸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들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어머니 영전에 바쳤다. 남은 370통을 마저 썼다. 그렇게 천 통의 편지를 쓰면서 마치 어머니가 뒤에서 안아주는 듯 따스함을 느꼈다고 한다.

▲ 직원들과 대화하는 박점식 회장. ⓒ푸르메재단

아들을 돌보는 아내와, 장애가 있는 오빠 때문에 늘 많은 걸 양보해 온 딸에게도 100통의 감사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면서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박점식 회장 자신이었다. '날카롭던 인상이 누그러졌다, 편안해 보인다, 젊어졌다'는 인사를 듣게 됐다. 결재를 받으러 올 때마다 심호흡하며 긴장하던 직원들이 농담을 건넸다.

박점식 회장은 사회공동모금회의 고액후원자 클럽 '아너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감사편지가 그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자신이 졸업한 흑산도초등학교에 연락해 필요한 게 없는지 물었고, 아내가 다니는 성당의 어려운 사람들도 도왔다. 어느 순간 그는 기부천사가 되었다.

소설가 김주영은 "자식이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백일기도를 올리는 어머니는 많이 보았지만, 자식이 어머니에게 천 가지 감사를 바쳤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호승 시인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얼어붙은 내 가슴에 봄이 오고 사랑과 감사의 새싹이 돋았다"고 고백했다.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어려움 속에서 긍정의 힘을 보여주신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을 쓰면서 박점식 회장은 또다른 삶을 살게 됐다. 어머니가 주신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 <세상을 바꾸는 힘>(백경학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2024년 7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을 시작으로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정호승 시인, 고 김정주 넥슨 창업주, 이지선 교수, 가수 션 등 나눔을 실천한 분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글이 모아져 문학동네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20년 동안 푸르메재단 일을 하면서 문을 열어주시고 푸르메재단과 함께 꿈꾸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뜻과 정성을 모아주신 기부자와 시민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웃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시간과 열정을 바친 사람들을 위한 헌사이자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해 온 시민들에게 보내는 찬사입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는 CBS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한 뒤 영국에서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푸르메재단을 세웠습니다. 푸르메재단은 시민 1만 명과 넥슨 등 500개 기업과 함께 2016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하고, 2022년 경기도 여주에 푸르메소셜팜을 여는 등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와 발달장애 청년의 자립을 위한 사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푸르메재단

지난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2016년 서울 마포구에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 장애어린이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다. 현재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이은 2기 사업으로, 학업과 재활치료를 잘 마치고도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발달장애 청년들을 위한 일터 ‘푸르메소셜팜’을 완공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