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A(23) 씨.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역 일자리에 풀타임 아르바이트는 구할 수 없는 지경이고, 겨우 구한 일자리의 사업주들은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을 시켰다.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두세 개씩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지만, 생활고는 점점 심해져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돌려막기'를 위해 은행에 신청한 신규 대출마저 거절당한 지난달, 벼랑 끝에 놓인 A 씨의 눈에 "고수익 보장, 해외 취업"이라는 문구와 함께 텔레그램으로 연락 달라는 인터넷 게시물이 보였다. A 씨는 <프레시안>에 "평소 같았으면 불법 취업이 뻔한 구직 공고를 쳐다보지도 않았겠지만 경제적·심리적으로 몰리는 순간이 오니 혹하는 마음이 들어 연락을 고민하게 됐다"며 잠시나마 불법 아르바이트의 유혹에 빠졌었다고 털어놨다.
캄보디아 소재 범죄 조직이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한국 청년들을 납치·감금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인 청년들을 향한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공고문에 속는 사람이 문제"라거나 "쉽게 돈 벌려고 하니 범죄에 당하는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청년들 사이에서는 "빈곤과 취업난, 질 낮은 일자리 등의 구조적 문제 탓에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혹하는 것"이라는 항변이 나온다. 전문가들 또한 캄보디아로 간 청년들을 탓하기보다 그들이 위험한 선택에 빠지는 이유를 살피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취업시장 박살" 갈수록 극심해지는 취업난…비수도권은 더 심각
17일 기준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지에서는 "고수익 알바 모집", "일급 최대 100만 원" 등의 문구와 함께 근무를 원하는 이들은 텔레그램으로 연락 달라는 홍보물이 다수 게시돼 있다.
한 커뮤니티에 게시된 '해외 TM(텔레마케터) 구인' 공고문을 보면, 게시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평일 8시간 근무하면 월 900만 원 이상을 급여로 지급하고 식사와 숙소도 제공하겠다며 "돈 욕심 많고 인생역전에 도전하실 분들 언제나 환영"이라고 했다.
불법 구인구직 플랫폼 '하데스카페'에서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7~10일만 근무하면 1300만 원을 주겠다는 등의 구인 공고문이 수없이 많이 등록돼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하데스카페는 15일 해외 구인 공고문을 전부 삭제했지만, 디시인사이드 등 청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해외에서 근무하면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는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임금을 주겠다면서도 별다른 조건이 없어 의심을 사는 글들이지만, 여러 사정으로 빈곤을 겪는 청년들은 충분히 현혹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리랜서 B(24) 씨는 <프레시안>에 "취업난과 더불어 물가 상승, 전세사기 등의 사회적 문제가 겹쳐 안전이 보장되지만 낮은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보다 위험하더라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했으며, IT 개발자 C(28) 씨는 "청년들 사이에서 코인, 주식, 불법도박 등이 유행하면서 대출까지 받았다가 돈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고수익 알바에 혹할 법도 하다"고 했다.
청년들은 여러 요인 중에서도 극심한 취업난이 불법 아르바이트 또는 해외 취업에 눈길을 돌리게 만든다고 지목했다. 17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5.1%로 전년 동월 대비 0.7%p 하락해 지난해 5월 이후 17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30대 청년층의 실업률 또한 15만 명으로 전년 동월(12만2000명) 대비 2만8000명 증가했다.
특히 비수도권 일자리는 수도권에 비해 더욱 적고 열악해 청년들이 위기에 몰리기 쉽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납치·감금돼 고문으로 숨진 대학생 박모(22) 씨 또한 경북 예천 출신으로 충남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이었으며, 그해 7월 취업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캄보디아에 출국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씨 뿐아니라 대구·경북·경남·광주·전남 등 전국 각지에서 캄보디아에 출국했다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쏟아지고 있다.
20대 초반 경남에서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B 씨는 "애초에 지방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구하더라도 최저시급을 지키지 않는 점주가 많다. 서울이야 다른 근무지가 많으니 신고할 수라도 있겠지만 지방은 다른 곳에서도 일하기 어렵게 될 수 있어 신고를 꺼리게 된다"고 했다.
전남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D(28) 씨도 "주위 중소기업 사장들의 구인 방식이 작년과 다르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이 많으니 월급을 덜 줘도 손드는 사람들이 많다"며 "취업시장이 박살난 게 피부로 와닿는 상황"이라고 했다.
취업난으로 인한 청년 빈곤은 대출 연체에서도 드러난다. 17일 5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연령별 가계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20대의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 단순 평균은 0.41%로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높다. 한 은행의 20대 이하 신용대출 연체율 또한 0.8%로 0.3%대인 나머지 연령대를 크게 웃돌았다.

위험한 줄 알아도 위기 몰리면 '고수익' 현혹되기 쉬워…"위험한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청년 이야기 들어 달라"
빈곤에 놓인 청년들이 고수익이라는 미끼에 현혹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합법이라고 안심시키거나 불법이라 하더라도 처벌받기 어렵다는 말에 속아 대포통장, 마약 운반, 성매매 등 불법 사업에 빠지는 청년들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이들의 피해 사례가 사회 문제로 언급될 때마다 여론은 "쉽게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거나 "불법으로 돈을 번 이들은 구제가 아닌 처벌의 대상"이라는 등 냉소적인 시선으로 청년들을 바라봤다. 캄보디아 사태 또한 마찬가지로,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범죄 조직에게 감금된 청년들을 구출하는 과정을 두고 "'고수익 알바'에 속아 캄보디아까지 가는 수준의 청년들을 왜 세금으로 도와야 하느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그러나 청년들은 불법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을 비난하기보다 그들이 위기에 빠지는 이유를 짚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A 씨는 "누가 봐도 불법 취업 주선처럼 보이는 것도 궁지에 몰려 있으면 그럴듯하게 다가올 수 있다"며 "더구나 캄보디아 사태처럼 취업 사기 게시글이 인터넷에 워낙 많고 자주 보면 혹하는 때가 온다"고 설명했다.
B 씨도 "나 또한 생활비가 간절하던 시기 위험한 선택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며 "캄보디아로 간 청년들을 문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이야기와 사회 문제 또한 들여다봐 주길 바란다"고 했다.
청년들을 꾸짖고 처벌하기 전에 위기에서 꺼낼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의견도 나온다. 동아시아 청년을 연구하는 이보고 글로벌차이나연구소 소장은 <프레시안>에 "우리나라 안에서 선택지가 없어 해외로 몰리는 청년들의 경험과 환경을 소거한 채 개인의 일탈 또는 범죄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정적 시각"이라며 "이번 사태를 극단적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의지할 곳들을 찾을 수 있도록 세심한 행정을 모색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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