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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보라색 되도록 때리고 전기충격까지"…캄보디아 범죄단지, 4달 전 이미 경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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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보라색 되도록 때리고 전기충격까지"…캄보디아 범죄단지, 4달 전 이미 경고있었다

[캄보디아 범죄단지] 上 엠네스티가 밝힌 범죄단지 실상과 너무 늦은 정부 대응

"(두번째 탈출 시도 실패 뒤) 그들이 저를 다시 어두운 방으로 데려갔어요. 네 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세 명이 저를 붙잡고 있었고 사장은 쇠막대로 제 발바닥을 때렸어요. 그들은 제가 비명을 멈추지 않으면 멈출 때까지 계속 때릴 거라고 말했어요." - 캄보디아 범죄단지 생존자 리사의 피해담

"정말 비인간적이에요. 몸이 보라색이 될 때까지 계속 때려요. 덤벨 같은 걸로 다리나 몸을 때려요. 그리고 몸을 붙잡고 전기봉으로 계속 전기 충격을 가해요. 한 20분에서 30분 정도 계속 때려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할 때까지, 하루종일 누워있다 기력이 다할 때까지 때려요." - 캄보디아 범죄단지 생존자 시티의 목격담

국제 인권단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발간한 캄보디아 범죄단지 보고서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다>에 담긴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엠네스티는 2023년 9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31개의 범죄단지에 구금됐던 생존자 58명을 가명 인터뷰하고, 범죄단지 53곳 주 52곳과 의심장소 45곳 중 43곳을 방문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발간시기는 지난 6월. 인터뷰이는 말레이시인, 중국인, 태국인 등으로 한국인은 없지만 지난해 10월 한국방송(KBS)의 범죄단지 보도가 보고서에 인용됐다. 2023년 6월 <미국의 소리>가 한국 출신 인신매매 피해자가 범죄단지에 갇혀있다고 주장했다는 보도도 마찬가지다. 길게 보면 2년 6개월, 짧게 봐도 1년 전 범죄단지 내 한국인 관련 공론화가 시도됐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수행된 가장 광범위한 조사인 엠네스티 보고서를 토대로 범죄단지에서 일어난 일을 정리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사이 한국 정부는 어떤 일을 했는지도 살폈다.

취업사기로 유인돼 면도날 철조망 쳐진 벽 안에 갇힌 이들

엠네스티 보고서에는 중국 범죄 조직이 운영 중인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자행된 자유 박탈, 인신매매, 강제노동, 고문 등 학대 등 인권침해 사례가 기록돼있다.

생존자 대부분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감금돼 있었다는 사실은 범죄단지 건물의 특징에서 확인된다. 최소 31곳의 경계벽 위에 가시나 날이 달린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고, 보안 카메라는 단지 내부를 향해 설치됐다. 정문에는 대개 전기봉, 총기 등을 소지한 경비원들이 있었고, 일반인은 드나들 수 없었다.

엠네스티는 생존자 대부분이 사기성 구인광고를 보고 유입된 착취 목적 인신매매의 피해자라고 기록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일을 구하던 16살 중국인 소녀 하오위는 중국 장시성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줄 알았지만 범죄단지에 끌려왔다. 다수 피해자가 바텐더, 엔지니어, 프로게이머, 카지노 관리자 등으로 일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채용은 종종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인 웹사이트 등에 올라온 구인광고를 통해 이뤄졌다. 광고에는 높은 연봉이 제시됐다. 합법적인 회사로 보이기 위해 범죄단지 관리자가 피해자에게 두 차례 면접을 실시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끌려온 이들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는데, 엠네스티가 확인한 가장 어린 피해자는 14살이었다.

인터뷰이 중 두 명은 사기 행위에 연루될 것을 알고도 범죄단지에 왔다. 그 중 한 명인 다니엘은 본국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범죄단지에서 빠져나갔다 돌아왔다. 엠네스티는 이들 역시 폭력 등 피해를 당했다는 점에서 인권침해 피해자라고 짚었다. 실제 다니엘은 복귀 몇 달 뒤 다른 범죄단지로 팔려가 고문 등 학대를 당했다.

▲엠네스티 보고서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다>에 담긴 캄보디아 범죄단지 건물. 높은 경계벽과 가시철조망, 내부를 향한 감시카메라, 경비원이 보인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구타, 전기충격, 성폭력 위협까지…범죄단지 내 고문과 학대

생존자들은 범죄단지 안에서 강제노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엠네스티는 이들이 온라인 사기에 동원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성매매, 온라인 불법도박 등에 동원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사기 내용은 로맨스 스캠, 가짜 상품 판매, 주식사기 등이었고, 사기를 위한 대본과 훈련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생존자들은 업무 목표 미달성, 탈출 실패, 경찰 신고 등 다양한 이유로 고문당했다. 중국인 진은 "타이핑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저를 때리고 3일 동안 서 있게 했다. 다시 타이핑하라고 했는데 그래도 못하니 또 때렸다"며 나중에는 "때리면서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충격으로 생긴 상처를 엠네스티 조사원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인 볼린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수갑이 채워진 채 전기충격을 받고 막대기로 구타당했다"고 증언했다. 태국인 위타야는 범죄단지 관리자들이 "에어컨으로 춥게 만든 방에 넣고 물을 끼얹었다"며 "열심히 일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런 일을 했다"고 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3초 동안 전기충격을 받았다"는 생존자도 있었다.

공포 분위기 조성과 심리적 학대도 통제에 활용됐다. 에티오피아인 겔릴라는 관리자들이 "당신을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세뇌시킨다"며 신체적 고문을 당한 적은 없지만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고 밝혔다. 태국인 사와트는 관리자들이 누군가를 때리고 싶으면 "모두가 보는 앞으로 끌고 가 길고 두꺼운 쇠막대기로 때렸다"고 했다.

성폭력 위협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워진 상황에서 다리 사이에 칼을 들이대겠다는 위협"을 받았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단지에 함께 갇힌 아내를 집단강간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인터뷰이 중 50명은 이런 환경에서 일하며 임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4명의 인터뷰이는 업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초과근무가 부여돼 하루 10~16시간 이상 일했다고 했다. 범죄단지 관리자들이 일방적으로 빚을 부과한 뒤 이를 임의로 늘리며 빚을 다 갚아야 나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 엠네스티 보고서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다>에 담긴 캄보디아 범죄단지 내 고문 관련 삽화.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너무 늦은 정부 대응…범죄단지 내 한국인 1000면 추정

범죄단지의 상황은 캄보디아 인접국에서는 2022년경부터 조명받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23년 21건이었던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감금 신고가 2024년 221건으로 크게 늘며 주목받았고, 지난해 10월 엠네스티 보고서에 인용된 대로 KBS가 최초 공론화를 시도했다. 같은 해 국감에서도 당시 여당 의원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다만 최근 범죄단지가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전까지 정부 차원의 이렇다 할 대응은 없었다. 심지어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외교부가 캄보디아-태국 간 무력충돌로 캄보디아 내 두 지역에 내렸던 2단계 '여행자제' 경보를 지난해 6월 1단계 '여행주의'로 하향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해당 지역은 엠네스티가 범죄단지가 있다고 지목한 곳이다.

이에 더해 외교부가 지난해 주 캄보디아 경찰 주재관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행정안전부가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며 거절했다는 점도 올해 국정감사에서 확인됐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올해 상반기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감금 신고는 303건을 기록했다.

정부가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취업 박람회에 간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한 대학생이 고문받은 뒤 숨진 일이 언론에 보도되고,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감금 피해자 14명의 구조 사실을 알리며 범죄단지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뒤였다.

지난달 16일 외교부는 캄보디아 프놈펜 등 일부지역 여행경보를 2단계로 격상하고 시아누크빌, 보코산, 바벳 등에는 2.5단계 '특별여행주의보' 경보를 내렸다. 이어 지난 15일에는 보코산, 바벳, 포이펫 등에 4단계 '여행금지', 시아누크빌에 3단계 ' 출국권고' 등으로 경보를 강화했다. 경찰청도 캄보디아 주재 경찰을 3명에서 8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16일에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한 정부합동대응팀이 현지로 출국해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를 예방하고, 지난 7월과 9월 캄보디아 당국에 의해 검거된 범죄단지 관련 한국인 60여 명 송환 및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오는 22일 캄보디아 범죄단지 두 곳을 시찰할 계획이다.

정부는 현재 범죄단지 내에 1000명 남짓의 한국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가운데 캄보디아에서는 범죄단지에서 한국인만 빼내거나 무인도 등으로 단지를 통째로 이사하려는 시도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은 대응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조속히 만회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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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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