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2023년부터 추진했던 북한인권 증진활동 지원 사업이 북한인권 관련 시민단체들의 지원금 통로로 활용된 정황이 나타났다. 이 사업에 수십억 단위의 자금이 투입됐던 만큼 부실 회계 문제 등에 대해 철저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실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지난 2023년 11월 29일 '북한인권 현인대화' 행사 관련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는 목표 인원인 700명에 모자라는 300명 정도의 인원만 참석한 행사였음에도, 참여 인원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행사가 이미 종료된지 한 달이 지나 '사업 계획 변경'을 승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행사는 재단법인 국제학술원이 조선호텔에서 진행한 것으로, 전날인 28일에는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을 비롯한 행사 참석자들이 윤석열 당시 대통령을 면담했다. 또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이른바 '실세'로 통하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당일 행사에 참석해 축사했다.
이렇듯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관심을 보이는 행사에 약 1억 5000만 원 정도의 보조금이 지급됐다. 이 중 약 7000만 원은 행사 전문 업체들에 지출됐다.
그런데 국제학술원이 통일부에 보고한 '2023년 북한인권 증진활동 지원사업 정산보고서'에 따르면 행사가 종료된 지 약 한 달이 지난 12월 26일 통일부는 "참여인원 증가로 인한 관련 외부용역업체 추가 지출"을 이유로 사업 계획 변경을 승인했다.
정부에서 사업을 실시할 때 계획보다 많은 금액이 지출될 경우 사업 계획 변경을 통해 사후 금액을 지출할 수 있다. 이 사례의 경우 추가 지출 근거로 '참여 인원 증가'가 명시됐는데, 실제 행사를 주관했던 국제학술원 측의 보고에 따르면 목표 보다 참석 인원은 적었다.
그해 12월 29일 국제학술원이 통일부에 제출한 '2023년 북한인권 증진활동 지원사업 추진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자 수의 목표는 700명이지만, 실제 결과는 300명이 참석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사업 변경 계획의 근거로 든 '인원 증가'와는 반대되는 결과 보고다.
해당 자료의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통일부의 승인 이후 '리버티케이'라는 '외부 용역업체'에 3300만 원이 '추가 지출'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학술원은 통일부의 승인 이후인 12월 27일과 28일에 해당 업체에 금액을 지출했다. 이는 10월에 이미 계약을 마치고 선금과 잔금을 지급받은 다른 전문 업체들과는 상이한 지급 방식이었다.
해당 업체가 진행했던 일들이 행사 인원 수 증가와는 크게 관계가 없는 사항이었다는 점도 문제다. 이 업체의 통일부 보조금 수령 내역을 살펴보면 LED, 스위쳐 콘솔(1000만 원), 한영 속기(301만 원), 언론보도와 홍보대행(300만 원), 유튜브 채널 생성, 영상 편집과 채널 관리(200만 원), 프로그램북 컨텐츠 제작 및 편집일체(260만 원), 공연(160만 원), 행사장 설치물, 핀마이크(150만 원), 사회자 사례비(230만 원), 회의 내용 편집과 교정, 교열, 윤문(330만 원), 영상 엔지니어 파견과 결과물 편집(270만 원) 등이었다.
이 업체의 업무 성과가 사후에 수천만 원을 지급할 정도의 수준이었는지도 의문이다. 김준형 의원실이 통일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업체는 구독자 145명인 인스타그램에 게시물 6개를 홍보 결과로 내놓았으며, 이미 제작과 인쇄를 다른 업체에 맡겼는데도 프로그램북을 찍었다면서 260만 원을 수령했다.
해당 업체는 행사를 주최했던 국제학술원 인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 운영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행사를 맡았던 국제학술원에서 사업을 담당한 김민정 씨는 사단법인 세이브NK의 부대표다. 리버티케이의 등기이사인 이 모 씨는 세이브 NK의 이사다.
행사를 주최한 국제학술원에도 석연치 않은 보조금 지급 행태가 나타났다. 통일부가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북한인권 증진사업 18개 선정 단체 중에 해를 넘겨서 보조금을 받은 단체는 5곳인데 북한인권시민연합 37만 3500원, 자유와인권을위한탈북민연대 32원, 평화한국 12만 원, 세이브NK 42만 8720원 등을 받은 데 비해 국제학술원은 817만 7865원을 지급받았다.
지원 자금의 출처도 문제시 됐다. 국제학술원이 회의비 지출 증빙을 위해 통일부에 제출한 업무일지 중 2023년 10월 31일 진행한 해당 행사의 진행 상황 점검회의에서 "예산 바운더리에 대해서 직접 정보비, 보조금, 행사비 등 확실하게 잘 진행이 되고 있는지, 제로베이스에서 같이 논의를 하자"라며 "행사를 위해서 이렇게 할 거다 라는 자료만 준비해주면 통일부가 와서 행정상 어레인지(arrange)해줄 것이다. 이렇게 사용을 해야 된다를 알려주러 온다고 함"이라고 명기돼 있었다.
김 의원은 "통일부가 이렇게까지 제멋대로 보조금 사업을 관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통일부의 보조사업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참가자가 줄었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참여 인원 증가를 이유로 외부용역업체에 지출 추가를 승인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정권의 눈치를 보며 협조를 위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리지도 않고 무조건 승인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권력을 등에 업고 일탈을 일삼는 일부 민간단체들의 과오가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민간단체의 보조사업까지 위축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며 "핵심적인 문제는 통일부가 법률과 자기 스스로 만든 보조사업 지침을 무시하고, 왜 특정 단체에게 특혜로 보이는 결정을 내렸냐는 것이다. 관리감독의 책임을 스스로 방기하고, 오히려 공모한 것 아닌가 하는 심각한 의구심마저 들게하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윤석열 정부 3년동안 북한인권 증진활동에 60억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됐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취임하고 사업을 폐기했지만, 그냥 넘어가면 권력 눈치만 보는 동일한 관행은 반복될 것"이라며 "관련 의혹 해소를 위해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사업들에 대해서 전면 재조사를 실시하고, 위법부당 행위가 확인된다면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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