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타임뱅크, 복지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혁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타임뱅크, 복지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혁신

[복지국가SOCIETY]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 말은 우리가 복지를 이야기할 때 자주 떠올리는 전제다. 오늘날 복지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적 복지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과 이웃 사이의 교류로 형성되는 공동체적 복지다. 이 두 복지 모델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대의 방식과 기반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관계에 있다. 타임뱅크는 돈이 아닌 시간이라는 매개를 통해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타임뱅크를 통해 국가복지와 공동체복지는 더욱 각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국가복지가 가지는 한계

제도적 복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이 국가로부터 받는 서비스와 지원이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체계의 장점은 분명하다. 공평하고 지속 가능하며, 권리로 보장된다는 점이다. 태어나자마자 건강보험에 등록되고, 나이 들면 국민연금을 통해 소득을 보전받는다. 개인의 사정이나 이웃과의 관계에 따라 혜택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행정적 절차는 복잡하고, 비인격적이다. 특히 돌봄, 정서적 연결, 공동체적 소속감 같은 비물질적 복지는 이 체계 안에서 쉽게 소외된다. 시민사회가 약하고, 국가주의·관료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국가복지의 한계는 분명히 드러난다. 자주 언론지상을 통해 드러나는 가족들의 집단자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개개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에서 국가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개인들에게 모독감을 주는 절차, 신청을 해야만 주는 신청주의 등등은 국가복지가 가지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타임뱅크, 시간을 나누는 돌봄의 연대

반면 타임뱅크는 돈이 아닌 시간으로 가치를 측정하는 새로운 교환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내가 노인을 병원에 동행해 준 1시간은 타임뱅크 통장에 1시간으로 적립되고, 이후 내가 아플 때 누군가의 돌봄으로 그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구조의 핵심은 신뢰와 상호성이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돌봄, 말벗, 정서적 지지가 이 시스템 안에서는 자산이 된다.

타임뱅크는 특히 노인, 은퇴자, 돌봄 노동자 등 시장에서 배제되기 쉬운 이들에게 존엄한 기여와 교환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제도적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안정성과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 우리는 복지에 대해서 새롭게 질문해야 한다. 복지를 단순히 국가가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시민 스스로 참여하고, 이웃과 나누며 함께 만들어가는 연대의 장으로 확장할 것인가?

제도적 복지와 타임뱅크는 복지의 서로 다른 층위다. 전자는 구조적 안전망, 후자는 사회적 신뢰망이다. 양자는 대립하지 않으며,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다. 예컨대 타임뱅크를 통해 적립된 시간 노동이 일정 기준 이상 쌓이면, 지역 정부의 복지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혹은 타임뱅크 참여가 복지정책 설계나 자원 배분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안산 장애인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타임뱅크 교육 장면. 사진제공=안산시장애인주간보호시설

지역에서 피어나는 연대의 실천, 안산타임뱅크

이러한 연대의 가능성은 단지 이론이 아니다. 안산은 실제로 타임뱅크를 통해 복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가고 있다. 안산타임뱅크는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공동체 기반 조직이다.

이 네트워크에는 안산시장애인주간보호시설, 키움터(장애인공동생활가정), 상록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행복한우리(장애인주간활동센터), 국립선진학교 일부 교사, 어린양의집(장애인생활시설) 등 다양한 기관이 함께하고 있으며, 참여자 역시 영유아부터 노년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 가정주부, 교사, 사회복지사, 목회자, 회사원, CEO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하나다. '건강한 마을을 함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다. 저마다 가진 재능을 나누며, 이들은 단순한 도움을 넘어선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컴퓨터를 고쳐주고, 함께 여행하고, 식사와 산책을 나누며, 반찬을 만들어주는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제도적 복지가 제공하지 못하는 따뜻한 연대가 살아난다.

이러한 교류는 단순한 시간의 교환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고 마을과 연결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대의 그물망이, 우리 마을을 더 건강하고 살 만한 공동체로 만들어가고 있다.

복지사회의 미래, 새로운 시스템과 시민이 만든다

궁극적으로 복지국가의 온도는 시민의 참여에 따라 달라진다. 제도는 최소한의 기반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연대하고 협력하는 가에 따라 온도와 숨결은 달라진다. 국가의 책임 아래 복지가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 안에 관계의 온기, 연대의 체온이 깃들지 않는다면 복지는 효율적이지만 차가운 시스템에 그칠 뿐이다.

시민들이 타임뱅크 같은 실천을 통해 시간과 돌봄을 나눌 때, 복지국가는 더 단단해지고 더 따뜻해진다. 연대는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연대가 가능한 사회야말로 복지국가를 넘어 복지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타임뱅크는 복지국가에서 복지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새로운 정부에서 타임뱅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사회, 지역사회의 집중적인 고민과 모색이 필요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