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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어떻게 '악마'로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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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어떻게 '악마'로 만들어졌나

[박세열 칼럼] 보수판 '퇴마 정치'의 마지막은 이준석이 장식하나?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을 적으로 간주한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적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지지자들까지 가세해 '악마화'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강준만은 2022년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낸 <퇴마 정치>라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지금, 저 문장의 더불어민주당 자리에 국민의힘을, 윤석열의 자리에 이재명을 넣어보라.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너무 단순 무식한 이분법을 택하고 말았다", "2022년 대선 결과는 2년 7개월간 지속한 '윤석열 악마화'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2025년 대선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 이 말은 국민의힘에 고스란히 돌아간다. 민주당의 '부족 정치'를 '퇴마 정치'로 격상시켜 비판한 강준만이 간과한 것이 있는데, '악마화'의 원조가 이 나라의 자칭 보수 진영이라는 점이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반공'을 국시로 여긴 파시스트 권력자들은 '빨갱이'라는 악마를 만들고 사냥하고 불태웠다. 중세의 마녀 사냥은 현세에서 이렇게 변주됐다.

1998년 단군 이래 최초의 정권 교체가 발생한 후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기득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 보수 진영에 김대중은 뿔 달린 악마였고, 노무현은 북쪽에 살고 있는 악마의 하수인이었다. 한때 '빨갱이 사냥'의 표적이었던 김문수의 표현대로라면, 문재인은 "총살감"이자 김정은의 기쁨조다. 이런 발언들은 주로 전광훈 류의 종교 집회에서 군중들을 대상으로 발화된다. 정책 노선이나 이념 논쟁은 복잡하다. 목표는 간단하다. '저들은 악마입니다. 저들에게 혐오감을 가지세요.'

국민의힘을 이승만 자유당이나 박정희 공화당, 전두환 민정당과 같은 정당으로 볼 순 없다. 정치적 뿌리를 이승만 박정희에게 상징적으로 두고 있긴 하지만, 이미 국민의힘도 여엿한 민주 보수 정당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이 나라의 뿌리 깊은 '퇴마 정치'의 원초적 공포와 증오를 이용하는 프레임 공작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두 번의 탄핵을 거치면서 반성했어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스스로 불러온 '박근혜 탄핵'의 재앙 속에서 보수 정당은 여전히 낡은 색깔론에 집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문재인이란 '악마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 이들은 이제 윤석열 검사 정권과 이준석 류의 '신 혐오주의자'들의 토양이 되기로 하고, 그들에게 당의 주류를 맡겼다.

보수 정당을 장악한 이 '하이브리드 보수'는 '빨갱이' 프레임을 도덕 윤리와 결합시켰다. 자신들의 '숙적'을 악마화하고 사람들의 박탈감을 자극해 혐오감을 부추기는 길로 일관되게 나아갔다. 상대 진영의 악마화에 몰입한 대통령이란 자는 급기야 '범죄자'와 '공산당'이란 '하이브리드 악마'의 부정 선거를 막고 체제를 수호한다는 망상에 빠져 내란을 일으켰고, 대통령은 또다시 탄핵되고 만다.

순수한 '빨갱이' 공세로는 악마화 프레임이 더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시대에, 한국의 보수 세력은 '보수 자강' 대신 새로운 '악마화 프레임'에 중독됐다. 문재인을 악마화하고, 그 문재인 정부에서 보수를 '도륙'한 윤석열을 스카웃한 후 이번엔 이재명의 도덕성을 집중 공격했다. 지난 총선 때 그들의 전략은 민주당의 주류인 86 운동권을 세뇌된 악마로 설정하는 것이었다. 이재명은 그 운동권의 숙주로 표현됐고, 자연스레 악마 집단의 거두가 됐다. 여기에 더해 지난 4년 동안 이재명 가족사의 비극을 음침한 정치 소재로 만들어 끊임없이 조롱하고 공격했다.

이준석이 27일 전국에 생중계되는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내뱉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성폭력 묘사는 정점이었다. 이준석이 원하는 건 뻔했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재명 가족사의 음침함과 기괴함, 비윤리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자신이 평상시에 한껏 조롱해왔던 작은 진보 정당이 지키려 한 '가치'를 이용해 먹으려 했다. 이준석은 그 이미지를 이용해 이재명을 악마로 만들면 자신이 표를 받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관성대로 행동했다. 왜? 이준석이 탄핵 당한 두 전직 대통령, 박근혜와 윤석열을 만들때 써먹었던 바로 그 방법이기 때문이다. 상대 악마화와 갈라치기.

형수 욕설, 괴물, 아수라, 쌍욕 등등. 이준석은 이재명이 인격이 일그러진 기괴하고 음침한 인간이며,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저주에 빠진 인간으로 만드는 게 목적이었을 뿐이다.

대장동 사기극을 일으킨 악마 이재명이 삼켰어야 하는 돈 7800억 원(대장동 개발업자 부당 이익)과 4800억 원(배임)은 어느 '저수지'에 있는가. 성남FC 후원금 뇌물 133억 원은 이재명의 호주머니 어디에 있는가. 검찰은 왜 그 돈을 찾아내지 못하는가. 보수 논객인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대장동 사건' 관련 2심 재판에서 핵심 인물 김만배 씨가 무죄 선고를 받은 것과 관련해 "대장동 구조물이 무너진다"며 "이재명이 삼켰어야 하는 돈 다발을 검찰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이 형수에게 욕설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이재명이 친척의 파렴치 범죄를 변호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장동 사건도 일부 이익을 환수한 것은 맞지만, 더 많이 환수하지 못한 '무능'은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재명의 윤리적 흠결을 변호하자는 게 아니다. 지난 4년간 이재명을 악마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윤석열 정권은 성공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내란 대통령 배출 정당이 됐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 50% 안팎이 윤리적 결함과 음침한 내력을 지닌 악마를 지지한다. 이들이 악마의 집단 세뇌에 빠져들었다고 믿는다면,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지금쯤 보수 정당은 비전의 부재와 혐오 전략의 실패를 되돌아 봐야 하건만, 그렇게 할 자정 능력조차 없어 보인다.

윤석열과 이준석, 그리고 김문수가 한 일, 혹은 하고자 하는 일은 이재명을 일그러진 자아를 가진 미치광이 괴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게 전부다. 내란 사태 이후 나온 선거 슬로건이 '이재명만은 막아야 한다'는 게 전부인 정당, 내란 수괴 피의자를 배출하고도 반성 없이 폭력과 범죄를 옹호한 정당에 대관절 누가 정권을 맡겨주고 싶겠나? 독재는 윤석열이 시도하려던 것이고 괴물은 이준석 같은 공감 결여 정치인에게 더 어울리는 수사다.

보수의 가치는 배려, 공정, 로열티, 권위, 고귀함이다. 진짜 보수를 사랑하는 세력이라면, 윤석열과 이준석이 왜 이렇게 보수를 망쳐놓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힘과 윤석열, 이준석은 스스로 창조해낸 악마의 심연을 들여다보려다, 정작 악마가 되어버린 건 자신들이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내란 세력에, 극우 종교인에, 기득권 엘리트 관료에, 여성 혐오까지 덕지덕지 누더기로 급하게 누빈 후 '통합'이란 말을 오염시키고 '반이재명'이란 가치 아닌 가치로 봉합해 일으킨 닥터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는 대선이 끝난 후 극심한 혼란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보수판 '퇴마 정치'의 유통기한이 머지 않은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8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에서 열린 광진구·중랑구 집중 유세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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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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