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 관계자들과 일부 경제 전문가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가 있다. '노인연령 상향'이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고 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현행 65세인 노인 기준을 70세, 혹은 심지어 75세로 올리자는 이야기다. 언뜻 들으면 평균수명이 늘어난 시대에 합리적인 조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회의실의 차가운 통계들은, 내가 지난 20년간 노인복지 현장에서 마주한 주름진 얼굴들과 떨리는 손길들의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 이 글은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증언이다.
"선생님, 오늘도 약값이 없어요."
지난 화요일 오전,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박순자(67세)님은 고혈압과 당뇨, 관절염으로 매달 약 값만 12만 원이 넘게 든다. 기초연금 30만 원과 65세부터 받기 시작한 노인 의료비 지원으로 겨우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선생님, 정부에서 노인 나이를 70세로 올린다는 소문이 돌아요. 진짜예요? 그럼 내 연금도 끊기는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박순자 님 눈에는 공포감이 역력했다. 나는 확정된 것은 없다고 안심시켰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이런 논의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순자 님은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다. 40년간 식당일, 청소 일을 하며 두 아들을 키웠지만, 큰아들은 자영업 실패로 연락이 끊겼고, 작은아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자기 가족도 겨우 부양하는 형편이다. 65세까지 식당에서 일했지만, 서 있기조차 힘든 무릎 상태로 더 이상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65세 되니까 기초연금도 나오고, 복지관에서 점심도 주니까 겨우 살만했어요. 근데 이제 와서 70세까지 기다리라고요? 그럼 나는 뭘 먹고 살아요?"
이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노인연령 상향은 통계표 위의 숫자가 아닌, 한 끼 식사와 약값을 걱정하는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각지대에 갇힌 '젊은 노인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평균수명이 늘어났으니 노인 기준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은 다르다. 특히 저소득층 노인들의 경우, 평생 고된 육체노동으로 인해 60대 중반이면 이미 몸이 망가진 경우가 많다.
도봉구 취업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60대 후반 노인들은 이미 취업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라고 강조한다.
"우리 센터에 오는 60대 후반 어르신들은 일을 구하려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경비원, 청소부, 전단 배포 같은 저임금 일자리에서조차 '더 젊은' 60대 초반을 선호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노인 지원 서비스는 65세부터 받을 수 있어 겨우 의지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70세로 올리면 이분들은 '사회적 무인도'에 버려지는 셈입니다."
노인연령 상향 논의는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노인들이 많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65~69세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약 45%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상당수는 질 낮은 일자리에서 생계를 위해 억지로 일하는 경우다.
작년 겨울, 서울역 인근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이상철(68) 님이 쓰러진 적이 있다.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서 4시간 넘게 서 있다가 저체온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이다. 이상철 님은 "아프지만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 지원금으로 겨우 월세와 약값을 감당했는데, 그마저도 못 받게 된다면 살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평균'의 함정에 빠진 정책
정부는 기대수명이 늘어났다는 통계를 근거로 노인연령 상향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평균의 함정'에 빠진 접근이다. 소득 계층별, 직업별 건강수명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한 연구에 따르면, 상위 20% 소득계층과 하위 20% 소득계층의 건강수명 차이는 약 8.6년에 달한다. 즉, 저소득층은 상위층보다 거의 9년 일찍 건강이 악화한다. 또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화이트칼라 직종보다 평균 6.5년 정도 더 일찍 만성질환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노인복지관에서 만나는 60대 후반 어르신 중 상당수는 이미 여러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마포구 노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는 "65세 이상 이용자의 약 78%가 세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며 "특히 저소득층 노인들은 경제적 이유로 젊었을 때부터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건강 상태가 더욱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입니다
강남구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사는 70대 노인과 달동네 고시원에 사는 66세 노인의 삶의 질이 같을 수 없다. 노인연령 상향 논의는 이러한 계층적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어떤 정책이든 누구에게 혜택을 주고, 누구에게서 혜택을 거둘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노인연령 상향은 결국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서 마지막 안전망마저 빼앗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치매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또 다른 사례를 들려줬다.
"얼마 전 66세 초기 치매 환자를 상담했는데, 이분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아 간신히 요양시설에 입소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노인 기준이 70세로 올라가면, 이런 분들은 어떻게 될까요? 치매는 나이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선결 조건 없는 노인연령 상향의 위험성
노인연령 상향이 논의되려면 다음과 같은 선결 조건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첫째, 연령차별 없는 고용 환경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의 고용 시장은 50대 초반부터 '고용 절벽'이 시작된다. 실질적인 정년 연장과 함께, 고령자 친화적 일자리 창출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둘째,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소득 보장 체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기초연금은 월 최대 33만 원에 불과하다.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이마저도 70세로 늦춰진다면 빈곤의 사각지대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셋째, 의료보장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노인 의료비 지원은 65세부터 시작되지만, 여전히 본인부담금이 크다. 특히 만성질환이 많은 저소득 노인에게 의료비는 가장 큰 부담이다.
넷째, 노인 돌봄 서비스가 크게 확충되어야 한다. 노인 돌봄 서비스는 양적, 질적으로 크게 부족하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노인 부부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돌봄 서비스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세대 갈등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
노인연령 상향 논의는 종종 '젊은 세대의 부담을 줄이자'는 명분으로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위험한 접근법이다. 사회보장은 세대 간 연대의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은 결국 모두에게 해롭다. 지금의 청년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인복지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노년 유니온 조합원 정경주(68) 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부모님을 부양하면서 아이들 키우고 나라 발전시킨다고 희생했어요. 이제 조금 쉴만한데, '너네는 아직 늙은 것도 아니니 더 일해'라니 참 서글프네요. 나이가 그저 숫자라면, 왜 정년은 60세로 제한하고, 취업 시 나이 제한은 여전한가요? 왜 노인 혜택만 올리려 하나요?"
연령이 아닌 필요 중심의 접근
노인연령 상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필요 기반(needs-based)' 접근이다. 연령만으로 일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 상태, 소득수준, 사회적 지지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차등적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건강상의 문제로 일하기 어려운 60대 중반 노인에게는 65세 이전이라도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반대로 건강하고 소득이 충분한 70대 노인은 일부 혜택에서 제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밀한 정책 설계는 행정적 편의만을 위한 '일괄적 연령 상향'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요구한다.
사회적 약자 보호와 세대 간 연대를 위하여
노인연령 상향은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수많은 노인의 삶과 존엄성에 직결된 문제다. 노인은 '재정적 부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존중받아야 할 주체다.
모든 정책은 '가장 약한 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인연령 상향 논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세대 간 연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선결 조건과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갖춰진 후에야 신중하게 검토될 수 있는 문제다.
어르신들의 눈물이 보이는가. 통계표와 그래프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부모 세대의 노년이, 숫자놀음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어버이날, 우리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면서도 그들의 노년을 더 고단하게 만드는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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