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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실패한 쿠데타'에 가담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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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실패한 쿠데타'에 가담할 텐가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대법원의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 선고. 하나는 총칼이고, 하나는 글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려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는 적나라한 정치적 욕망의 표현이다. 비상계엄이 국민이 쌓은 헌정질서의 탑 위에 무력의 깃발을 꽂으려 한 시도였다면, 대법원의 졸속 선고는 민주주의 꽃인 선거에 개입해 국민의 선택권을 침탈하려는 폭거였다. 두 사건 모두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혐오가 깃들어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적을 제거하려는 '살의'가 번득인다. 이 주체할 수 없는 증오와 살의가 정상적인 판단을 삼키고 이성을 질식시켰다.

"최고 법원의 판결과 법원에 대한 존중 없이는 법치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대법원이 '사법 쿠데타'를 정당화하며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계엄은 통치권자의 고유권한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공허하다. 계엄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해도 절차와 내용이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지 않으면 탄핵된다. 대법원 판결 역시 헌법과 법률의 정신에 어긋나면 결코 존중받을 수 없다. 권위란 무조건적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정당성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존재다. 모래성 위에 날림 판결의 탑을 쌓아놓고 '국민은 잔말 말고 경배하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국민대배심, '사법 쿠데타'에 유죄판결

지난 2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출석한 국회 법사위 회의는 '국민대배심 공판정'이었다. 천 처장은 '조희대 대법원장 등 10명의 대법관 피고인들'을 변호하러 나온 '법정대리인'이었다. 천대엽 변호사는 재판 내내 언론과 시민사회단체, 야당 등에서 제기한 '기소 내용'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그 자신도 판결 절차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스스로의 말에 확신이 없는 자의 침묵이 수시로 이어졌다. 이 모습을 전국의 국민배심원들이 영상으로 지켜보았다.

이번 사건의 모든 것은 '6만 쪽'이라는 숫자 안에 들어 있다. 이 육중한 기록의 두께는 판결의 형식이자 내용이다. 대법원은 '법률심'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그들은 사실을 다루었다. 기록을 읽지 않고 사실을 판결한다는 것은, 산을 보지 않고 산맥을 논하는 일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6만 쪽의 기록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근면과 나태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물리학의 문제다. 마치 비상계엄의 불법성이 무장 군인들의 국회의사당 진입 장면 하나에 농축되어 있듯이,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도 '불가능한 6만 쪽 독서'에 집약되어 있다.

청주지방법원 송경근 판사는 전국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판사의 시각으로 이를 명쾌히 설명한다. "보도되는 판결 이유를 살펴보니 사실관계 확정이 결론을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라 사건 기록도 열심히 보아야 했을 사건"이라고 짚었다. 그리고 냉소가 이어진다. "6만 쪽 정도는 한나절이면 통독하여 즉시 결론을 내릴 수 있고. 피고인의 마음속 구석구석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관심법까지, 그야말로 신통방통하고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지신 훌륭한 분들만 모이셨을 것이니…". 이 쓰디쓴 냉소에서는 울분과 분노를 넘어 아득한 절망이 전해온다. 사법 정의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숨죽인 울음이 그 속에는 배어 있다. 국회 '공판' 장면을 지켜본 '국민배심단'의 판결은 무엇일까.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당연히 이런 선고를 내릴 것이다.

"주문 : 피고인 대법원장 조희대, 대법관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박영재 이숙연 마용주를 유죄로 판결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에 참석, 입술을 다물고 있다. ⓒ연합뉴스

<유죄 판단 이유 요지 >

유죄 주문에 이어 유죄 판단의 이유를 말할 차례다. 국민배심원단의 한 사람으로서 판결 이유 요지를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1. 대법원은 4월22일 오전 이 사건을 오경미 대법관 등 4인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그리고 두 시간만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오경미 대법관은 이흥구 대법관과 함께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이다. 소부는 전원일치가 돼야 하지만 전원합의체는 다수결에 따라 과반수가 합의하면 선고가 가능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조바심을 느꼈을 것이다. '오경미 대법관이 포함된 2부에서 심리하면 합의가 늦어져 대선 전에 판결이 나오지 못해 이재명 후보에게 타격을 가할 수 없다.' 그래서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것이 법에서 말하는 '합리적 의심'이다.

2.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갑자기 넘긴 사유를 대법원은 밝히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단지 언론에서 "중대한 공공의 이해관계가 있거나 국민 관심도가 매우 높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판결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설했을 뿐이다. 그런데 대법원 내규에는 '사회적 이해충돌과 갈등 대립 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 판단이 필요한 사건'을 전원합의체 심리 요건의 하나로 적시해놓았다. 바꾸어 말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적 이해충돌과 갈등 해소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오히려 갈등이 있는 곳에 기름을 부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성급한 판결을 내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충분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권위의 외피'를 쓰고 선고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 사회를 격렬한 갈등과 대립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3. 대법원은 판결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 공직선거법 제 270조를 내세운다. 이른바 '6-3-3 규정'이다. 선거법 신속 재판 규정은 애초 당선자를 상정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대선 낙선자에게 법의 긴급성을 들이미는 것부터 난센스다. 대법원은 법 제정의 본뜻과 상식을 꺾었다.

더욱이 대법원은 '6-3-3 규정'마저도 악의적으로 무시했다. '6-3-3'은 선거법 판결을 신속히 하되 1심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각 단계에서 최소한 6개월, 3개월, 3개월 정도가 소요됨을 상정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선거법 사건은 일반도로가 아니라 시속 100㎞ 정도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로 운행하되, '3개월 이내'를 대법원 운행 구간의 적정속도로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뒤 2024년 대법원의 선거법 사건 처리 기간은 평균 92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운전대를 잡은 조희대 대법원장은 1, 2심에서 운행속도가 늦었다는 이유로 시속 300㎞가 넘는 과속질주를 했다. 고속도로 안전운행 속도를 3배 이상 초과한 난폭 운전이었다. 그리고 대형 참사를 일으켰다. 그것은 단순 과속이 아니라 법의 이름을 앞세운 광기의 질주였다.

4. 대법원에는 '전원합의체 심리절차에 관한 내규'가 있다. 그 내규는 모두 '원칙'을 적시해놓았다. '월 몇 회, 무슨 요일, 몇 일 전'까지 구체적으로 정해놓았다. 여기에 "대법원장이 변경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덧대어있을 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예외를 쥐고 흔들었다. 예외가 모든 원칙을 집어삼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절차 내규 제6조는 "전원합의기일은 매월 세 번째 목요일(다만 해당일이 15일인 경우에는 23일)에 진행함으로 원칙으로 한다"고 못박았다. '요일'을 정하고 '원칙'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해 강조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원칙을 뚫고 불과 이틀 간격으로 심리를 마쳤다. "전원합의기일 사건은 합의기일 10일 전까지 지정하여야 한다"는 내규 제2조 1항의 '원칙'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필요한 경우에는 바로 지정할 수 있다"는 단서 하나면 족했다. 그는 거침없이 질주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결정은 외견상 위법·탈법을 교묘히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칙과 직권의 간극'이 너무나 넓고도 깊다. 상식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본인의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주어진 권한을 과도하게 사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한 판단이다.

5. 대법원의 판결에서 절차는 축소됐고, 설득은 생략됐으며, 숙고는 사라졌다. 이흥구, 오경미 대법관은 반대 의견에서 이를 명확히 적었다. "설득과 숙고의 성숙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 반대 의견에서 판결의 절차 문제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표현은 점잖지만 그 말 아래 깔린 뜻은 명확하다. 졸속·부실 판결에 대한 날카롭고 묵직한 항의다.

서경환 대법관 등 파기환송에 찬성한 대법관 5명은 보충 의견에서 말했다. "대법관들은 빠른 시기에 제1심과 원심 판결문, 공판기록을 기초로 한 사실 관계와 쟁점 파악에 착수하였고, 검사의 상고이유서와 변호인 답변서, 의견서가 접수되는대로 지체 없이 제출 문서를 읽어보고 그 내용을 숙지하였다." "대법원으로서는 제1심과 원심(2심)의 판결서 중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면 충분한 사건이었다." 대법원 졸속 판결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미리 변명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졸속을 인정한 셈이다. 6만 쪽을 제대로 읽은 게 아니고 1, 2심 판결문, 검사의 상고이유서 등 대략 필요한 부분만 훑어보았을 뿐이며, 1심과 2심 판결문 중 1심 것을 채택해 판결했다는 실토였다. 그들은 사건의 뼈대만 피상적으로 좇고, 그 속의 피와 살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정의는 기록 속에 있다. 그 기록을 외면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후폭풍에 당황한 대법원 쪽에서는 "대법관들이 기록을 전부 읽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다. 기존의 다른 상고심 사건에서도 대법관들이 사건 기록을 모두 읽는 것은 아니다"는 변명이 흘러나온다. 그것이 '현실'일지는 몰라도 '원칙'은 아니다. 그렇게 '관행'을 강조하려면 판결 과정과 절차에서부터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했어야 마땅하다. '6만 쪽'은 이미 '졸속 판결의 상징'으로 국민의 가슴 속에 각인됐다. 로그 기록 공개 등을 통해 '6만 쪽 완독'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대법관 오석준 서경환 권영준 엄상필 신숙희 노경필 박영재 이숙연 마용주는 '졸속·부실 판결의 동조자' 혐의를 벗지 못한다.

고등법원, 내란 사태의 현명했던 군인들을 돌아보라

'조희대 쿠데타' 역시 '윤석열 쿠데타'와 마찬가지로 '실패한 쿠데타'로 기록될 것이다. 이미 그 조짐이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역풍이 거세다. 판사 사회 내부에서까지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법을 무기 삼아 국민의 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민의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 사건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내란의 시간을 돌아보면 된다. 비상계엄 아래에서 군의 중간 간부들은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부당한 명령을 밀쳐내고 소극적 행동으로 저항했다. 더 큰 피를 막기 위해 항명죄의 두려움을 떨쳐냈다. 그들에게 쏟아진 국민의 격려는 뜨겁다.

지금 서울고등법원은 그런 용기와 결단조차 필요 없다. 대법원장에 대한 항명죄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 그저 정해진 형사소송법 절차와 통상적인 관행을 따르면 된다. 공판을 재촉하거나 밀어붙이지 않고, 고속도로 적정속도인 시속 100㎞만 유지해도 충분하다. 이미 대통령 선거는 시작되었다. 가장 유력한 후보를 법정에 나오라고 다그치고, 안 나오면 궐석판결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항명이고, 민심에 대한 도전이다. 법의 이름을 빌어 민주주의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헌법적 행위다. 실패한 쿠데타에 뒤늦게 합류하는 어리석음이다. 지금이라도 정해진 절차 준수를 공개적으로 밝히면 소모적인 대립과 논쟁은 사라진다.

6월3일이 지나면 풍경은 달라질 것이다. 시간은 법정 바깥에서 흐르고, 정치는 법 안으로 스며든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서두르지 말기 바란다. 바람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 바람 속에서 묵묵히 걸으라. 길은 그 사이에 자연히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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