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해? 당신은 그래도 싸."
<오늘을 잡아라>(솔 벨로,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40대 중반의 불행하 남자가 오랜만에 먼 곳에 떨어져 사는 아내에게 전화했다. 계속 불행했지만, 그날은 특히 더 불행했다. 그가 원하는 건 그저 한마디의 위로였을 터였다. 불행한 남자는 한 조각의 위로도 받지 못한다.
"근심을 감추는 재간이라면 토미 월헬름도 누구 못지않았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믿었고 이 생각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도 충분했다. 한때나마 배우였으므로-아니, 진짜 배우는 아니고 엑스트라였지만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리고 그는 시가를 피우는데, 시가를 피우는데다 모자까지 쓰면 한 가지 이점이 있다. 남들이 그의 기분을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우편물을 확인하려고 23층에서 로비로 내려가며 그는 남들 눈에는 말쑥해 보이겠지, 그럭저럭 잘사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그렇게 믿었다. 아니, 희망했다.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어차피 희망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소설 시작과 함께 불행한 남자는 이렇게 묘사된다. 토미는 직업을 잃었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았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뉴욕의 글로리아나 호텔에서 무위도식하며 하루하루를 대책 없이 살아가는 40대 중반 남성이다. 인용문에서 표현했듯 남들 눈에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를 희망하지만, 삶이 더는 어떻게 손써 볼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오늘도 막막한 심정으로 잠에서 깨어 아버지와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토미는 이러한 무대책의 일상이 이제 곧 깨어지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감한 커다란 불행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느낀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아버지는 필요한 도움을 주지는 않고 실패자로 토미를 바라보며 경멸한다. 오늘도 아버지와 한바탕을 하고 식당을 나온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정신과 의사인 탬킨 박사는 "오늘을 잡아야 한다."라고 토미에게 충고한다. 토미는 탬킨 박사의 그 인생관에 동의하지만, 막상 막막한 현실에서는 잡을 지점을 포착할 수 없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이다. 토미는 주식으로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탬킨 박사의 말을 믿고 그나마 남은 전 재산을 그에게 투자하지만, 탬킨 박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작품의 막바지에 도달해서도 맨 앞에서 묘사한 '희망 없음'이 달라지지 않는다. 탬킨 박사가 종적을 감추며 토미의 마지막 선택 역시 그에게 사기를 당한 또 다른 실패였음이 확인될 뿐이다. 아버지는 그에게 "바보 같은 놈!"이라고 화를 내며 꺼지라고 하고, 오랜만에 통화한 아내는 "지금 불행해?"라고 묻고는 "당신은 그래도 싸."라고 쏘아붙인다. 탬킨를 쫓다가 우연히 모르는 사람의 장례 행렬에 끼어든 토미는 장례식에 휩쓸려 가서 망자를 애도하는 듯 목놓아 통곡한다. 탬킨을 붙잡았다고 한들 그에게서 뾰족한 수가 없었을 테니, 차라리 장례 행렬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 놓고 통곡이라도 할 수 있으니.
포크너와 헤밍웨이를 잇는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솔 벨로(1915~2005년)는 캐나다 퀘백주 라신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부부의 사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아홉 살 때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이주했다. 시카고대학교, 노스웨스턴대학교, 위스콘신대학교 등에서 수학했고 1941년 첫 단편 <두 개의 아침 독백>을 발표했다. 미네소타대학교, 뉴욕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등에서 오랫동안 인류학, 문학을 가르친 학구적인 작가이다. <오기 마치의 모험>(1947년), <허조그>(1964년), <샘러 씨의 행성>(1970년)으로 세 차례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작가로 대중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작품은 <오기 마치의 모험>으로, 미국 사회의 활력과 가능성을 유럽의 피카레스크 소설에 미국적 경험을 결합해 표현했다. 1976년에 <험볼트의 선물>(1975년)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자신이 성장하고 자란 대도시를 배경으로 현대인의 고립과 소외를 주로 다루었다. 유럽 이민자들의 도시 경험, 특히 유대계 이민자들의 경험,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의 유혹, 잔존하는 유럽의 지성적 문화와 부상하는 대중문화, 베트남전쟁의 실패, 성과 인종에 대한 태도 변화. 1990년대 미국의 문화전쟁, 반유대주의 등이 주요 작품 소재였다.
유려한 문체와 날카로운 언어 감각을 지닌 지성주의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에 비견되는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작가이다. 포크너와 헤밍웨이를 잇는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지성파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된다.
다른 작품보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편인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에는 현실임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고단하고 막막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이 나온다. '그 정도로 불행하지는 않아'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까, '나는 토미보다 더 불행해"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까. 불행의 정도와 무관하게 그의 삶에 현대인의 삶의 조건이 제대로 투영돼 있어 현대인의 초상이란 표현이 과하지는 않다.
고독과 절망의 '오늘'에서 삶의 희망을 찾는 게 가능할까. 20세기 미국 문단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솔 벨로가 이 작품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벨로는 작품 대부분에서 소외된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억압받는 상황과 거대도시의 부조리한 삶을 능숙하게 표현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늘을 잡아라>도 마찬가지로, 토미 윌헬름이란 무능한 중년 남자가 뉴욕 브로드웨이 몇 블록을 오가며 겪는 비참한 하루를 그렸다. 벨로는 "문학이란 인류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문학론을 반영하듯 <오늘을 잡아라>에서 구현된 세상은 바로 지금 세계인의 모습,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주인공 토미는 자타공인 '실패자'다. 팍팍한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헤쳐나가려고 하지만 손을 댈수록 인생이 꼬인다. 심성이 착하다. 착한 심성은 물질문명의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수와 좌절, 방황이 도돌이표로 펼쳐진다. 토미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그를 이용해 먹으려는 저의를 가진 사람만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척한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의 냉대는 토미를 더욱 힘들게 한다. 도움을 베풀 능력이 있는 아버지는 토미의 재기 가능성을 불신하기에 아예 어떤 지원도 마다한다. 토미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벨로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현대 문화에 대한 섬세한 분석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실패자'에게 답이 있을까. 작가는 현실적인 답이 없어도 영혼의 답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영혼의 답이 현실의 실패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문학적인 가치는 지닌다. 생전에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혼의 결을 따라가는 것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것을 발견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바쁜 일상의 담벼락에 항상 새겨져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심연에서 항상 꿈틀거린다. 그것은 늘 우리와 같이 있다. 나는 그것을 그리려고 노력할 뿐이다."
'오늘을 잡아라'가 그저 반어적인 표현인지, 힘겨운 오늘 안에서도 오늘의 영혼을 잡도록 애써야 한다는 얘기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쨌든 오늘을 잡지 않으면 내일이 없을 것이기에, 내일을 잡으려는 사람은 오늘 또한 잡아야 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문득 맥락 없이, 소설의 제목만으로 지난해 말에 계엄을 선포해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어떤 사람이 생각난다. 아직도 그가 계엄을 선포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큰 개연성 없이 그를 떠올리게 된다. 윤석열씨는 토미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긴 하다. 만약에 그냥 만약에 그가 불행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그의 아내가 인용문처럼 불행해도 싸다고 일갈해줬으면 정신을 차렸을까. 그에겐 그런 아내가 없었다. 영혼의 결 또한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세사를 외면하지 못하다 보니, 훌륭한 문학에 흉측한 얘기를 섞고 말았다. 1976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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