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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 가락] 대금과 피리 : 한국 전통음악을 이끄는 두 바람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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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 가락] 대금과 피리 : 한국 전통음악을 이끄는 두 바람의 소리

삼죽의 유산, 현대를 호흡하다

▲ 대금 연주 모습 ⓒ국립국악원

국악 공연에서 은은하게 흐르는 긴 숨결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 시작과 끝에는 대금이나 피리의 소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이 두 관악기는 모두 대나무로 만들어진 관악기이지만 각기 다른 구조와 연주법 그리고 고유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

대금의 소리는 바람처럼 스며들어 음악의 배경을 감싸고 피리의 음색은 단단하게 곡의 중심을 이끈다.

오랜 시간 한국 음악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빛깔을 지켜온 이 두 악기는 이제 전통을 넘어 다양한 시도로 시대와 호흡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관악기의 계보와 설화

한국의 관악기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대금, 중금, 소금의 삼죽(三竹)이 언급되는데이는 모두 대나무로 만든 세 종류의 관악기로 이 중 대금은 가장 중심적인 악기로 여겨졌다.

대금은 신라시대부터 그 설화가 전해질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조선시대에는 궁중음악과 풍류음악 모두에서 폭넓게 쓰였다.

무엇보다 대금은 청공(淸孔)에 얇은 갈대막을 부착해 독특한 떨림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한국적 정서의 깊은 여운을 담아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대금의 길고 넓은 관을 따라 흐르는 청명한 음색은 자연의 소리와도 닮아 있으며 특히 산조나 창작음악에서는 감정의 미묘한 결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 위 산조대금, 아래 정악대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금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신라 신문왕의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가 유명하다.

동해의 신비로운 대나무로 만든 피리(대금)를 신문왕이 불자 나라의 근심과 재난이 사라졌다는 이 설화는 대금이 단순한 악기를 넘어 평화와 통합 신성의 상징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피리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로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 새의 다리뼈로 만든 피리가 출토된 바 있다. 이는 피리가 음악적 본능을 충족시켜온 악기임을 보여준다.

피리는 중국의 관자나 일본의 히치리키와 같이 동아시아 전역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고유의 구조와 음색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고려시대 이후 중국에서 당피리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피리를 향피리라 부르게 되었고 이후 세피리, 당피리 등 다양한 계열로 분화되었다.

한국 피리의 가장 큰 특징은 음량과 직접성이다. 피리의 음색은 공간을 뚫고 나올 만큼 강하고 리드미컬하며 전체 연주의 방향을 결정짓는 힘을 갖고 있다.

국악 합주에서 피리는 단순한 선율 악기를 넘어서 음악의 추진력을 만드는 핵심 역할을 하며 생황, 태평소와 같은 겹서(舌, double reed) 계열 악기와 함께 국악 관악기의 확장을 이끌고 있다.

▲위 세피리, 중간 향피리, 아래 당피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은 숨, 다른 울림 : 대금과 피리의 구조와 연주법

대금과 피리는 모두 대나무로 만들어지고 입김을 통해 소리를 내지만 실제로는 구조와 연주 방식 그리고 표현하는 정서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대금은 옆으로 부는 횡적(橫笛) 구조로 청공에 얇은 갈대막을 붙여 떨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로 인해 대금의 소리는 부드럽고 깊은 여운을 남기며 감정을 길게 끌어내는 데 탁월하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선율은 정적이면서도 자연의 흐름을 닮아 특히 산조나 창작음악에서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반면 피리는 위에서 부는 종적(縱笛) 구조로 겹서를 사용해 강렬하고 직접적인 소리를 낸다. 피리의 음량은 대금에 비해 훨씬 크고 공간을 뚫고 나오는 힘이 있다.

연주자의 입술과 호흡 조절에 따라 섬세한 뉘앙스부터 강한 리듬까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민속악이나 궁중악 등 다양한 무대에서 주선율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피리는 곡의 흐름을 이끄는 중심축으로서, 전체 합주의 방향을 결정짓는 추진력을 지닌다.

또한 피리 연주자들은 종종 생황, 태평소 등 겹서 계열의 다른 악기도 함께 다루며 국악 관악기의 폭을 넓혀왔다.

생황은 화음을 낼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의 악기이고 태평소는 축제나 의식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러한 악기들과의 연계는 피리가 단순한 선율 악기를 넘어 국악기계의 융합과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소리의 균형, 조화의 미학

한국 전통음악에서 대금과 피리는 각각의 고유한 자리를 지키며 때로는 함께, 때로는 독립적으로 울려왔다.

대금은 정악(궁중음악)과 민속악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정악에서는 청아하고 절제된 음색으로 전체 합주의 균형을 잡는다.

산조대금은 정악대금보다 짧고 손가락 운지법도 달라 더 화려하고 자유로운 가락을 표현한다. 산조에서는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대금이 인간의 내면적 감정까지도 소리로 풀어낸다.

피리는 국악합주에서 곡 전체의 주선율을 이끌며 연주가 시작될 때 가장 먼저 등장해 전체 악기의 흐름을 주도한다.

예를 들어 궁중음악 '수제천'에서는 피리가 주선율을 맡고 대금·소금·해금 등 다른 악기가 이를 이어받아 연음 형식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피리의 강렬한 음색과 대금의 부드러운 음색이 조화를 이루고 곡의 장중함과 화려함을 더한다.

민속음악에서는 피리가 빠르고 리드미컬한 선율로 흥을 돋우고 대금은 그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두 악기는 삼현육각(향피리 2, 대금, 해금, 장구, 좌고) 편성의 궁중음악 그리고 산조, 민속합주, 독주 등 다양한 무대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처럼 대금과 피리는 각자의 역할을 넘어서 전통음악의 다층적 구조와 미학을 완성하는 핵심 축으로 기능한다.

오늘의 무대에서 다시 울리는 숨결

오늘날 대금과 피리는 전통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장르와 매체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대금은 드라마, 영화, 광고 등에서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고요한 자연, 슬픔, 결연함이 깃든 장면에는 대금의 청명한 떨림이 흐른다.

산조대금은 판소리의 선율을 기악으로 풀어내며 독주곡으로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최근에는 대금 연주자들이 피아노, 기타, 재즈 등 이질적인 악기와 협연하거나 대중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피리를 비롯한 전통 관악기의 현대적 변용도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BTS 슈가(Agust D)의 ‘대취타’에서는 전통 군악 ‘대취타’의 태평소 선율과 타악기를 샘플링해 국악의 장중함을 현대 힙합과 결합한 음악적 시도가 주목받았다. 태평소는 피리와 같은 겹서 계열 관악기로 곡의 분위기를 이끄는 힘을 보여준다.

이처럼 최근 음악에서는 피리뿐 아니라 태평소, 생황 등 다양한 전통 관악기가 현대적으로 변용되어 활용되고 있다.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나 창작 국악에서도 저음피리 등 개량 악기가 등장해 음역과 표현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전통 관악기의 음색은 대중음악, 영화음악 등 여러 장르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대금과 피리는 모두 숨 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움직임을 통해 감정과 정서를 음악으로 풀어낸다. 이 두 악기는 단순한 소리의 도구를 넘어 한국음악의 깊이와 다양성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존재다.

오늘날에도 대금과 피리 그리고 태평소를 비롯한 전통 관악기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우리 곁에서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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